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歌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심찬양 <어둔 밤>
장기하와 얼굴들
 <달이 차오른다, 가자>
유성현
2020. 04. 28

달이 차오른다, 가자

달이 차오른다, 가자

달이 차오른다, 가자

달이 차오른다, 가자

2009년 처음 들은 후 잊을래야 잊지 못 하는 후렴구. 11년 전 당시 막내 이등병이었던 나에게, 선임 말년 병장이 굉장히 웃긴 영상이 있다며 반강제로 보여준 영상이 미미 시스터즈의 현란한 춤사위와 함께한 장기하와 얼굴들의 EBS 스페이스 공감 공연이었다. 처음으로 장기하와 얼굴들을 본 그때 느낀 감정이 어땠는지 이제와서 가감없이 묘사하기는 불가능하겠으나, 적어도 2018년 12월 이 밴드가 해체하기까지 신곡이 나올 때마다 기대하며 들을 힘은 그때 이미 충분히 받았다고 해야겠다. 엽기적이라고 하기에는 점잖고, 진지할 때조차 조금은 우스꽝스러웠던 그들.

<어둔 밤> 속 등장하는 영화 동아리 ‘리그 오브 쉐도우’에서 받은 인상도 이와 비슷했다.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허세를 부리는 그들을 보며 나는 속편하게 웃고 있었고, 반대로 그들이 애써 짓는 미소가 안쓰럽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으니까. 아무래도 오랜 시간이 지나 장기하와 얼굴들의 노래를 다시 꺼내듣게 된 이유는 밤과 달이라는, 단순히 제목 간의 연관성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처음 듣던 때와는 느낌이 다르다. 말끔히 밀어버린 장기하의 수염 때문일까 싶어 거슬러 올라가 아예 그때의 영상을 찾아봐도, 어쩐지 헛헛하고 쓸쓸한 마음은 더하면 더했지 사라지지 않는다. 원래 이런 노래였나, 약간의 당황스러움.

달이 맨 처음 뜨기 시작할 때부터 준비했던 여행길을

매번 달이 차오를 때마다 포기했던 그 다짐을

장기하가 싱글 앨범 ‘싸구려 커피’로 데뷔한 2008년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출발이 되었던 <아이언맨1>과 <어둔 밤>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가 개봉한 해이기도 하다. 10여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명실상부한 히어로 영화의 시대가 올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그사이 많은 변화를 겪은 건 장가하의 외모만이 아니었고, 영화 나아가 영화계 자체가 변하기에도 충분했던 시간이었다. 이런 현실을 마주한 노감독의 작심한 인터뷰를 리그 오브 쉐도우의 사람들이 보았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그려본다. “(마블) 영화는 본 적 없다. (…) 솔직히 테마파크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감정이나 심리적인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려는 영화(cinema)가 아니다.” 바로 이 발언.

마틴 스코세이지라면 그럴 자격이 있다며 옹호할까, 그래도 크리스토퍼 놀란은 다르다며 반발하지는 않을까. 갑론을박하고 있을 그들의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터진다. “실수로 이거(슬레이트) 두 번 치는 거, 이건 그냥 제사상에서 절 두 번 하는 거랑 똑같은 거야.” 라든지, “물론 내가 너에게 페이를 주지 않겠지만 페이를 받은 것처럼 일하란 말이야, 오케이? 그게 열정이잖아. 우리들이 가진 열정.”처럼 영화에서 오간 온갖 대화들을 생각하면 정말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는 설전이 오가겠지만, 페이크 다큐멘터리에서 설정된 가상의 동아리라는 점에서 이는 어디까지나 상상에 불과한 일이다.

말을 하면 아무도 못 알아들을지 몰라

지레 겁 먹고 벙어리가 된 소년은

 

모두 잠든 새벽 네시 반 쯤 홀로 일어나

창밖에 떠 있는 달을 보았네

“우리 영화 보는 동아리지 찍는 동아리 아니잖아.” 하물며 리그 오브 쉐도우의 영화제작 역시 처음에는 상상에 지나지 않았을 일이다. 대학 동아리의 독립영화로 다른 장르도 아닌 슈퍼히어로라니. 무모하기만 해 보이는 도전에 지레 겁을 먹을 법도 한데 입을 다물기는커녕 안감독, 심피디, 요한 등의 주요 인물들의 터지는 입담과 함께 영화제작은 뜻밖에도(?) 순조롭게 이뤄진다. 그들이 국가의 부름을 받기까지는 말이다. 한창 꿈 같은 이야기 중에 느닷없이 끼얹어진 찬물도 당혹스러운데, 지극히 현실적이기까지 한 이 좌절은 묘하게 더 잔인하게 다가온다. 갑작스레 마무리된 1부, 그렇게 모두가 현실 속으로 잠들었을 때 홀로 영화라는 달을 보고 있던 한 사람이 있었으니. 원년멤버의 의지를 이어받은 동아리 후배 상미넴, 그가 중심이 된 <어둔 밤 리턴즈>의 메이킹 필름으로 <어둔 밤>은 2부로 나아간다.

