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수족관

전고운 ​<소공녀>

천혜윤
“나는 안전해 – 궁극의 개인주의자 선언”

 <소공녀>에 대해서라면 아마도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2010년대의 한국에서 살고 있는 젊은 여성의 이야기로, 그는 위스키와 담배, 그리고 애인과 보내는 시간을 사랑한다. 말하자면 흔적을 남기지 않는 행복들만 사랑하는 것이다. 이 세 개 꼭짓점으로 이루어진 일상은 그에게 더없이 충분하다. 하지만 사건이 발생한다(영화에는 항상 사건이 발생하니까). 새해 1월 1일을 맞아 담뱃값이 약 두 배 폭등하고, 옷도 벗기 어려울 정도로 추운(하지만 바퀴벌레들만 꿋꿋이 잘 살아남는)원룸의 월세가 오른다. 주인공 ‘미소’는 자신의 삶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 지를 일찍이 결론지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이 세 가지 조건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는 걸까?

 미소의 전망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소공녀>의 세계는 담배나 위스키의 가격은 예고 없이 오를지언정 주인공을 위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미소의 선택을 지켜보는 일 뿐이다. 그는 영화에서 주요한 선택의 순간들을 몇 차례 맞이한다. 고민과 결단의 과정은 생략되고, 자신이 내린 결정을 되돌아보지 않는다. 첫 번째 결정은 머물 곳 하나 정해두지 않은 채 월세방을 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트렁크 가방에 짐을 가득 싣고서 거리를 오가는 미소의 모습-길을 전전하는 여성의 이미지-은 어쩐지 낯설지 않다.

 최근 몇 년간 한국 독립영화에는 집 없는 여성들을 주연으로 그린 영화들이 의미심장하게 자주 등장했다. <스틸 플라워>의 ‘하담’, <꿈의 제인>의 ‘소현’과 ‘지수’, 그리고 <소공녀>의 ‘미소’까지. 모두 여성 주연의 장편 영화들이고 이렇다 할 혈연관계가 없는 젊은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점도 동일하다. 2010년대의 한국처럼 여성-생존 혹은 여성-안전의 도식이 흐릿해져 가는 공간 속에서 위와 같은 설정이 반복해서 스크린에 오르는 것은 다소 가공되었을지언정 여성 인물들이 처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상황의 공포가 무엇인지를 반증하는 셈이다.

 <스틸 플라워>의 하담이 노동을 유일한 구원이라 믿고 마치 동물의 울음소리처럼 ‘일하게 해달라’고 간청할 때, <꿈의 제인>의 소현은 꾸며낸 거짓들로 타인에게, 그리고 타인의 집에게 귀속되기를 소망하며, 1인분 이상의 노동을 감행하며 거처를 마련하려던 지수는 상징적 ‘아빠’의 집에 영영 갇혀 (간접적으로) 살해당한다. 이들에게 집은 필사적인 생존의 공간이기에, 안전하기 위해 세계와 계속해서 다툰다. 하지만 <소공녀>의 미소는 자신의 유일한 소속이라고 믿고 있는 옛 밴드부 동아리 멤버들의 집을 차례로 방문하면서 되레 공간에 대한 욕망에서 멀어진다. 그 공간들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연고와 소속이 없는 미소는 자신의 유일한 소속이라고 믿고 있는 옛 밴드부의 멤버들을 차례로 방문한다. 이들은 미소와 다르게 성인으로서의 구체적 소속이 있고, 그 소속이 곧 그들의 현재를 설명한다. 직장인 ‘문영’과는 문영의 회사에서, 기혼 여성인 ‘현정’과는 현정이 가사노동을 전담하고 있는 집 안에서 만난다. 그런가하면 직장인 ‘대용’과 만나는 장소는 그의 소속인 회사가 아니라 실패한 결혼의 흔적들로 가득한 그의 아파트다. 미소는 그곳에서 대출금이 저당 잡힌 아파트에 새처럼 갇혀있는 대용을 목격한다. 미소가 밴드부의 멤버들과 재회하는 장소들은 사실 그들의 내면이 가장 깊숙이 구속되어 있는 공간이다.

기혼자인 현정과 ‘정미’, 그리고 기혼 희망자(?)인 ‘록이’의 공간은 한층 더 노골적이다. 남편의 가족과 함께 사는 집에서 현정은 4인가족의 식탁에 앉지 못한 채 가사노동에 매몰되어 있고, 정미는 가사노동을 하지 않으나 전형적인 ‘아내’의 사회적 자아를 전유하기 위해 억압을 미덕으로 삼는다. 여기서 미소는 그나마 충실한 목격자이자 관찰자의 역할로 생존하지만, <소공녀>의 최대 빌런 록이의 집에서는 감금당해 겨우 빠져나간다.

 

그리고 또 하나의 공간이 있다. 미소가 가사 도우미 일을 맡고 있는 성 판매 여성의 집이다. 두 사람은 함께 제대로 된 식탁에서 음식을 나누어먹는다. 애인인 한솔 이외에 미소가 누군가와 동등한 일 대 일의 관계로 대화하고 밥을 먹을 수 있는 인물은 그녀뿐이다. 그것은 한편으로 성 판매 여성과 미소의 처지가 거울처럼 동일함을 알려주는 것이기도 하다. 가난하고 집 없는 젊은 여성이 안전히 살아남기 위해 이 세계에서 어떤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지에 대한 쓸쓸한 대답이 여기에 있다. 유머로 채색된 <소공녀>에는 이렇듯 서늘한 순간들이 거울의 반사면처럼 존재한다.

미소의 첫 번째 결단은 집을 나오는 것이었지만 ‘집’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곰팡이가 슬어 사람이 살 수 없는 지경의 집일지라도 그는 보금자리가 될 곳을 찾아 다녔다. 하지만 타인의 공간들을 순례하면서 그는 이제 다른 선택을 한다. 미소는 가사 도우미 노동을 할 만큼 자신이 가장 잘 하는 것이 스스로의 공간, 보금자리를 만드는 일임을 알고 있다. 개인을 소속시키는 공간들, 감금되는 여성들의 공간에서 살며시 빠져나온 미소는 한강 어딘가에 자신의 텐트를 두고 한 몸을 누인다. 미소에게 변화는 언제나 나쁜 것이었다. 위스키나 담배의 가격은 오르고 밴드부의 멤버들은 이제 미소 없이 만난다. 하지만 자신의 공간 한 칸은 변하지 않는다. 그 개인의 세계에서는 누구도 갇히지 않고 누구도 침범하지 않아 안전하다. <소공녀>의 세계는 그러한 전언만을 남긴 채 안온히 사라진다. 그것은 미소의 마지막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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