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적(‘短編’的)
정윤철 <기념촬영>
이채현
기억의 방식

‘from time to time. 때때로.’ 완전한 망각은 없고 때때로 기억은 환기된다. 스쳐 들은 멜로디로부터, 스쳐지나는 풍경으로부터. 기억은 예고도 일련의 규칙도 없이 마음 앞에 선다.

 ‘나’는 그날의 너를 기억한다. 네가 마시던 우유와 네가 외우던 영어단어를, 너와 함께 부르던 유행가를 기억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생생해지는 기억이 있다면 이런 것이다. 아마 그 날따라 막히는 길이 이상했을 것이고 우왕좌왕하는 사람들과 분위기가 먼저 버스를 타고 떠난 너의 비극을 예감하게 했을 것이다. 찰나의 비극은 수많은 가정을 불러들인다. 그 버스를 타지 않았더라면, 다른 길로 갔다면… 망각되지 않는, 아니 될 수 없는 기억은 언제까지고 그날로 되감기된다. 우리는 그때의 시공간을 몇 번이고 다시 겪어내며 비극을 끝없이 재경험한다. 지하철 사고로 동생을 잃은 한 뮤지션은 이렇게 말했다. “그녀가 죽기 바로 전날, 새벽까지 우리가 그렸던 내일이 난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고. 이따 만나자는 우리의 약속이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 너의 내일이 영원히 없어진 것이, 남겨진 우리의 영원한 그리움이.

 성수대교는 ‘새롭게 태어났’을지 몰라도 그때의 비극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그때의 시간도 감정도 다 그곳에 있다. 아무 것도 모른채 마지막 오늘을 보낸 개개인은 ‘희생’된 것이 맞다. 우리는 비극에 파묻혀서도, 그렇다고 망각해서도 안 된다. 단지 오래도록, ‘때때로’ 떠올려야 한다. 때때로 그때를, 너희를 기억하는 것. 마음에 담아두고 때때로 마주하는 것. 그래야만 비극은 되풀이되지 않는다. 지금의 성수대교가 ‘탱크도 거뜬히 지나갈 정도로’ 튼튼하다 할지라도 어제의 성수대교가 잊힌다면 오늘의 비극도 충분히 잊힐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떠올려야만 한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사랑과 우정사이’가 유행가일, 여전히 톱스타 손지창을 좋아할 친구들과 그때처럼 기념사진을 찍는다. 그때의 너희와 지금의 내가, 그때면서도 지금인 이곳에서 사진을 남긴다. 이것이 영화가 기억하는 방식, 그리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방식이다.

 

 

네이버 인디극장 <기념 촬영> (http://tvcast.naver.com/v/905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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