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공모전 [Re-wind}

전고운, <소공녀>

글 : 권은수

오늘 힘들다고 슬퍼하지마. 어차피 내일도 힘들테니까~!~!

 

존버. 존나 버틴다는 뜻이다. 작년 연말부터 구정이 아직 되지 않은 올해 1월에 나는 사람들을 만나며 이 단어를 엄청나게 많이 듣고 말해왔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존버뿐이다. 존버해서 또 만나자. 존버하다보면 어떻게든 되지 않겠냐. 나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나이는 스물넷, 스물일곱, 서른... 다양하다. 모두 청년이라고 묶을 수 있겠다.

 

청년. 나는 청년이라는 글자를 보면 이제 울컥 화부터 치민다. 나는 올해로 서른 하나. 청년이다. 국가가 언제부터 청년 사업이라는 것에 집착해왔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아마 내가 청년이라 부를 수 있는 나이쯤부터 시작되었다. 각 부처마다 같지도 않은 나이 기준으로 뭉뚱그려 청년이라는 카테고리를 만들고 그들을 지원한다고 했다. 지원을 받는다는 것은 그만큼의 결과물을 가시적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책임이 생기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청년들이 미움을 받기 시작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소공녀의 미소 또한 청년이다. 미소는 일한 만큼 돈을 받고 그 돈으로 담배를 사고 위스키를 마시고 월세를 낸다. 월세를 줄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자 집을 나온다. 너무나 간단하고 책임감 있는 삶이다. 하지만 미소 주변 사람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 지경인데 아직도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냐며 바람든 것 같다고 한다.

 

도대체 왜 이것이 비난받을 일인지에 대하여 나는 내 일처럼 생각을 했다. 큰 차이이지만 나는 집이 있다는 것 말고는 미소와 크게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다. (당연히 집주인은 따로 있다.) 나는 예술을 업으로 삼는 일종의 프리랜서이다. 말이 좋아 프리랜서이지 백수나 다를 것이 없다. 직업으로서의 일은 일 년 에 손에 꼽을 정도이다. 그 이외의 생활비는 미소와 마찬가지로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아르바이트를 해서 충당한다. 노동한 만큼 돈을 번다. 멋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할 수 있다면 그만하고 싶다. 초록은 동색이듯 내 주변엔 이런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우리는 비난받는다.

사회는 청년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한다. 직장을 가질 것. 성이 다른 사람과 연애하고 결혼할 것. 아이를 낳을 것. 성실한 사회의 일원이 될 것. 하지만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다음 달의 생활비이다. 우리의 생각은 이렇다. 당장 이 글을 쓰다가 뭘 사려고 편의점에 간다고 치자. 집 앞 편의점을 다녀오는데 내가 차에 치여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너무 비약이라고 하겠지만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런 불안정한 인생에서 돈을 모으고 그 돈을 담보로 빚을 내고 집을 구하고 하는 것은 차에 치여 죽는것 보다 안전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청년이 자기 자신을 그렇게 암담한 빚의 구렁텅이에 스스로 집어넣는 것이 과연 건강한 일인가 하는 것이다.

그렇다. 이것은 자기합리화이다. 대용의 대사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이 집 이자만 한 달에 얼만 줄 알아? 원금 조금 포함해서 백만 원이야. 내 월급이 백구십이거든. 그렇게 백만 원씩 이십 년을 내면 이 집이 내 집이 된대. 근데 이십 년이 지나면 이 집이 많이 낡겠지?’ 이십 년. 일단 또 비약으로 얘기해 보자면, 우리가 이십 년을 살겠냐는 것이다. 앞서 말한 교통사고 따위도 있겠지만 요즘 시대의 청년들의 정신 건강 상태가 어떤지 비청년들은 알고 있을까? (그들이라고 하려다가 그들이 누구인지도 모르겠기에 비청년으로 지칭했다.) 당장 지금 청년을 대표하는 서른하나의 나만 해도 청년 이야기를 하다가 대상도 없는 누군가에게 화를 내고 있다. 이 화는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우리는 알고 있다. 그것은 불안한 미래에서 온다.

