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읽기모임 : 필독

임철민, <프리즈마>

글 : 조효민

그저 쳐다본다는 것과 영화를 본다는 것

처음에 독립영화읽기모임 ‘필독’에 지원했을 때 이 모임을 통해 어떤 것을 얻고 싶었는지를 생각해보면 내가 어떤 글을 쓰고 싶은가에 대한 실마리가 풀리지 않을까 싶다. ‘필독’에 지원했을 때의 난 단순히 영화를 보는 일반적인 관객층에서 벗어나 영화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새로운 단계로의 진입을 꿈꾸지 않았나 싶다. 스크린에서 상영되는 영화만 보고 끝나는 것이 아닌 스크린 뒤의 영화에 대한 이해를 원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정성일의 “시네필의 두 번째 임무, 영화를 두 번 본다는 것”이라는 스크립트가 인상적이었고 그중에 84페이지의 내용을 적용해 영화를 본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보고자 했다.

“그 영화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처음 볼때에는 무슨 이야기인지 잘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영화는 때로 교양을 요구하거나 혹은 매우 적극적인 이해가 필요할 때가 있다. 만일 그 영화의 역사적 무대나 현실적인 모순, 혹은 그 영화를 만든 연출자의 지적인 배경을 모를 때 그저 쳐다보는 이상의 인상을 얻기 힘들 때가 있다.”

여기서 임철민의 <프리즈마>를 통해서 ‘그저 쳐다보는’ 관객으로의 나와 ‘적극적으로 이해를 도모한 후의 나를 비교해 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왜 하필 임철민의 <프리즈마>라는 작품을 선택했느냐 하면 내가 가지고 있는 기본 지식의 가장 반대편에 있는 영화중 하나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서사구조가 있는 영화를 위주로 관람을 해왔고 단순한 시청각 이미지의 나열이라는 것이 ‘그저 쳐다보는’ 관객으로의 나를 연상하기에 가장 적합했다.

‘그저 쳐다보는’ 관객이 되어보자. 나는 영화를 하나 고른다. <프리즈마>. 이름이 인상적이다. 가장 많이 찾아보는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검색을 해본다.

<프리즈마> 2013년도작, 판타지, 감독 임철민.

내용이 궁금하니 내용에도 들어가 본다.

‘본래의 몸을 잃어버린 움직임들이 자꾸만 주변에서 맴돈다. 그러면 오랫동안 숨겨왔던 감정의 결들이 불현듯이.

길게 내뱉은 날숨이 모든 순간들을 가로질러 환영의 끝에 닿자, 보석처럼 빛나는 미래의 기억들. 그제서야 비로소 연속되는 세계.’

여기까지가 ‘그저 쳐다보는’ 관객일 때 손쉽게 얻을 수 있는, 보통 찾아보는 정도의 지식이 될 것이다. 이 상태로 영화를 처음 보았다.

영화는 긴 암전 뒤에 노이즈 화면으로 시작한다. 한참의 노이즈 후에 타이틀이 올라가고 침대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는 남자의 모습을 촬영하는 장면이 반복된다. 그리고 과거에 캠코더로 찍은 듯한 장면들이 보인다. 여행, 생일파티, 어린시절 등등. 그 후 노이즈가 다시 나오고 침대의 남자의 모습이 나오는 것으로 영화가 끝이 난다.

영화를 처음 본 후에 느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저 쳐다보는’ 관객으로 보기에는 불친절한 영화가 분명한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다.

물론 글을 쓰기위해서 본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끝내지는 않는다. 내용에서 얻은 힌트를 통해 영화를 이해하기위해 노력을 해본다. 긴 암전과 노이즈는 침대위의 남자가 기억속으로 들어가기위한 단계가 아닐까? 남자가 창문 밖을 내다 보는 것은 창문을 통과하는 행위가 기억속으로 들어간다는 의미를 보여주는 것이고 그를 통해 소중하지만 잊혀져있던 기억들이 떠오르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잊고 살지만 과거의 그런 기억들이 쌓여서 미래로 우리를 연결시켜준다는 의미가 아닐까?

여기까지가 그 영화에 대한 이해를 위한 지식이 없이 영화를 본 내용이라면 이제는 영화에 대한 이해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을 도모해 영화를 보는 차례이다.

영화에 대한 적극적인 이해를 위해 참고한 자료는 권은혜의 “새로운 다큐멘터리의 등장과 그 가능성”의 일부분, 변성찬의 “타자-우연 수용의 미학”, 이도훈의 “임철민의 <프리즈마>”와 인디포럼에서 진행한 두 번의 감독과의 인터뷰, 그리고 월례비행을 통해서 관람한 관객들의 5건의 리뷰이다.

이제 새롭게 <프리즈마>를 관람해보자. 나는 임철민이라는 감독이 이 영화를 찍기전에 두 작품을 찍었다는 사실도 알고 그 작품들과 이 영화가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영화시작의 암전과 노이즈장면들은 사실 소리를 따기위해 찍었던 장면들을 활용한 것이라는 것도 안다. <프리즈마>라는 작품을 만들기전에 있었던 내러티브들이 영화를 찍는 과정에서 해체되고 사라졌고 다양한 푸티지 영상들이 활용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캠코더로 찍은 것 같은 장면들은 감독이 직접 찍은 영상이 아니라 지인들에게 받은 장면들이고 서로 연관성을 지어서 나열하지 않고 랜덤으로 집어넣은 영상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에게 새로운 <프리즈마>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억에 대한 불확실성과 그러한 기억들로 구성되는 나라는 사람에 대한 영화로 다시 찾아왔다. 또한 푸티지 영상들로 구성한 영화를 통해 조각 조각되어 구성되어지는 인간, 내가 기억하는 나, 남들이 기억하는 나, 기억하지 못하는 나 등을 내러티브가 아닌 촬영의 부산물들로 구성해내어 스토리가 아닌 이미지로 각인해주는 영화라는 감상을 하게 해주었다.

 

영화이해를 위해 자료를 찾다가 이런 리뷰를 보았다.

‘프리즈마의 경우, 보는 내내 고역이었다. ... 사실 영화의 상영시간 내내, 이 안에도 감독의 메시지가 숨어있을 것이다. 이 안에서도 나에게 도움이 되고 내가 인용할 만한 키워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하며 보았지만 정말 솔직하게 말해서 나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었고, 감동도 없었으며, 내 한 시간이 너무나도 아까운 시간이었다.’

재미있게도 이 리뷰야 말로 내가 왜 독립영화읽기모임 ‘필독’에 참여하게 되었는지를 말해주는 리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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