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칭 영화

<최악의 하루> 현경 (배우 최유화) 시점

"해피엔드를 부탁해"

「료헤이 : 배우 이와세 료」

1.

 

혹시 그런 경험을 해보신 일 있으신지요.

어떤 이야기를 읽다가 그 이야기에 너무 몰입해버려서

마치 이야기 속 인물이 ‘나’인 듯 착각이 되어버리는 경험 말입니다.

 

어떤 선생님은 제게 ‘공감을 잘하는 것도 능력’이라고 말씀해주셨지요. 그러나 이것은 제게 공감의 영역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살아있는 타인과의 대화에서 느끼는 것이 아닌, 오직 이야기에 해당한 일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야기 속 인물이 고통받고 상처받을 때면 그 고통이 너무 생생해서 때로는 그 인물이 되어 꿈까지 꿉니다. 쫓기거나, 모두에게 비난당하거나, 버림받거나, 어디에도 갈 수 없는 곳에 갇혀버리는 꿈을 온전히 그 인물의 시점으로 며칠을 겪는 경험을 아세요, 작가님? 아마도 모르시겠지요. 그러나 작가님은 아셔야합니다. 그 세계를 빚은 것은 작가님인걸요.

 

저는 이야기를 읽지 않으면 살 수 없지만 동시에 이야기 속 인물을 ‘나’와 분리해서 읽을 수는 없기 때문에 기자가 되었습니다. 저를 살려주면서 고통을 주는 작가님들을 직접 만나서 묻기 위해서요.

 

왜 그랬느냐고요. 왜 그렇게 인물들에게 잔인해져야만 했냐고. 당신들은 당신이 빚는 세계의 신이 아니느냐고요.

인터뷰에 가기 전에는 까페에 들러 작가에게 편지를 쓴다. 습관이다. 편지를 전해준 일은 없지만 쓰다보면 생각이 정리되면서 나누고 싶은 이야기에 대한 윤곽이 드러났다. 어제 또 다시 꿈을 꾸었기 때문일까. 이번에 쓰는 편지는 시작부터 감정적이었다. 이렇게 쓰는 편지로 정리가 될 리 없다. 시계를 봤다. 지금 출발한다면 조금 일찍 도착해서 작가의 출판 기념회의 끝무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즐거운 시간이 아니었다면 인터뷰가 작가에게는 힘든 하루의 정점이 되겠지. 하지만 나는 물어보아야 했다. 출간 후 여섯달이나 지난, 비인기 소설의 작가를 인터뷰 하겠다고 편집장에게 우긴 것은 오직 그를 직접 만나기 위해서였으니까. 료헤이 작가는 내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할까. 이 생각을 하면 나는조금 망설여졌다. 다른 작가들이 그러했듯, 그 역시 나를 실망시킬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답을 듣지 못한 질문이 답을 못한 상대에게 그대로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이 편에 가까울지도.

 

인터뷰가 예정된 장소는 서촌이었다. 오랜만의 서촌이었지만 여느 서울이 그렇듯 익숨함이 미세하게 다른 공기를 압도했다. 료헤이의 눈에 담긴 서촌은 어떨까. 무려 첫 소설이 바다 건너 한국에 닿아 번역된 작가 료헤이, 그래서 한국의 독자들을 만나러 바다를 건너 온 한국말은 하지 못하는 일본인 료헤이, 그러나 책이 몇 권이나 팔렸는지는 애석하게도 알지 못하는 무지한 료헤이, 다정한 사람인지, 잔인한 사람인지 알 수 없는 료헤이. 이해할 수 없는 언어에 둘러쌓여 있을 료헤이를 생각하며 한 발짝 걸었다. 당신의 눈에 서울은 아름다운 도시입니까, 첫 질문을 이걸로 할까. 아니, 이건 '한국을 좋아하나요' 류의 질문 같은 느낌이다. 좀 더 편안하게, '남산은 가보셨나요'로 할까. 문득 그가 어디에 묵을지 궁금해졌다. 한옥 게스트 하우스에 묵을 것 같기도 하고, 의외로 단순하게 호텔에 묵을 것 같기도 하고. 호텔에 묵느다면 예상 안에 있는 남자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다정한 사람도 잔인한 작가가 될 수 있다. 이 세계에 신이 있다면 그는 분명 다정하게 빚고 냉정하게 밀어넣고 무심하게 지켜보는 사람이겠지.

