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극장

박근영​ <한강에게>

이형관
1. 한강

한강에는 비일상과 일상이 공존한다. (불)꽃놀이를 즐기고, 푸드 트럭 앞에서 음식을 기다리는 등의 비일상적 자극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면서 자전거를 타고, 맥주를 마시고, 노래를 듣는 등 대부분의 일상적 활동이 가능한 장소이다. 한강의 비일상과 일상의 공존은 한강과 관련된 사람, 감정, 행위의 경계를 다양하게 확장시켰다. 이제 한강은 남산타워를 멀리 제치고, 어엿한 서울의 대표 상징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한강이 일상 속으로 파고든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1960년대 이전까지 한강은 나루터가 자리 잡고, 낚싯배가 오고 가는 등 수상 교통과 물류의 중심 공간으로 ‘강’ 본래의 역할이 컸다. 이후 1980년대까지 수해 방지, 수면 매립, 수중보 건설 등 도시문제 해결 목적의 ‘제1·2차 한강종합개발’이 이루어지며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대비했다. 이처럼 자연 상태였거나 개발의 대상이었던 한강은 2000년대 들어서며 우리 일상으로 스미기 시작한다. ‘새서울 우리한강 기본계획’과 ‘한강르네상스’ 등의 계획은 한강 중심으로 서울의 공간구조를 재편했다. 한강을 자연 친화형 휴식공간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경관개선, 접근성 향상, 문화공간 조성 등의 계획이 수립됐고 이용객은 꾸준히 증가했다. 2010년대 후반부터는 ‘한강변 관리 기본계획’ 등의 계획을 통해 한강이 가진 자연성과 역사성을 중심으로 기존 정책을 보전하고 보완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한강은 시대별 패러다임을 수용하며 현재의 모습에 도달했다. 한강으로의 물리적·시간적 경계는 무너졌고 일상적 성격이 단단하게 자리 잡았다. 이제 “한강 가자”라는 말이 더 이상 부담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굳이 말을 하지 않더라도, 우린 자연스럽게 한강으로 향한다.

영화 <한강에게>는 ‘일상적 장소로 진화한 한강’에 인물의 기억을 중첩시킨다. 진아(강진아)는 오랜 연인인 길우(강길우)를 기억한다. 더 이상 둘만의 기억을 생산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속에서 그와 함께 보낸 일련의 과정을 현재화한다.

진아는 주로 장소를 통해 길우의 기억을 짊어진다. 덧없는 말을 나누며 염색하던 화장실, 무지개를 음미하던 세탁방, 연봉 순위를 노닥거리던 침실에는 길우의 자취가 남아있다. 그중 한강은 그의 흔적이 가장 짙게 달라붙어 있는 듯하다. 함께 자전거를 타고, 폭죽을 쏘고, 라면을 먹고, 술잔을 기울이던 곳. 길우의 잔상, 목소리, 촉감 등 기억의 원천으로 작동하는 모든 감각들이 한강이라는 장소에 합성되어 길우의 기억을 생산하고 저장한다. 한강은 진아와 길우의 일상이면서, 둘의 과거를 현재로 가져와 재현하는 매개의 역할을 한다.

영화는 길우의 사고 원인에 대해 해설하지 않는다. 다만 사고 원인이 진아와 길우의 다툼 이후 한강에서 발생한 ‘어떤 일’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진아에게 남은 길우의 마지막 기억도 한강이라는 장소에 각인되어 담겨 있다. 진아는 한강을 보며 길우를 떠올린다. 어쩌면 한강에 침전되고 퇴적된 길우의 기억이 길우가 부재한 진아의 현재를 존속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영화 마지막 부분, 진아는 자신의 시집을 챙겨 한강으로 향한다. 길우와 일상을 공유하던 장소이면서 길우의 부재의 원인이 된 ‘한강에게’ 진아는 무슨 말을 전했을까. 그리고 길우에게는 어떤 안부를 남겼을까. 진아에게는 길우의 기억이 머무를 수 있는 장소, 한강이 필요하다.

한강은 다양한 영화에 배경으로 등장했다. <괴물>에서는 거대한 괴물이 탄생한 두려움의 공간으로 등장했고, <김씨표류기>는 고독하고 외로움의 기반으로 한강의 밤섬을 선택했다. 한강의 안부에 귀 기울이는 <랑랑_상상박물관>과 서강대교부터 마포대교까지의 짧은 로맨스물 <마포에서 서강까지> 등의 단편영화에도 한강은 등장한다. <한강에게>는 앞의 영화들과 달리 ‘한강’이라는 장소를 일상의 공간으로 바라본다. 단순 배경을 뛰어넘어 한강 안에 녹아있는 인물의 기억을 일깨우고, 재현된 기억은 다시 인물에게 영향을 주는 순환적 구조를 구성한다.

누군가는 르네상스를 꿈꾸고, 누군가는 치맥을 하고, 누군가는 텐트를 치는 곳이 바로 한강이다. 한강은 앞으로도 끊임없는 변형이 이루어질 것이다. 하지만 한강은 이제 일상이다. 지속적인 변화를 거치더라도 일상의 한강은 필요하다. 한강에 담긴 추억과 담길 추억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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