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적(‘短編’的)
강동완 <당신도 주성치를 좋아하시나요?>
이채현
이미 넓어진 세계를 좁히는 방법은 없으니까

 영화를 보고 나오며 '당신도 주성치를 좋아하시냐’는 질문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뭘까 고민해본 적이 있다. 문장에서 하나만 남기고 지워야 한다면 주성치가 아니라 ‘(당신)도’만 남을 거라 생각했는데, 당신’은’이 아니라 당신’도’라는 점에서 이 질문은 ‘그렇다’는 대답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질문에 담긴 제법 수상한 의도를 좋아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당신도 좋아한다는 작은 공통점에서부터 어떤 증거를 찾으려 하는,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절실한 몸부림 같은 것이 느껴진다는 점에서 그렇다. 나의 취향이 특별하다거나 하는 신화와는 한참 전에 이별했는데도 착각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니까 내가 좋아하는 것을 너도 좋아할 때, 그 이유만으로 우리의 사적이고 특별한 세계가 만들어질 때 말이다.

 한껏 여름에 가까운 나라에서 힘없이 웃는 민규 씨의 얼굴에도 그런 절실함이 있다. 설령 그것이 이제 지나간 사랑을 잊어야 하는 사람의 것임에도 여전하다. 실연하고 홍콩으로 여행을 떠난 민규 씨는 막 이별의 슬픔과 상처에 빠져보려는 참에 같은 방을 예약하게 된 시은 씨의 불편한 방문을 받는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표정이 서로의 얼굴에 스치는 동안, 어떤 연유에서인지 민규 씨는 시은 씨에게 밥 한 끼 같이 하지 않겠냐고 제안한다. 시은 씨를 따라 홍콩의 거리를 걸으며 민규 씨의 얼굴에 가득했던 구름이 조금씩 걷히는데, 인상적인 것은 이들의 대화에 제목과 같은 말들이 자주 오간다는 것이다. “글 써요? 나 책 되게 좋아하는데” “도시적인 건 싫어했는데 홍콩야경은 좋은 것 같아요” 무언가 물들고 있다. 여행은 낯선 것을 경험하며 세계가 넓어지는 일이라는 점에서 사랑과 닮았다. 밤이 한참 깊어 진심의 시간에 가까워지는 동안 민규 씨는 부서진 세계를 꺼내놓는다. 조립하는 방법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절실하다. 다음 날 시은 씨는 없고 간밤에 시은 씨가 한 말만이 끊임없이 민규 씨를 붙잡는다. “민규 씨는 참 좋은 사람인데 여자친구가 왜 떠났는지 알 것 같아요”

 민규 씨는 시은 씨와 함께 걸었던 전날의 시간을 혼자 다시 걷는다. ‘단 걸 먹으면 기분이 안 좋아지지만’ 에그 타르트를 먹어보고 ‘양조위를 닮았다고 생각하지만’ 한껏 주성치로 분해본다. 내가 착각해온 것, 맞다고 믿었던 것을 분해하는 시간이다. 사랑은 세계의 확장, 이라는 말을 어디서 읽었던 것 같다. 읽지 않았어도 상관없다. 실제로 그런 기분을 느껴왔으니까. 이별은 전부라고 믿었던 세계를 부수는 일이다. 그 견고한 세계가 부서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 그렇다. 한 번 넓어진 세계는 원래 크기로 돌아오지 않는다. 바꾸지 말고 받아들여보라는 시은 씨의 조언이 새삼스럽지 않다. 이별의 종착지는 결국 너로 인해 확장된 내 세계를 인정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지하철역을 지나다가도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있고, 지나간 사람을 불러오는 노래들이 있다. 네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무조건 좋아지는 날들이 분명 있었다. 언제는 싫어하던 것을 좋아하게 되었고 내 세계에 없던 것이 이제는 내 세계가 되었다. 그런 자국은 상처를 남기던 시간이 지나도 습관처럼 들러붙어 여전히 이곳에 남아있다.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 있는 것들은 대체로 이미 나의 세계가 된 것들이다. 무던히 커지는 세계를 부정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고, 네가 사라졌어도 이 세계는 사라지지 않는다. 부서도 부서지지 않는 세계는 이미 나의 세계가 되었다. 어쩔 수 없다. 대체로 세계는 그렇게 커지는 모양이다.

© 2023 by Andy Decker. Proudly created with WIX.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