내 주변의 청년들은 소공녀에 열광했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것인지. 괜찮지 않은 것 같은데 뭘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래도 괜찮다고 뭐가 잘못이냐고 말해준 영화이다. 오늘의 행복을 위해 투자하는 것이 나쁜 일이 아니라고 하는 동지를 만난 기분이 들었다.

등장인물들 또한 처음엔 미소를 비난하는 듯 보이지만 같은 청년 처지인 그들도 결국 미소의 편에 선다. 그 마음이 동정인지, 동경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언니 완전 마음에 들어. 완전 내 스타일이다.’라며, ‘그렇게 뜬금없어 걔가. 여전히 웃는 게 예쁘더라.’‘생각만 해도 막 미소가 나지 않냐.’‘우리 집에도 왔었는데 옷을 겹겹이 레이어드를 했더라고. 멋있었어. 귀엽고.’ 이런 대사들 속에서 화면은 어찌 보면 동화 같기까지 한 한강 변의 빨간 텐트를 비추며 마무리된다. 괜찮은 것 같았다. 위로를 받은 것 같기도 했다. 다른 생각들은 그냥 외면하고 싶었다.

며칠 전, 나는 그가 청년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서른여덟의 친구를 만났다. 갑자기 주제가 소공녀로 튀었고 그는 ‘그 영화는 무책임하다.’라고 말했다. 1인 여성 가구의 삶은 위태롭다. 내가 모르는 삼십 대 후반을 살고 있는 그가 말했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고. 화자에 따라서 정말 꼰대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이었고 나는 귀담아들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1인 여성 가구의 가장이니까. 사실 당장 나만 해도 그렇다. 작년 12월까지 잘 다니던 아르바이트를 잘렸다. 새 아르바이트를 구하려고 하니 서른이 넘은 나를 써주는 곳은 찾기가 힘들다. 모아놓은 돈도 없다. 연애? 좋아하는 사람이 생길까 봐 무섭다. 그리고 요즘 드는 생각인데 사람이 생각보다 수명이 참 길더라. 내가 지금 미소를 보며 위안을 받을 때인가? 한강 변에 1인용 텐트를 치고 노숙을 하는 저 사람을 보며 ‘아 저것도 괜찮겠네.’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은 위험한 상황이었다. 이런 생각을 시작하니 생각이 가지를 치기 시작했다. 환절기에야 괜찮겠지 여름엔 벌레며 술 마시려고 무리 지어 다니는 사람들이며 그중에 술 취한 미친놈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아니 술에 취하지 않아도 미친놈들이 판치는 세상인데. 그럼 겨울은 또 어떡해. 겨울은 막 영하 20도까지 내려가고 난리잖아. 거의 비박 아니야? 그 추위를 생각하자 자연스럽게 나름 실내인 지하철역들을 떠올렸고 당연한 수순으로 서울역, 용산역, 청량리역 등의 노숙자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앞서 말했던 교통사고 같은 것은 비약이 될 수 있지만 이것은 비약보다 현실에 조금 더 가까워 보였다. 나는 소공녀로 위로받을 때가 아니었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살 것인가. 이십 대 초반에 일흔이 가까이 된 어르신과 산책을 다닐 일이 있었다. 늘 그렇지만 그때도 너무 막막해서 어르신께 ‘그 나이쯤 되면 좀 편해지나요?’하고 물었었다. 그분은 ‘스무 살은 스무 살의 고민이 있고 일흔은 일흔의 고민이 있지.’하고 말씀하셨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청소년기의 나는 청소년은 핍박받는다고 생각했다. 학교라는 감옥에 갇혀 어쩌고 하는 글을 보며 공감했었다. 결국 인간은 자기가 가장 중요하니까. 지금의 내가 제일 불쌍하고 어렵다. 미소처럼 오늘을 책임지며 살다 보면 그게 쌓여서 내 인생이 되겠지. 하지만 이렇게 영화 리뷰 글을 쓰고 있을 여유가 있을 때 카카오뱅크 자유적금이라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살아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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