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콜 : 
불이 켜진 후 하고 싶었던 말들

임대형​ <윤희에게>

김소연 <문영>​

김팝콘
2020. 03. 30
이곳에서 나로부터 당신에게

작년 생일, 오래된 친구가 편지를 써 주었는데 그 안에 그런 말이 있었다. 편지를 쓰는 걸 좋아하는데 너에게는 편지를 쓰는 것이 처음인 것 같다고. 오랫동안 너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고, 말이다. 그 말을 읽으면서,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영화를 보지 않았을 때의 나는 <윤희에게>가 나카무라 유코 (쥰 役)와 김희애 (윤희 役)의 사랑이야기라고만 알고 있어서, 대충 토드 헤인즈 감독의 <캐롤>이나 최근 개봉한 셀린 시아마 감독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과 같은 영화를 기대했는데, 영화가 시작되고 이 이야기의 문을 여는 사람들이 김소혜 (새봄 役)와 키노 하나 (마사코 役)라는 사실에 조금 의아했었다. 독립적인 관계로서의 사랑이 아니라 주변의 이들이 함께 공유하고 있는 사랑이라니. 새로웠다. 불안해하면서 본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윤희와 새봄이 오타와로 갔을 때, 왜 임대형 감독이 이 영화의 서술자를 그들이 아니라 그들을 사랑하는 이들로 배치했는지, 알 것도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눈이 오는 것을 본다. 눈이 오면, 눈은 우리를 스치고 제 자리를 잡는다. 날이 따뜻해질 때까지, 눈은 그 자리에서 가만히, 있다가, 비로소 해가 들면 조용히 녹아 사라진다. 눈이 녹은 물을, 그러니 눈을, 흡수한 땅에서 새 생명이 자란다. -이것은 생이 끝날 때까지, 무한히 반복된다. -

 

시간은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다른 날과 다른 해를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과거에 의해서이고, 우리가 다른 날과 다른 해를 기억할 수 있는 이유는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과거를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불가분의 시간들은 나와 당신의 연결로부터 완성된다. 앞서 말한 이 사랑 이야기의 안내자가 새봄과 마사코인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들은 서로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그들이 함께 보낸 시간들은 한 마디의 말보다 더 많은 의미들을 만들어낸다. 층층이 쌓인 사랑에는 애시당초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다. 새봄이 엄마의 옛사랑을 만나기 위해 고군분투한 이유는 바로 그가 윤희라는 사람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며, 마사코가 쥰의 편지를 우체통에 넣은 이유 또한 그가 쥰이라는 사람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얼굴에 잡힌 주름들이 그들의 삶을 증명하듯이, 서로를 향한 시선은 미완으로나마 당신에 대한 신뢰와 사랑의 증명이 된다.

이전, 유사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었던 영화는 김소연 감독의 <문영>이었다.

영화의 시작과 중간, 문영이 들고 있는 카메라 속 화면을 우리는 본다. 영화과에 다니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예쁜 화면’이나 ‘고화질의 선명한 화면’ 따위는 없다. 흐리고 어지럽다. 시선을 둘 곳을 찾지 못한다. 정처없이 옮겨 다니는 캠코더는 너무 가벼워서 누구에게도 머물 수 없어 보인다. 이 화면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을 거쳐 나온 답은 모종의 발버둥이었다. 생명을 찾기 위한, 삶의 이유를 찾기 위한 발악. 삶의 이유를 알 수 없음에도 기어코 살아가야한다면 어느 곳에서라도 의미를 찾아야한다. 의미를 찾지 못하는 삶이라면 적어도 어디서든 의미를 만들어 내야한다. 내가 바라본 문영은 삶의 이유를 절실히 찾는 아이였다.

갈 길을 잃은 듯이 헤메이던 카메라는 그녀가 말을 하고자 마음먹었을 때, 제 자리를 찾는다. 문영의 언어적 결핍은 시간의 부재와 연관되어 있다. 문영에게 시간은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전부 현재형이었다. 현재형의 시간 속에는 언어가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틈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희수를 만나기 전과 후로, 엄마처럼 보이는-사실 그가 엄마이지 않다는 것은 정해진 것이며,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 여자를 잡은 이유는 엄마라는 확신이 아니라 더 이상 엄마를 찾지 않아도 괜찮다는 확인이다.-여자에게 처음으로 울음을 터트린 것을 계기로, 문영에게는 의미의 개념이 생긴다.

비로소, 시간은 시작되었다.

<윤희에게>와 <문영>을 바라보는 두 시간이라는 시간동안 우리는 자의와는 별개로 윤희와 문영의 자리, 바로 그 자리에 선다. 크레딧이 올라가면 우리는 그들에게 자리를 되돌려 주고 그들을 애정하는 시간의 목격자들이 되어 주변 사람들에게 윤희와 문영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임대형 감독이 위치하고자 했던 자리, 김소연 감독이 문영의 카메라를 통해 내어주고자 했던 자리이다.

마법같은 두 시간을 통해 우리는 그 자리에 서서 그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다가올 것이라 믿는 미래를 염려하고 축복한다.

Ps. 편지를 쓴다는 것은 글자를 씀을 통해서 당신과 함께한 시간을 돌아보며 그 시간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를, 그리하여 헤아릴 수 없는 앞으로의 나날들을 소망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서툰 시간들을 감사하게도 함께 해준 당신에게 어색하게나마 마음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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