1인칭 영화 : 2인칭 시점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길을 잃은 앨리스에게"

 “여기 진짜 이상해. 그런데 나만 이상하다고 생각하니까 사실은 이게 정상인데 내가 이상한건가 싶기도 해. 이제는 정상이 뭔지 잘 모르겠어”

 

 너는 안부를 묻는 질문에 지친 목소리로 답했어. 다들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했으니 당연하다는 말, 돈을 받으면서 다니는 곳은 돈과 무관했던 곳들과는 다르다는 말들이 오갔고 부유하던 말들은 머지 않아 적응될 것이라는 뻔한 결말로 마침표를 찍었어. 대화의 주제는 곧 다른 방향으로 넘어갔고 웃음소리가 오고갔지만 나는 그 사이 네 표정에 스친 몇 번의 머뭇거림과 쓸쓸함을 봤어.

적응되겠지.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도 하잖아. 그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에는 ‘생존을 위해’라는 말이 생략되어있고. 너도 곧 적응할꺼야. 생존을 위해서. 그러나 적응이라는 말은 나에게는 무뎌짐이라는 말로 들려. 너는 섬세한 친구였어. 세상의 다른 결을 보고 담아내어왔고, 그 섬세함을 지키려고 노력했지. 그리고 이제 너는 섬세해서 남들이 못보고 못듣는 것을 보고 느끼고, 조각조각 상처를 쌓는 너의 감성을 원망해. 삶을 더 예민하게 응시하라던 교수님의 조언은 이제 졸업논문만큼이나 무의미하게 느껴져. 일요일 밤에, 다시 이상한 곳으로 돌아가야할 너는 생각해. 왜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데도 허무할까, 뭐가 잘못된걸까, 그냥 열심히 살아왔는데.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를 봤어. 학교에서 성실하게, 개인시간과 휴식시간을 줄이며 스펙을 쌓아왔던 우리. 그것을 나의 미래로 준비하는 일로 여기며 애써 피곤은 외면하던 우리. 그러나 학교를 나왔을 때, 학교에서 만들고 준비해온 것들이 숫자, 글자 몇 개로 치환되며 무의미함을 마주하게 된 우리를 봤어. 영화에서 기대와는 다른 사회를 마주하게된 수남은 꿈꾸던 미래는 아니지만 적당히 타협된 곳에서 일을 시작하고 그곳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그리고 ‘열심히’ 살아야할 이유를 사랑에서 찾게 돼. 그러나 아무리 성실하게 일해도 채워지지 않는 이 곳에서 사랑을 지키겠다는 말은 몇 배 더 크게 다가오는 삶의 부담을 감당해야한다는 뜻이야. 나는 그 맹목적인 사랑에 숨이 막혔어. 그런데 내게는, 아니 우리에게는 그만큼 붙잡아야할 것이라도 있었을까.

우리가 일하는 이유는 사랑이나 사람은 아니었지. 생존할수만 있다면 어떤 일이든 상관이 없는 것도 아니었어. 꿈이 있었고, 그 꿈을 실현하고 싶어서 사회에 나갔어. 하지만 그걸 잡는 일은 쉽지가 않아. 설령 운이 좋은 편에 속해 꿈을 잡았더라도 잠은 나중에 자면 된다고, 일을 해야한다고, 나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되뇌이면서 ‘나’를 지우고 버틴 우리는 수남과 얼마나 다를까.

수남이 악착같이 지키려고 애쓴 사랑에 꿈을 대입해봤어. 이상하던 세상이 조금도 이상해지지 않은 순간이 왔을 때, 뒤를 돌아본다면 내 꿈은 그대로 그 자리에 있을까. 나와 너는 여전히 꿈꾸던 시간 속 나와 너와 같을까.

 

 사랑을 지키기 위해 돌이킬 수 없는 결정들을 하던 수남은 어느새 다정하던 말도 눈빛도 잃은 남편의 병원비를 완납하고 그의 산소 호흡기를 떼. 그녀는 그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잊고 있던 자신의 소망을 생각해. 사랑하는 사람과 바다에 가는 것. 바다로 떠나는 수남은 더이상 억지로 웃지도, 북받혀 울지도 않아. 그 뒷모습은 후련해보였어.

우리는 여기를 떠날 수 없을거야. 떠난 후에 간신히 쥐고 있던 것들 조차 다시 잡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감히 용기낼 수 없을꺼야. 하지만 그럼에도 네가 바다를 기억했으면 좋겠어. 이 곳의 시간을 견딘 후 네가 찾을 곳. 수없이 만나고 스쳐갈 크고 작은 꿈들 사이에 네가 정말로 원하던 것. 버티다 잊어버리고 잃어버리지 말아야할 것.

 언젠가 우리는 바다에서 만나, 앨리스. 돌아갈 도시도, 일도 머리에 두지 말고, 가장 소중한 것 하나만 잡고서.

그때까지 네가 너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기억하고 있을께. 그날의 바다를 기대해.

윤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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