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포럼
​월례비행

가리워진 길

유성현

결혼을 준비하는 이의 마음을 상상해본다. 긍정적인 떨림이 (아직까지는) 먼저 연상되기는 하지만, 부푼 그 마음이 장밋빛 설렘만으로 가득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발목을 붙잡고 있는 과거에 대한 걱정 혹은 불확실한 미래로 인한 불안이 더 클 수도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이 결혼이라는 단어에 ‘갑작스러운’이나 ‘준비 되지 않은’의 수식이 붙는다면, 결혼은 그 자체로 숨이 턱 막히는 근심거리가 된다. 이를 조금 더 일찍, 현실적으로 감지한 지영(김새벽)의 어두운 표정이 안쓰럽다. 반면 곁에 누워 고양이 입양을 제안하는 수현(조현철)의 표정은 밝기만 하다. 어떤 때에는 여전히, 이렇게 다른 동거 6년차의 커플.

김대환 감독의 전작 <철원기행>이 노부부의 황혼이혼으로부터 출발하는 영화라면 <초행>은 물질적으로나 심적으로 준비되지 않은 남녀가 덜컥 직면하게 된 결혼이 시발점인 영화다. 지영의 생리가 한동안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두 사람, 함께 인천과 삼척의 본가를 방문하는 마음가짐이 남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처음 뵙는 상대 부모님을 찾아가는 길은 글자 그대로 눈에 익지 않은 초행. 하지만 자신의 집으로 향하는 길을 지나는 모습조차 마지못한 듯이 낯설고 어색하게만 느껴진다. 눈에 익지 않은 것 이상으로 무언가 무겁게 걸려 있는 마음이 익숙하지 않은 탓, 엄밀하게 말하자면 작중 두 번의 여행은 지영과 수현 모두에게 초행인 셈이다. 카메라는 이 초행길을 함께하는 남녀의 불안을 애써 과장하지 않고, 그저 작은 자가용의 뒷자리에서 담담하게 응시한다. 아담한 경차의 내부는 아무래도 답답하고 비좁게만 느껴지고, 이 작은 공간은 보이지 않는 남녀의 표정만큼이나 묘사할 수 없는 불안한 공기로 채워진다. “멈추면 죽어” 운전 중 농담처럼 내뱉는 수현의 말은 멈출 시기와 방법을 알지 못하고 길을 따라 달리는 그들 자신의 상황을 가리키는 것도 같다.

마침내 도착한 그들을 반기는 것은 이른바 ‘집 밥’. 하지만 <철원기행>과 마찬가지로 가족과의 식사는 더 이상 위로 받고 힘을 얻는 자리가 되지 못한다. <초행>의 집 밥도 예외는 아니다. 도리어 본인이 가장 감추고 싶은 치부를, 가장 보이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보여야 하는 불편함까지 더해져 당장 먹은 게 없어도 체한 기분이 들 정도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옛말이 무색하리만치 상처 입(히)는 폭력이 더 이상 낯설지 않아서 서글픈 밥상머리. 이삿짐을 쌓아둔 방 안에서 지영과 수현 단 둘이 먹는 새참 같은 식사는 이와 자못 대조적이다. 식탁도 없이 방바닥에 내려놓은 짬뽕과 탕수육을 맛있게 먹는 둘의 모습이 누군가의 꿈이라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그렇게 무사히 초행길에서 돌아왔지만 그들의 고민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있다. 막막한 마음을 안고 다다른 곳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그 겨울의 광장. 영화는 수많은 군중 속에서 서로를 의지한 채 나란히 걷는 연인의 뒷모습을 쫓아간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곁눈질하던 지영과 수현은 어쩐지 자신이 반대로 가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방향을 튼다. 그런데 몇 발짝 옮기고 금세 또 원래 방향이 맞았던 것 같아 겸연쩍은 헛웃음이 나온다. 정해진 길이 없는 광장에서 마치 어린 아이처럼 길을 잃어버린 두 남녀에게, 초행길은 누구에게나 서툰 법이라 말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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