전역한 선배들을 모아 영화 제작의 꿈을 이어가려는 상미넴의 역할은 흡사 <어벤져스>의 닉 퓨리와 닮아 있는 것도 같지만 그가 모으는 이들은 슈퍼히어로가 아닌 군입대를 통해 현실의 쓴맛을 본, 보통의 예비역 덕후들이다. 심피디의 학과는 군복무 중 통폐합으로 사라졌고, 희박한 가능성에도 오디션을 통해 주인공 배역을 따낸 열정을 지녔던 요한은 무욕의 상태로 안정적인 생활에 안주한다. “내가 언론고시를 준비중이거든, 이게 되게 어려운건데. 근데 뭐 거의 합격했어 이제 접수도 다 됐고 시험만 치면 되거든.” 그나마 안감독의 어설픈 진지함만이 작은 웃음을 주었던 이 단계는 마치 히어로무비, 소년만화의 위기 쯤을 걷는 듯 보인다. 

하루밖에 남질 않았어

달은 내일이면 다 차올라

 

이번이 마지막 기회야

그걸 놓치면 영영 못 가

그렇다면 반전과 절정의 순간은 언제쯤 찾아올까. 이미 지나왔는지, 아직 오지 않았는지 모를 한 번의 기회. 어리숙한 청춘들-영화 속 그들, 현실의 우리들-은 이를 알 길이 없는데, 이때 말그대로 기적처럼 등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벤져스의 슈퍼히어로들은 콜슨 요원의 희생으로 간신히 한 팀이 되었건만, 어둔 밤의 청춘들이 다시 시작할 마음을 먹는 건 여배우 한 명의 합류로도 충분했고, 영화는 카메라를 들어줄 사람 한 명의 귀환으로 어떻게든 완성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쉬울 리가 없는데’ 하면서도, 이 뻔뻔함과 단순함이 왠지 밉지 않았다.

‘영화 속 친구들이라도 영화를 완성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어 뒷이야기를 썼다.’ <어둔 밤>의 전신이 되는 단편 <회상, 어둔 밤>에서 주인공들이 끝내 완성하지 못 한 영화에 대해 가졌던 심찬양 감독의 부채감은 3부에 이르러 완벽히 털어내도 좋을 것이었다. 아는 만큼 보이는 촘촘한 여러 작품의 패러디와 레퍼런스에서도 <어둔 밤 리턴즈>만의 개성은 오롯이 남아있고, <어둔 밤> 내부에서 무심하게 지나온 듯한 장면과 대사가 떡밥처럼 회수되는 순간들은 또 얼마나 놀랍고 재기발랄한지. 영화 <조커>(2019)와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 이후의 <어둔 밤>이었다면 어떤 모습을 하였을까, 상상만으로 다시 또 피식하게 된다.

오늘도 여태껏처럼 그냥 잠 들어 버려서

못 갈지도 몰라

 

하지만 그러기엔 소년의 눈에는

저기 뜬 저 달이 너무나 떨리더라

영화는 불가피하게 충돌하는 현실과 이상의 영역이라는 점에서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를, 뚝뚝 묻어 나오는 장르를 향한 애정에 대해서 우에다 신이치로의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어둔 밤>의 청춘들은 전자의 찰스 스트릭랜드가 광적으로 추구하는 예술에 대한 열정이나, 후자의 인물들이 프레임 밖에서 보이는 짠내 나는 현실적 노동과는 분명 다른 어느 지점에 자리한다. 뜨겁다고 하기에는 미지근함에 가깝고, 짜다고 하기에는 삼삼한 그들은 그저 어떤 마음 하나만 품고 있을 따름이니까. 그렇게 가상과 실제라는 영역에서 <어둔 밤 리턴즈>와 <어둔 밤>이라는 달은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완성되어, 순수하게 맑은 에너지로 빛나고 있다.

물론 하지 못 한 일에 대한 변명과 핑계라면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다. 그냥 잠 들어 버려서, 밤이 무서워서, 어른들이 허락을 안 해서, 일기예보에서 날씨가 흐리다고 해서 등등. 부족한 예산, 촉박한 시간, 미완의 시나리오, 어설픈 연기, 각박한 환경, 나태한 자신 등등. 하지만 그 많은 이유들을 제쳐 두고 기어이 해낼 수밖에 없게 만드는 건, 떨리는 달과 바라보는 눈과 두근거리는 마음이 지닌 힘일 테다.

아 아 아

 

달은 내일이면 다 차올라

 

아 아 아

 

그걸 놓치면 절대로 못 가

2017년 인터뷰에서 심찬양 감독은 “영화에서 ‘다큐멘터리 같은 순간’을 느낄 때 가장 쾌감을 느꼈다”는 봉준호 감독의 말을 전한다. 그 다큐멘터리 같은 순간으로 이루어진 무언가를 꿈꾸는 것으로 <어둔 밤>이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원동력을 불어넣은 봉준호 감독은 2020년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마틴 스코세이지의 말을 직접 언급하며 경의를 표한다. 이처럼 전해지는 말과 빛처럼 반영되는 마음들은 꼭, 마치 태양 빛을 이어 받아 더 어둠 속을 비추는 달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11년만에 다시 들으며 왠지 마음이 허전했던 까닭은 그동안 나와 달 사이가 가까워지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어서였을까. 아직도 저 위에 달은 빛나고 있는데, 나는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지 않은 탓에. 분명 아직 달이 떠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해야겠지만, 그래도 역시 나는 조금 더 가까이서 보고 싶다. 영영 놓치기 전에. 아아아. 절대로 못 가기 전에.

장기하와 얼굴들 <달이 차오른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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