생각을 하며 걷다가 출판사에서 온 전화를 받았다. 출판 기념회 장소가 바뀌었고 곧 끝난다는 소식이다. 기념회를 진행한 까페는 기념회가 예정되어 있었던 카페보다 가까웠다. 대표의 소개로 작가와 눈인사를 했다. 서글서글한 인상에 품이 큰 옷을 입은 그를 보니 웃음이 나왔다. 신이 인간인 척 지상에 내려와 인간을 만난다면 허술해 보이는 쪽을 택해 우리를 안심시켰을 것이다. 인터뷰를 하러 가는 길은 조금 긴장이 됐다. 당신은 내 질문에 어떤 답을 줄까요. 내가 느낀 당신의 세계에 당신은 함계 있었습니까, 관찰하고 있었습니까.

 

 

2.

료헤이는 까페에 조금 더 있겠다고 했다. 생각이 많아진 표정이었다. 나는 몇 마디 말을 더 붙일까 하다가, ‘그럼 원고가 나오면 보내드리겠습니다’ 하고는 먼저 일어섰다. 그 핑계로 료헤이의 주소를 받았다. 나로서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저는 작가님의 소설들이 인물에게 잔인하다고 생각했어요 … 정말.. 그 사람들을 알고 있나요?’

 

질문에 실망스러운 쪽의 예상대로 답하던 료헤이는 어느 순간 답을 하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침묵에 고개를 들어보니 시선이 멀리 있었다. 순간 나는 그가 지어놓고 잊어버린 그의 세계를 되짚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었다. 조용히 인사를 하고 까페를 빠져 나왔다. 그는 오늘 나를 만났다는 일조차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남산을 향해 조금 걷다가 푸른 빛으로 번져가는 산이 보이는 까페에 다시 자리를 잡았다. 역시나 보내지 못하겠지만 이 편지는 마무리를 지어야할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버거우면서도 소설을 계속해서 읽어온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저는 도망가기 위해서 이야기를 읽어왔습니다. 원인없이 찾아오는 우울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무료한 삶의 공포에서 도망가기 위해서요. 그러니까 저는 저의 신을, 제 자신을 원망하는 대신 대신 살아버린 세계의 신인 작가님들께 원망을 돌린 셈인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나 어쩌면 우리는 모두 신이라는 창작가가 쓰는 소설의 인물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그 소설에서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쓰여지는’ 존재에 불과한 저희는 알 수 없지요. 그러나 소설의 서사에 중요하지 않은, 그래서 플롯을 위해 살리거나 죽이고, 존재를 지울 수 있는 존재가 ‘나’라고 생각한다면 조금은 무거워지지 않으시는지요. 

 

그러니 짓는 세계 속 만드는 모든 인물에 대한 애정을 부탁드려요. 필요한 만큼의 고통과 시련을 부탁드려요. 그 시간을 지나는 인물의 여정이 인물에게 어떤 식으로든 의미가 되게 만들어주세요. 그것이 어렵다면 주제에 맞는 해피엔드를 부탁합니다. 그래도 끝은 해피엔드일 거라는 한 가지 위안으로 모든 것을 버틸 수 있게요.

오늘 인터뷰에서는 유난히 더 감정적이었네요. 아마 제가 작가님의 소설을 아주 좋아했고 그만큼 강한 인상을 받았고 그래서 오래 앓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무래도 변명은 되지 않나요? 사과를 드리고자 이 편지를 적고 있지만 이 편지를 작가님께 드리지는 않겠지요. 그저 답을 받지 못한 질문이 답을 하지 못한 작가님께 남아 어떻게든 영향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그리고 제가 느끼는 것을 적어두는 일이 언젠가는 어떻게든 전달이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편지 마칩니다.

 

현경 올림

 

 

이름을 쓰는데 바람이 불었다. 생각해보니 신이 지상에 내려온다면 사람으로 위장할 것 같지는 않다. 그 대신 다 아는 것처럼 의미심장한 순간에 문득 불어서 숨을 맞춰주는 바람 같은 존재로. 그렇다면 이 마음은 전달이 되었겠지.

 

편지를 접어 가방에 넣고 마지막 한 모금의 커피를 마시는데 진동이 울렸다. 편집장이다. 인터뷰는 어땠냐는 짧은 메세지였지만 과연 기사가 되겠느냐는 핀잔이기도, 원하는 지면을 주었으니 이제 당장 일을 하라는 무언의 압박이기도 했다. 작가는 작가의 일을, 기자는 기자의 일을 할 시간이다. 꿈 속 같았던 시간은 끝났다.

 

‘끝났어’라고 생각하며 해가 진 남산을 걸어내려온다. 주어지지 않은 텍스트를 멋대로 상상하는 것은 기자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오늘은 주제 넘어본다. 료헤이 작가가 오늘 다정한 듯 무심한 신의 장난에 시달린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를 통해 새 소설을 썼으면 좋겠다. 그 소설은 해피엔드이길, 끝까지 함께 하는 다정한 마음이 있기를. お願いします

 

윤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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