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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친구, 그리고 죽어가는 소녀>
감독:  알폰소 고메즈-레존

 

<Me and Earl and the Dying Girl> (2015)
Director: Alfonso Gomez-Rejon

"좋은 친구가 된다는 것"
추천 코드

1.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싶다.

2. 인간관계는 나에게 언제나 어려운 숙제였다.

3. 더 좋은 사람, 더 좋은 친구로 기억되고 싶다.

 

 너에게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난 그리 친구 관계가 좋은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아. 어렸을 때는 해마다 크게 한번씩은 친한 친구와 싸워서 멀어지고 따돌림을 당한 경험도 꽤나 되지. 언제나 크고 작은 갈등의 어딘가에 내가 껴 있어서 한 친구는 나를 트러블메이커라고 부르기도 했어. 그리고 성인이 된 지금에도 나에게 사실 친구 관계라는 것은 참 많이 어려워. 너무 사람을 쉽게 믿는 편이라 아무에게나 속 얘기를 하고 다니다 상처 입은 경험도 많고 내 모나고 날 선 성격 때문에 상처를 줘서 좋은 사람을 잃은 적도 많아. 어떤 경우가 되었든 나에게 사람을 잃는 것은 너무나 큰 아픔이었어. 나의 고갈하지 않는 단 하나의 에너지원은 언제나 사람이었으니까.

 

 사춘기 이후부터 나에게 가장 큰 화두는 항상 단 한가지였어. “어떻게 더 나은 사람, 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누구에게도 말한 적은 없지만 내 곪은 상처에서 피어난 이 단 한가지 질문이 결국 지금의 내가 되기 까지 수많은 결정과 선택을 관통하는 딱 하나의 기준이었어. 이 질문의 좋은 점은 완성형이 아니라는 거지. 지금의 나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더 괜찮은 나를 바라는 것이니까.

 

 그런 나의 고민이 컸던 탓에 나는 좋은 관계를 담은 영화나 더 나아지는 사람의 모습을 담은 영화를 좋아해. 오늘 나를 찾아온 너에게 소개해 주고 싶은 영화도 그런 영화 가운데 하나야. 영화 <나와 친구, 그리고 죽어가는 소녀>에 대해서 얘기 해 줄게. 이 영화에서 ‘나’를 맡고 있는 주인공 그렉의 일평생 목표는 ‘투명인간처럼 사는 것’. 학교 내의 모두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깊이 친해지지는 않는다면 누구의 기억에도 뚜렷이 남지 않고 마치 없는 사람처럼 조용히 잊혀 질 수 있다는 게 그렉의 이론이야. 문득 어렸을 때 단체사진을 보면 분명 나랑 사이는 좋았던 것 같은데 이름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친구 있지? 딱히 싸운 적도 없지만 생각해보니까 친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몇 번 같은 반도 했었고 곧잘 같이 놀기도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친구의 집은 어딘지, 형제가 있었던지 같은 걸 생각해보면 아는 게 하나도 없는, 그냥 자연스레 잊고 있었던 그런 친구 말이야. 아마도 그렉은 그런 걸 바랬던 것 같아.

 

 그런 그렉의 유일한 친구는 얼이야. 그렉은 얼을 친구라고 하지 않고 항상 동업자라고 소개해. 둘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많은 시간을 보내고 함께 영화를 만들며 같이 성장했어. 세상 만사에 염려가 많고 조심스러운 그렉에 비해 얼은 쿨하고 시니컬한 태도를 유지하는 데 이 두 친구의 케미가 아주 볼만해. 어느 날 그렉의 집으로 걸려온 한 통의 전화에 그렉의 삶은 완전히 바뀌어 버려. 깊이 사귀는 ‘친구’는 절대 만들지 않겠다던 그렉의 철칙이 무색하게도 한 죽어가는 소녀와 친구되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 거야. 만약 네가 새 친구를 만드는 데 어려움이 있거나 어색한 사이에 흐르는 침묵을 못 견뎌 하는 성격이라면 그렉이 이 진땀 나는 상황을 어떻게 뚫고 나가는지를 꼭 봤으면 좋겠다.

 

 <나와 친구, 그리고 죽어가는 소녀>는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미국의 독립영화제인 ‘선댄스 영화제’에서 2015년에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작품이야. 주인공 그렉을 연기한 토마스 만은 젊은 시절의 잭 브라프가 떠오르는 선하고 쳐진 눈매를 가졌는데 네가 만약 <가든 스테이트>를 좋게 봤다면 이 영화도 좋아할 것 같다. 죽어가는 소녀를 연기한 올리비아 쿡은 이미 몇 편의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는데 대부분 공포나 스릴러 장르였거든. 이번 영화에서는 이 배우의 섬세한 연기가 아주 돋보였어. 눈물 짜내는 뻔한 환자 연기는 아니니까 안심해도 좋아. 주인공 세 친구를 포함해서 학교에 한 명쯤 있었을 법한 다양한 유형의 친구들이 나오는데 나는 저들 중 어떤 친구였을지, 그리고 내 친구들은 어떤 유형이었는지 생각해보는 것도 이 영화를 보는 소소한 재미들 중 하나였던 것 같다.

 

 이 영화는 앞으로도 친구를 별로 만들지 않고 조용한 나만의 세상을 지키며 살아가고 싶은 사람에게도, 세상 모든 사람과 교류하고 매일 매일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싶은 사람에게도 꼭 보여주고 싶은 영화야.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고 어떤 방식으로든 그들과 상호작용 해야 해. 그 관계에서 내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바뀌어 나가는 거고 그게 결국 우리를 다른 인간으로 존재하게 하는 이유 아닐까? 고립된 혼자로 지내는 것도 아무하고나 쉽게 사귀는 것도 각자의 방식일 뿐 어떤 것도 틀린 것은 없기 때문에 자신이 아닌 모습으로 바뀔 필요는 없는 것 같아. ‘좋은 친구’라는 것이 어떤 정형화 된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그래서 어쩌면 더 웃기는 이야기겠지. 잘 알다시피 우리는 너무 다른 사람들이잖아. 각자의 거리감을 존중하면서도 공존한다는 것은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게 분명 가능하다고 믿거든. 그리고 이런 따뜻한 영화는 그런 내 믿음을 자꾸만 더 단단하게 해. 쉽진 않겠지만 또 시간이 오래 걸릴지도 모르겠지만 너무 다른 우리 둘은,

 

 여전히 꽤 괜찮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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