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칭 영화

<조류인간> 빛나 (배우 이빛나) 시점

"새가 된 엄마에게"

비행기에서 문득 창을 보는데 커다란 새가 비행기를 따라 날고 있었어요.

소름이 끼쳤어요. 저 새가 비행기 동체에 부딪히거나 더 끔찍하게는 엔진에 빨려들어가 버드 스트라이크가 생기면 어쩌죠.

새가 되고 싶었던 사람의 마음과 기계보다 높이 날고 싶었던 새의 마음이 부딪혀 먹혀버리면 지상의 사람들은 새를 탓하겠죠. 하지만 그건 새의 잘못도, 그런 마음을 품은 사람의 잘못도 아닌데.

나는 그 새가 너무 걱정돼서 잠깐 눈을 감고 있다가 다시 창밖을 보는데 방금 전 그 새가 나를 똑바로 보면서 창을 두드렸어요.

 

쿵- 쿵- 쿵—

 

세 번째로 부딪히는 순간, 승무원이 깨워서 잠에서 깼어요.

꿈속에서 엄마를 본 걸까 생각했어요.

안녕 엄마. 그러고 보니 엄마에게 편지를 쓰는 건 처음이네요.

 

어버이날이니 무슨 날이니 할 때마다 학교에서 엄마에게 편지를 쓰라고 종이를 쥐어줬지만 나는 쓰지 않았어요. 선생님이 왜 쓰지 않고 있느냐고 물어보면 나는 아기 때 엄마가 집을 나가버려서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지요. 선생님은 잠깐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그럼 아버지에게라도 써야지’하고 가버렸어요. 아빠도 집을 나간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아세요 엄마? 아빠가 엄마를 15년 동안이나 찾아다닌 거. 그동안 저는 친척집에서 컸어요. 친척들은 아주 잘 해줬다고 말하기는 이상하지만 그래도 동화책에 나오는 고아를 돌보는 사람들처럼 구박하지는 않았어요. 아빠가 이 집의 돈줄이기도 했으니 오히려 내 눈치를 봤다는 말이 맞겠네요. 그러니까 저는 아무 어른도 없이 혼자 큰 셈이에요. 열일곱 살 겨울, 아빠가 15년의 여행을 끝나고 아주 돌아오기 전까지요.

 

그건 정말 이상한 일이었어요. 언제나 돌아오면 다음 여행을 준비하던 아빠가 텐트와 침낭을 버린 것도, 제게 짐을 싸라고 한 것도. 아빠는 저를 데리고 우연제라는 공동 작업실에 가서 며칠, 몇 달을 글만 썼습니다. 그래도 그 곳은 좀 괜찮았어요. 동네를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도 재미있었고, 읽을 책이 많았거든요. 하루는 책을 읽다가 조금 지루해져서 돌을 던지며 나무에 앉은 새를 맞추고 있었는데 아빠에게 걸려서 호되게 혼이 났어요. 아빠는 원래도 화를 자주 냈지만 그건 평소와는 다른 느낌이었어요. 그날 아빠는 술을 한 바가지로 마시고 취해서 저를 붙잡고 말했어요.

 

‘네 엄마는 이제 없어. 새가 되서 날아갔어.’

 

엄마가 없다는 건 진작 알고 있었지만 그 다음 말이 이상하게 들렸습니다. 아빠는 소설가니까 이것도 엄마가 이제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그런 문학적인 비유인가 싶었어요. 그런데 마주친 아빠의 눈이 너무 단호하고 슬퍼서 나는 문득, 엄마가 진짜 새가 되어 날아가 버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엄마의 딸인 나는 뭘까요. 나는 새의 딸인가요. 엄마의 딸인 나도 언젠가 새가 될까요. 이런저런 생각들이 들다가 문득 겁이 나서 울었어요. 오랜만에 우는 나를 바라본 아빠는 물끄러미 보다가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만든 세상에서 모두가 적응하고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엄마는 이 세상과는 맞지 않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엄마는 우리를 버린 게 아니라 당신 자신으로 살기 위해 우리를 떠나 새가 되었다.

