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네마

김양희 ​<시인의 사랑>

오은 ​'만약이라는 약'

김민범
"울어 붙은 날들"

후드득 슬퍼지는 날이 있다. 서러운 일 없는, 몇 날이 지나면 흐려질 평범한 하루였다. 불현듯 울음이 기착한다. 눈물을 알아채기도 전, 입이 써지고, 볼이 익는다. 물기는 그을음처럼 닦을수록 온 얼굴로 번진다. 오늘을 취소하고 싶다. 돌아갈 수 없다는 예감이 멀리 돌아온다. 남은 생이 모조리 시시해졌다.

 

시인은 무력하다. 지방 문인으로서 비정기적인 원고료와 아이들을 가르쳐서 받는 수업료는 미약하다. 따스한 방도, 시인을 사람 꼴로 살아가게 하는 건 아내의 몫이다. 둘의 언어는 다르다. 시인은 ‘대신 울어주는 사람’이 되기 위해 사랑과 슬픔을 갈아 먹으며 산다. 아내는 생리적인 언어들로 눈에 보이는 세계를 충실히 산다. 둘의 대화는 자주 부딪치지만, 서로를 튕겨내지 않고 곶자왈에서 뒹굴게 한다. 안정과 충동이 부부를 지속시켜왔다.

 

시와 시인에 대한 온갖 폄훼와 편견 속에서도 함부로 아름다운 것들을 지켜내고, 가장 추한 상대에게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던 시인은 소년을 마주한다. 소년의 언어는 속되지만, 누구와도 닮아 있지 않다. 소년은 시적인 순간을 아무렇지 않게 찾아내고, 툭툭 잊어버린다. 소년의 젊음과 불행은 시인을 매혹시킨다. 가여운 마음은 소년을 자주 생각나게 했고, 찬란하고 불우한 소년의 모습은 시인이 오래 찾아 헤매던 것들과 닮았다. 시인은 소년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시인은 쓰고 있다. 기형도 시인의 ‘희망’이다. 마침표를 찍으며 돌을 갓 지난 자식의 기저귀를 갈아야 함을 확인한다. 그 순간, 시인은 운다. ‘아무일도 일어날 수 없으리라’는 예감이 든다. ‘너를 생각할때마다’ 흐르는 눈물이 그 순간을 ‘아무 때나’에서 건져낸다. 앞으로 시인은 겨울에도 따듯한 방에서 우는 자식을 달래고, 가끔 기저귀를 갈며 오래오래 쓸 것이다.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을 기억하면서 그럭저럭 시인으로 살아갈 예정이다.

무작정 외출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면
그날 그 시각 거기에 있지 않았다면
너를 마주치지 않았다면
그 말을 끝끝내 꺼내지 않았다면

눈물을 흘리는 것보다 닦아주는 데 익숙했다면
뒤를 돌아보는 것보다 앞을 내다보는 데 능숙했다면
만약으로 시작되는 문장으로
하루하루를 열고 닫지 않았다면

내가 더 나은 사람이었다면

일어나니 아침이었다
햇빛이 들고
바람이 불고
읽다 만 책이 내 옆에 가만히 엎드려 있었다

 

오은, <만약이라는 약> 中

그는 오래도록 ‘먄약’을 생각하며 살게 될 것이다. 소년과의 마지막 장면을 수도 없이 돌려보며 다른 끝이 있을 수 있지 않았을까. 마주치지 않았다면 다른 생을 살고 있지 않을까. 모든 장면이 해질 때까지 가정하는 일을 멈출 수가 없다. 때로는 쓰기 위해 우울해지는 게 아닐까 자책하는 날도 있고, 슬픔만 끌어안고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두려워 범속한 일들로 하루를 채울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안부는 묻지 못하는 불구가 된다. 만약은 오지 않아 안온하다. 시인은 안다.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자신은 다시 이 장면으로 오게 될 거라는 것을. 이제 곶자왈은 더 이상 아름다운 곳이 아니다. 지나가 버린 ‘단 한 사람’을 그리워하는 끝없는 유배지다.

 

슬픔에 중독되면 배를 곯는지, 언제부터 깨어있었는지 잊는다. 자신이 만들어낸 연민들이 자신을 안아준다. 그 안에서 애처로운 사람이 된다. 이미 지난 자취에는 기척 하나 없는데 불행했던 날들을 잊지 않기 위해 비극을 직조한다. 그때를 잊으면 절박했던 모습이 모두 사라지기라도 하는 듯 두려워한다. 네가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 나는 너를 가장 절실하게 사랑할 수 있다. 이번 생에는 내처 슬프기로 한다. 슬픔이 마르지 않도록 자주 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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