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적(‘短編’的)
김정은 <우리가 택한 이 별>
이채현
이별하지 못하는 이 별

 몇 달 전, 친한 친구가 고시를 준비하러 노량진에 ‘들어’간다고 했다. 아, 이제 이 친구를 못 보겠구나. 응원 뒤에 자연스레 서운함이 따라붙지만 이내 지워버린다. 그 별에 ‘들어간다’는 것이 언제부터 단절을 의미하게 되었을까. 나는 그 별의 세입자가 된 친구와 합격을 담보로 무기한 이별했다.

 

 사회는 ‘이 별’을 택한 젊음에게도 택하지 않은 젊음에게도 부채감을 준다. 어쩐지 서로의 별에 대해 변명하게 한다. 너는 안정 따위나 쫓지, 나는 꿈을 쫓는 거야. 그러는 너는 철없는 소리나 해대지, 꿈만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니. 서로의 별에 관해선 이야기할 자격이 없는 것처럼. 우리의 날 선 말들은 결국 스스로를 향한다. 불안해서. 내가 택한 이 별이 옳은 것인지 이 별에 있는 나도, 저 별에 있는 너도 불안해서.

 

 우리는 각자가 택한 이 별이 잘못된 별일까 봐 두렵다. 이 별에서는 열심히 하지 않는 나를,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나를, 하루에도 몇 번 씩 내가 가장 미워해야 한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미래만 내다보아야 해서. 불확실한 지금에 발디딘 채 더 불확실한 미래를 바라보아야 해서.

 

 이름과 나이를 터놓고도 다음 날이면 ‘308호 세입자’가 되는 별에서, 옆 방의 누군가가 흐느끼면 ‘시끄럽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별에서, 부모님께 돈을 받고도 지난 꿈에 미련을 두는 자신을 혐오해야 하는 별에서, 보고 싶다고 찾아온 남자친구가 내 삶을 망치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별에서, 발소리조차 조심해야 하는 이 2평짜리 작은 별에서, 손바닥만 한 창문 밖으로 내다보는 풍경조차 사치인 이 별에서, 우리가 기다리는 내일은 대체 어떤 모양일까. 별은 어두워야 더 빛난다지만, 그렇다고 우리는 끝도 없이 어두워지기만 하는 이 별을 도대체 언제까지 견뎌야만 빛날 수 있는 것인지. 지금의 어둠을 견뎌야만 찾아온다는 그 빛은 정말 찬란한 게 맞는지. 결국, 이 별은 노량진만이 아니라서.

 

 우리는 이 별과 이별하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영영 이별하지 못할까 봐 두렵다. 그리고 오늘도 이 별에는 새로운 세입자가 찾아온다. 새로운 세입자에게도 창문은 사치다.

 


 

네이버 인디극장 <우리가 택한 이 별> (http://tv.naver.com/v/1018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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