 

뜻밖의 대답에 나는 잠시 얼이 나갔다가 되물었습니다. ‘아빠가 그걸 봤어?’ 아빠는 천천히 말했어요.

‘어. 봤어. 엄마가, 아니 네 엄마였던 사람이 알에서 다시 태어나는 걸.’

 

그 이후로 저는 한 번도 아빠의 앞에서 다시 엄마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묻지 못한 한 가지가 있어요. 엄마가 정말 새가 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종류의 사람이라면, 그래서 새로 다시 태어났다면 엄마의 딸인 저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저도 언젠가 새가 되는 걸까요. 질문이 목까지 차올랐는데 아빠가 너무 슬퍼보여서 물어볼 수 없었어요. 묻지 못한 질문은 내내 제 머리를 맴돌았습니다. 나는 자라서 무엇이 될까요. 나는 인간으로 살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을 품으며 내 사춘기는 끝났습니다. 나는 아빠가 엄마의 배신을 견디지 못한 나머지 소설을 쓰고 그 소설을 믿어버리게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처럼 책과 공상에 빠져 살다간 아빠의 말을 믿어버릴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이야기 같은 것들은 최대한 멀리하고 눈에 보이는 것들 -평범한 사람이 되기 위한 것들-에 매달렸어요. 틈만 나면 빼먹던 학교도 나가고, 시시한 이야기를 하는 반 친구들도 사귀고, 시험 공부 같은 것도 해보고. 그렇게 저는 세상에 적응하는, 혹은 적응하기 위해 분투하는 평범한 인간 어른이 되기 위해 노력했어요. 남들처럼 공부해서 대학에 가고, 남들처럼 연애도 하고, 취직도 하고... 그렇게 살다보니 어느새 엄마가 나를 떠난 나이가 되었네요.

 

얼마 전 아빠는 하늘로 돌아갔어요. 과음이 원인이 된 병이었어요. 병원에서 몇 달을 보냈는데 하루는 아빠가 창밖을 보다가 ‘야. 나 죽으면 어디 묻지 말고 몽골에서 풍장시켜줘라’는 어이없는 말을 했는데 그게 아빠의 목소리로 들은 마지막 말이었어요. 장례식 마지막 날 못 보던 새가 병원에서 보이는데 잊고 지내던, 아빠에게 들은 말이 떠올랐어요. 그건 엄마였을까요.

 

장례식이 끝나고 짐을 정리하다가 아빠가 남긴 엄마의 다이어리와 아빠가 엄마를 잃은 후 쓴 소설 몇 권을 읽었어요. 이제 나는 아빠의 말이 진실이었다는 것을 압니다. 엄마가 나를 버리지 않았다는 것도 이제는 알아요.

 

그런데 엄마 나는 정말 조류인간이 아닌 걸까요. 가끔 이상한 기분이 들어요. 애써서 세상에 발을 붙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요. 한 발만 잘못 디디면 균형을 아주 잃어버릴 것 같은 느낌, 나는 땅 아닌 어딘가에 있어야할 것 같은 느낌…. 이건 조류인간의 특징인가요, 누구든 겪는 일인가요? 어쩌면 내가 너무나 엄마와 아빠와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서 내가 만든 ‘사람의 선’에 지나치게 집착해왔을지도 모르겠어요.

 

이제 곧 나는 몽골에 도착해요. 엄마가 떠나고 싶었다던 몽골이요. 아빠와 함께 올 수는 없었지만 아빠의 유언 대신이라고 생각해요. 여기서 엄마를 만나게 되길 바랄게요. 나는 엄마를 알아볼 수 없겠지만 엄마가 나를 알아본다면 내게 신호를 주세요.

 

그럼 곧 진짜 모습으로 다시 만나요. 높이 훨훨 나세요 엄마.

윤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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