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읽기모임 : 필독

이대희, <파닥파닥>

글 : 유성현

평범한 사람

밤새 바다를 누비던 고깃배들이 육지로 돌아와 저마다의 실적을 부지런히 전시하는 어스름한 새벽의 부둣가는 분주하고 소란하다. 갓 잡아 온 물고기들은 죽기 직전까지 죽어서는 안 되기에 선원과 상인의 거래는 빠르게 이루어진다. 그러니 이 현장의 묘사가 지금보다는 훨씬 생동감 있게 그려질 법도 한데, <파닥파닥>(2012)의 타이틀 시퀀스는 어딘지 암울하고 살풍경까지 하다. 동틀 무렵에야 비로소 고단한 일과를 마무리할 인간의 눈이라면 아무래도 좋을 풍경이겠지만 일생을 마칠, 그야말로 ‘죽은 목숨’인 물고기의 눈으로 보는 풍경이 꼭 이럴까. 불길하기만 한 보랏빛 하늘이다.

 

물고기를 주인공으로 한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에서 픽사의 <니모를 찾아서>(2004) 시리즈와의 유사성을 예상할 수도 있겠지만, 비슷하다고 할 만한 지점은 딱 거기까지다. 수면과 심해만큼이나 갈리는 작품 내적인 온도 차에 비한다면 투입된 자본이나 기술력 같은 외형은 사소하게 느껴질 정도. <니모를 찾아서>가 어디로도 갈 수 있는 망망대해의 신비한 모험담이라면, <파닥파닥>은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좁은 수조 속 처절한 르포르타주에 가깝다. 주인공 물고기가 부지런히 물  속을 헤엄치는 두 작품에서 이토록 큰 편차로 느껴지는 이질감이 흥미로운데, 이는 단순히 배경 규모의 차이보다도 결정적으로 <파닥파닥>의 이야기가 의인화된 판타지가 아니라 은유 된 현실이라는 점에 기인한다.

 

“여기 들어온 순간 우린 이미 죽은 거야” 횟집 수조 속에서 이 말은 절망적 비관이 아니라 냉정한 인식이다. 설령 ‘태어난 순간 죽은 거야’라 한들 부정할 수 있을까. 필사적으로 죽은 척을 해야 살아남으며, 살고자 발버둥 칠 수록 죽음에 더 근접하고야 마는 아이러니한 세계. ‘필사즉생 필생즉사’ 어느 해군의 지휘관에게도, 수조 속의 물고기들에게도 좌우명이 되는 문장. 이 결연한 각오가 전장 아닌 곳에서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까닭은 어쩐지 그 유효성보다도 이미 우리의 일상이 전장이나 다름없어진 탓이라는 생각으로 기울게 된다. 죽기 살기로 수조 속에서 살아남고  싶어 하는 물고기에게서 치열한 일상을 견디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본다.

 

“그렇게, 살아남으면요? 그다음은요?” 그런데 영화는 살아남기도 벅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선뜻 답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 가자미 올드 넙치의 말을 단번에 부정하기는 어렵고 대답은 궁색해지는데, 바다에서 잡힌 고등어 파닥파닥은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만 할 뿐이다. 과연 수조 밖은 수조 안의 저 질문의 답이 될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돌아간다’는 말은 맞을까? 우리는 본래 어디에서 왔으며,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보이지 않는 벽’에 갇혀 있지 않다고 자신할 수는 없다. 횟집의 수조가 사회의 풍자라면, 우리는 평생 조금씩 더 큰 수조로 이동하기만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더욱이 가장 큰 문제는 파닥파닥이 갈망하는 바다, 얼핏 비치는 횟집 앞의 그 바다는 밖에서 볼 때 어둡고 불길하게만 비친다는 사실이었다. 바다에서의 생존이 보장된다고 확신하기 어려운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닥파닥은 바다를 희망한다. 하루를 살더라도 바다에서 죽는 것이 낫기에. 이 생선이 바라는 것은 단순한 생존 너머의 삶이고 자유였다. 마치 <노예 12년>(2013)의 주인공 솔로몬 노섭처럼. “나는 살아남고 싶은 게 아니야, 살고 싶은 거지.”

그렇기 때문에 일견 이 작품에 더할 나위 없이 적절히 어울릴 것 같았던 루시드 폴의 [고등어]라는 노래가, 곰곰 들으면 들을수록 어색해지는 것이다. ‘난 눈을 감는 법도 몰라요’  수줍은 고백이 ‘가난한 그대 날 골라줘서 고마워요’ 돌연 잔혹한 농담이 되어버리니 말이다. ‘죽기를 바라는 고등어는 없었다’는 당연을 외면할 수가 없어졌으므로, 노래가 건네는 위로는 더이상 따뜻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는 개인적으로도 적잖이 유감스러운 일이었지만 공교롭게도 [고등어]가 수록된 앨범에서 파닥파닥에게도 미안하지 않을, 우리를 위로할 다른 노래를 찾을 수 있었다. ‘알다시피 나는 참 평범한 사람/조금만 더 살고 싶어 올라갔던 길/이제 나의 이름은 사라지지만/난 어차피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었으니’ 부둣가의 어둡고 탁한 바다를 떠나 마침내 꿈에 그리던 깊고 푸른 바닷속에 도달한, 영화의 마지막 뒷모습이 떠오르는 듯한 노래. 제목은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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