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수족관

임대형​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천혜윤
“불발된 온기”

 금산의 ‘모금산’씨는 자신의 삶을 가진 사람이다. 중년의 이발사인 그는 낮에는 수영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밤이면 글렌 굴드의 피아노 연주가 흐르는 술집에서 하루를 마감한다. 이따금 추억을 가진 다방집에 들러 사별한 아내와의 추억을 회고하기도 한다. 일상의 루틴을 가진 그에게는 인사를 건네는 다정한 이웃들이 많다. 인사는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많으나 이웃들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 듯하다. 예술을 사랑하고 타인에게 무해한 모금산씨의 일상은 페터슨 시의 ‘페터슨’ 씨와 꽤나 닮았으나 몇 가지 차이가 있다. 하루의 일과를 터놓을 아내의 존재가 부재하다는 것, 그리고 그가 시한부라는 점이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의 가장 중대한 사건들이다.

금산씨는 여느 한국 영화 속 중년 남성과는 조금 다르다. 청년들에게 그럴듯한 충고를 남기는 일이야말로 어른의 숙명이라고 믿고 있는 그들과는 다르게 그는 매우 과묵하다. 누군가의 남편도 아니고 아버지로서의 소임도 어느 정도 이루었기에 개인으로 살아가는 법을 터득해야 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의 집에는 언제나 비어 있는 방이 하나 있는데, 아들인 ‘스테반’의 방이다. 스테반은 임대형 감독의 가장 유명한 전작인 단편 <만일의 세계>의 청년 ‘만일’과 사실 크게 다른 점이 없어 보인다. 영화감독 혹은 그 지망생인 스테반은 만일처럼 현실감이 없고 중얼중얼 혼자 외듯 말하는 어법이 비슷하다. 그에게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미래의 계획보다 과거의 파편들이 훨씬 중하다. 그의 곁을 지키는 애인 ‘예원’은 마치 <만일의 세계>의 ‘주희’가 만일에게 ‘글은 쓰고 있냐’고 물었듯 작업적 성취를 재촉한다. 글을 쓰지 못한 채 정체되어 있는 만일의 처지와는 다르게, 스테반은 이 영화에서 꽤 쓸모 있는 사람이다. 다른 아버지였다면 여전히 무능한 철부지에 그쳤겠지만, 열정적인 시네필 모금산씨에게 영화감독인 아들은 매우 유용하다.

모금산 씨에게 영화란 젊은 시절의 가장 원대한 꿈이었다. 그는 배우를 지망했고 오디션을 보러 서울 전역을 돌아 다녔다. 여기서 영화란 픽션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그는 15년 전 죽은 아내가 어린 스테반과 보낸 시간을 담은 짧은 비디오 영상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다. 그 영상을 볼 때 그는 팝콘을 손에 쥐고 눈물을 떨군다. 시한부인 그가 스테반에게 찰리 채플린 식 무성 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를 찍고 싶다고 말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남겨진 영상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메시지이기에 나는 모금산 씨의 좌충우돌 영화 촬영기가, 자신의 꿈을 쫓는 중년 혹은 노년의 이야기를 담은 다른 영화들과는 달리 꼭 자신의 자아실현을 위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완성된 영화 <사제 폭탄을 삼킨 남자>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남기는 유형의 유언인 셈이다. 다만 두 사람에게는 끝내 화해하기 어려운 갈등과 비밀들이 남아 있고 그래서 그들은 서로를 포옹하거나 화해의 신호를 보내지 않는다. 화해하지 않지만 사랑한다. 이해할 수 없지만 곁에 머문다. 아버지는 그렇게 자신이 경험한 상실의 역사를 아들에게 계승한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는 아버지와 아들의 조금 미지근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전부 모금산씨의 이야기인 듯 하고, 혹은 스테반의 성장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스테반의 시선으로 그린 아버지에 대한 회고 같기도 하다. 그리고 그들의 주변에는 언제나 여성 조연들이 있고 여성들과 맺어가는 관계들이 서사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도움을 준다는 것이 오히려 문제가 된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가 부자의 이야기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세간의 평과는 다르게 영화 속 여성 캐릭터들은 진취적이지만 기능적으로만 존재한다. 그리고 그 다분한 ‘기능적인 존재함’이 그들의 내면을 바라보는 것을 흐리게 만든다. 가장 주요한 역할을 가진여성 인물인 예원은 애인인 스테반이 해외 유학과 여행을 가고 싶어하는 그녀의 꿈에 대해 걱정하자 ‘그것은 너의 문제가 아니다’는 방식으로 응답한다. 하지만 그래서 그녀가 내린 결정이나 선택이란 무엇일까? 나는 그녀의 대답이 예원이라는 인물이 소비됨에 대한 알리바이처럼 느껴졌다. 예원이 내린 유일한 결정은 모금산 씨의 영화를 촬영하겠다는 것이다. 그녀의 적극적 행동 혹은 스테반 없이 이루어지는 자율적 행동들이란 어느 밤 모금산 씨와 그의 병에 대해 대화하거나 빈 방에서 그의 일기를 발견하고 이를 읽는 일이다. 예원의 시선으로 공개되는 그의 일기장 내용들은 그의 진가를 알아볼 제3자인 예원의 시선과 해석을 통해 오히려 강화된다.

사실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에서 조연 혹은 그보다 덜한 비중으로 등장하는 여성 인물들은 대부분 극에 부정적인 영향력을 미친다. 금산과 곧잘 어울리는 ‘자영’에게 그의 거처를 비꼬듯 묻는 수영장의 중년 여성은 자영에게 멸시어린 눈빛을 받는다. 이발소 소년의 뒤편에서 팔짱을 낀 채 서있는 소년의 어머니는 소년이 자신의 장래희망에 대해 말할 때 이를 정정하고 대답을 통제한다. 마지막으로 모 부자가 스테반의 숨겨진 혈육이자 모금산의 옛 애인이었던 중년 여성과 재회할 때에는 그 여성의 딸이 이를 방해하고 조롱한다. 이 공통점들에 대해서 오래 고민해 보았으나 어쩐지 떠오르지 않는다. 떠오르는 것은 모금산의 추억의 다방에서 스테반과 쌍화탕을 마시는 예원이 스테반이 일러준 전통적인 방식(노른자를 젓지 않고 마시기)을 거부하고 노른자를 휘휘 저은 채 마시다 묘하게 아차! 하는 시선을 보낸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 영화 속의 많은 여성들은 노스탤지어에 젖은 시한부의 아버지와 쓸모없는 것들만 사랑하는 아들 부자가 체험하는 시대적 제약과 한계에의 은유인지도 모른다. 이 불필요한 은유가 소박하지만 아름답게 자신의 일상을 지켜가는 사람들에 보내는 영화의 시선에 온도를 낮추었다면 지나칠까? 모금산 씨는 병원 창 너머로 터지는 불꽃들을 바라볼 수 있었지만,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는 내게 끝내 불발된 온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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