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먹고 마신 것들

이승문​ <땐뽀걸즈>

차한비
너의 생일에는 고구마 케이크에 초를 켤 거야

너의 이름은 김현빈. 거제여자상업고등학교에 다니는 네 친구들과 나란히 소개된다. 여름햇살이 들이치는 교실에서 너는 아주 피곤해 보인다. 선생님은 수요와 공급을 열심히 가르치지만, 너는 그다지 버티는 기미도 없이 금세 잠에 빠진다. 누군가 너를 복도로 불러낸다. 그는 작년과 올해 ‘상황’을 비교하고, ‘사회생활’을 걱정하며 ‘단합’을 강조한다. 너는 도리질 치며 싫다고 한다. 정말 싫은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싫다고 해야만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정확한 맥락은 알 수 없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너에겐 ‘문제’가 있다.

​슬픔을 묻어 놓고 다함께 차차차

장면이 바뀐다. 너는 춤을 춘다. 스텝을 맞추고 기합을 넣는다. 댄스스포츠 연습이 끝나고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자, ‘땐뽀반’ 이규호 선생님이 차비를 내어준다. 아이들 대부분은 버스를 한 번만 타면 되는데, 너는 세 번이나 타야 한다. 선생님이 “현빈이는?” 하고 묻자, 너는 누군가 데리러 오기로 했다며 돈을 거절한다. 그리고 혼자 버스를 타고 고깃집에 간다. 교복 대신 검정색 유니폼을 입고서 숯을 나른다. 손님들은 어려 보이는 너를 붙잡고 온갖 질문을 던진다. “여자애가 왜 이런 일을 하느냐”부터 시작해서 학교는 다니는지, 피곤해서 공부는 어떻게 하는지, 꼬리를 물고 물음표가 이어진다. 너는 왠지 모르지만 “남자들이 하는 거, 그거 내가 하고 싶다”고 말한다. 잠깐 틈이 나면, 식당 한 구석에서 턴을 해본다. 너는 바쁘고 힘든데, 그만큼 춤이 좋다. 춤을 출 때 제일 재밌고 행복하다.

너는 네 생활을 책임져야 하는 입장이다. 집에서 부모와 사는 대신, 친구와 원룸을 얻었다. 내일 반찬을 궁금해 하는 투로 자기 전에 친구에게 묻는다. “우리 생활비는 어떻게 벌어?” 춤은 좋지만, 연습하고 대회에 나가기 위해서는 일을 쉬어야 한다. 친구는 “몸을 굴려”서라도 돈을 더 벌겠다고 한다. 삶은 무게를 지닌다. 사람마다 시기마다 다르지만, 일단 그 무게를 떠안으면 삶은 스스로 감당해야 할 몫으로 남는다. 너는 어쩌면 그걸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너뿐만이 아니라, 춤을 추는 친구들 대부분이 그렇다. 하교하면 아르바이트를 하고, 동생을 돌보고, 홀로 집을 지킨다. 조선소로 지탱되던 지역 경제는 점점 어려워지지만, 거제에서 나고 자란 너희들에게는 진로도 미래도 한 길로 정해진 듯 느껴진다. “이제 열여덟이라고 해도 내년에 취업을 나가”니까, 마냥 웃고 놀 수만은 없다.

근심을 털어 놓고 다함께 차차차

너는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운다. 숙취로 고생하는 너에게 선생님은 숙취해소 음료를 사다 주기도 한다. 너는 일하느라 종종 춤 연습에 빠지고, 연습을 나와도 피로 때문에 집중하지 못한다. 어느 날, 선생님은 널 앉혀두고 대화를 청한다. 남의 소식을 전하듯 무거운 이야기를 덤덤하게 털어놓던 너는 결국 눈물을 보인다. 아마도 선생님이 미안하다고 했기 때문일 것이다. 고생 많다며 어깨를 툭툭 쳐주는 사람 곁에서, 너는 눈물을 닦는다. 하지만 슬픔도 근심도 쉽게 끝나지 않는다. 대회가 가까워지는데 좀처럼 실력이 늘지 않자, 친구들은 너에게 화가 난다. 네가 못해서라기보다는 우리 모두에게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친구들이 네 사연을 모르듯, 너 역시 친구들이 처한 곤경을 속속들이 알지 못한다. 불쑥 각자의 괴로움이 터져 나오고, 눈가가 붉어진 너는 긴 말을 삼킨다. 그리고 다시 “차차차를 하자”고 한다. 연습이 재개되지만, 체육관에는 방향을 잃은 저마다의 미안함이 가득하다.

