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수족관

윤가은 ​<우리들>

천혜윤
"나를 물들여줘"

 그 소녀는 그러니까, 피구 경기에서 제일 먼저 아웃되고 마는 아이였다. 아이들이 던진 공에 소녀는 터덜터덜 금 밖으로 걸어 나간다. 초대받은 적 없는 ‘너희들’의 세계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선’의 얼굴에는 스크린 바깥에서 우리가 겪어온 외로움들이 선연하다. 여름 방학식날, 선은 전학 온 소녀 ‘지아’를 발견하고 기다렸다는 듯 말을 건네고 이름을 묻는다. 지아는 그런 선을 곧장 자신의 세계로 편입시킨다. 그곳에는 휴대폰이 있고 문구점 색연필이, 또 함께 바다로 여행을 떠나기로 약속한 밤이 있었다. 늘 금 밖에만 머무르던 소녀에게 ‘우리’란 어떤 의미였을까. 선은 지아의 손톱에 봉숭아꽃물을 들인다. 그 소녀의 세계가 자신을 물들여주었기 때문에.

 

 영화 <우리들>은 초등학교 4학년의 여자아이들을 중심인물로 놓고서도, 관객들이 이 나이 즈음 아이들에 기대하곤 하는 동화적 서사에서 빗나가기를 택한다. 아이들은 어떠한 캐릭터성을 부여받은 대상화된 인물이라기보다는 살아 숨쉬는 ‘작은 어른’들에 가깝다. 어른의 세계란 으레 아이들의 세계까지 그 그림자를 드리우는 법이라서, 아이들은 그 아래에 놓인 각자의 사회적, 경제적 상황이 지니는 권력의 관계를 분명히 인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를테면 선은 지아가 이혼가정이라는 사실이 친구들 사이에서 충분한 약점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고, 지아 역시 선과 선의 어머니와의 관계를 지켜보며 내밀한 결핍을 느낀다.

 

 지아가 선에게 느낀 거리감은 두 사람이 멀어지게 되는 도화선이 된다. 친구를 잃는다, 는 어쩌면 사소한 사건이 열 몇 살의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상실이었는지를 경험해왔을 관객들에게 이 이야기는 결코 가벼울 수 없다. 관객들은 잠시 어른의 시선을 접고 그 때 선이었던, 지아였던, 보라였던 그 눈높이 그대로 아이들에 몰입하기로 한다.

 

 <손님>, <콩나물> 의 단편에서 알 수 있듯 윤가은 감독의 관심은 늘 어린 아이들에 있었다. 어쩌면 그는 관계에 대한 희망을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서 찾는 것은 아닐까. 선과 지아의 관계는 영화 말미에 이를수록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어쩌면 소녀는 묻고 싶었을 것이다. 내가 봉숭아로 물들여주었던 마음을 어쩌면 이렇게 아프게 멍들인 채로 돌려줄 수 있는 거냐고. 그러나 선은 그 마음의 대가를 돌려받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한 대 맞으면 똑같이 때려줘야 하는’ 어른의 계산법보다 ‘그냥 같이 노는’ 일이 즐거울 뿐이라는 동생 윤이의 말에서, 푸른색 매니큐어로 덧바른 손톱 끝에 남아있던 봉숭아 꽃물의 붉은빛에서, 선이는 다시 ‘우리들’이 되고 싶다는 희망과 마주한다.

 

 영화는 수미상관의 방식으로 처음과 끝을 맺는다. 다만 여기에는 첫 장면의 주인공과 같은 방식으로 금 밖으로 나가게 된 또 다른 소녀가 있다. 너무 많은 상처들로 얼룩져 다시 되돌아보기 어려운 숱한 관계들 속에서, 그래도 다시 그의 이름을 부를 수 있을까. 너 금 밟지 않았어, 내게 상처주지 않았어, 마음이 통했으면 좋겠어,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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