날이 밝고, 별 일 없었다는 듯 비슷한 하루가 시작된다. 대형을 맞추며 스텝을 밟고 있는데, 갑자기 음악이 사라진다. “내가 왜 음악 껐는지 알겠제?”라고 차갑게 묻는 친구를 보며, 너는 표정이 굳는다. 바로 그때, 어쩔 줄 몰라 하는 너에게 친구들이 다가온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현빈이 생일 축하합니다.” 서프라이즈 파티다. 긴장이 풀린 너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음을 터뜨린다. 네가 울자 친구들도 따라서 운다. 왜 우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저 한 명이 울면, 곁에 있던 다른 한 명이 또 눈물을 보인다. 너희들은 웃고 울며 동그란 케이크 주위를 둘러싼다. 연노랑 파우더가 곱게 뿌려진 고구마 케이크다. 간식이라기엔 묵직하고 밥이라기엔 가벼운 케이크 위에 초가 여러 개 꽂혀 있다. “울지 마, 울지 마!”라며 친구들은 박수를 치고, 너는 후 하고 촛불을 끈다.

울지 말고 그래 그렇게, 다함께 차차차

여름에는 달콤한 무언가가 필요하다. 더위와 짜증과 날 선 대화를 누그러트릴 만한 부드러운 디저트 말이다. 친구들은 너의 생일에 형형색색의 과일이 잔뜩 올라간 생크림 케이크나 한 입만 먹어도 머리가 찡하게 울릴 정도로 끈적한 초콜릿 케이크 대신, 너처럼 무던해 보이는 고구마 케이크를 골랐다. 네가 밥을 잘 먹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고, 비슷한 가격 중 가장 양이 많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든 충분히 달고 폭신하다. 한 친구가 고구마 케이크를 “고구미 케이크”로 바꿔 부르니 사방에서 웃음이 터진다. 너는 장난스러운 포즈로 케이크를 자르고, 친구들과 손에 흰 크림을 묻혀 가며 나누어 먹는다. 생일 덕담인 양 “술 좀 그만 먹고 금연하라”는 잔소리가 나오자, 너는 할 게 너무 많다고 엄살을 부린다. 열여덟 번째 생일은 그렇게 왁자지껄한 축하 속에서 마무리된다.

대회가 끝나고 방학이 지나간다. “슬픈 마음 말고 기쁜 마음으로 멋지게 헤어지자”는 다짐이 모여서 마지막 춤을 만들어낸다. 축제를 마치고 나면 너와 네 친구들은 곧 열아홉이 된다. 헤어지는 날, 너희들의 이름이 하나씩 불린다. 박시영, 박혜영, 김현빈, 심예진, 박지현, 김현희, 김효인, 배은정. 슬픔을 묻어놓고, 근심을 털어놓고, 새로운 바람을 기다리며 춤추던 너희에게, 이제 또 다른 춤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땐뽀’가 알려준 열정과 희열은 일상을 꾸려나갈 힘으로 자리 잡는다. 너는 친구와 마주 앉아 서로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해 준다. 네가 박자를 맞추며 잡았던 손이고, 학교 밖에서도 가끔씩 떠올려낼 손이다. 취업을 나가고 의심 섞인 눈길을 받고 월세를 걱정하는, 그 모든 삶의 무게가 밀려올 때, 리듬을 타며 ‘다함께’ 몸을 흔들던 순간을 기억할 수 있다면 좋겠다. 둥그렇게 둘러앉아 케이크를 나누어 먹던 장면을 추억하며, 누구에게도 그 무엇에도 기죽지 않기를 바란다.

[레시피] 너의 생일에는 고구마 케이크에 초를 켤 거야

1. 평소 속마음을 일일이 내비치기 어려웠던 친구가 있다면, 다가오는 생일에 깜짝 파티를 준비하자.

2. 같이 축하해 줄 사람들을 초대한 후, 인원에 맞춰 케이크 사이즈를 정한다.

3. 푸짐한 고구마 케이크를 사고, 생일을 맞이한 친구의 나이만큼 초도 준비한다.

4. 친구가 방심했을 때,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며 등장한다. 타이밍은 미리 입을 맞춰놓기!

5. 오늘의 주인공이 촛불을 끄고 소원을 비는 동안, 어떤 덕담을 들려줄지 생각해둔다.

6. 공평하게 자른 케이크를 나누어 먹는다. 파티 음악으로는 설운도의 ‘다함께 차차차’보다 ‘땐뽀걸즈’(feat. 김사월)를 추천한다. 노래를 흥얼거리다 마음이 동하면, 일어서서 춤을 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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