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歌
안주영 <보희와 녹양>
민수 <민수는 혼란스럽다>
유성현
2020. 10. 20
"어느 사이에"

서로 다른 표정으로 같은 곳을 바라보는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있다. 조금 처진 눈매와 입꼬리에 시무룩한 얼굴, 근심이 묻어나는 소년. 쏘아붙이듯 째려보는 시선과 앙다문 입으로 삐쭉한 소녀. “꼭 뭘 해야돼요?” 따끔하고 단순한만큼 속이 뻥 뚫리는 당찬 물음이 어느 입에서 나올지는 어렵지 않게 예측 가능하다. 반면 소녀의 이름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는 순간 주저하게 된다. 보희? 녹양? 쉽게 성별을 특정하기 힘든 이름. 아직 누가 누구인지도 확실하지 않고, 그들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도 정확히 모른다. 다만 스치듯 지나친 포스터의 싱그러운 녹음만으로 왠지 모르게 실망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에 가까운 예감이 있었을 뿐.

우연히 접했던 민수의 노래도 이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하루에도 수십곡이 등록되는 음원사이트의 메인페이지에서 눈길을 끄는 제목이 있었다. ‘민수는 혼란스럽다’. 민수가 누굴까 하니 가수 이름이 민수였다. 그나마 보희와 녹양과는 반대로 민수라는 이름은 성별을 예상하기 쉬운 편이라고 생각한다. 아티스트를 확인하니 이마저도 보기 좋게 빗나간다. 덩달아 자신도 혼란스러워지는 듯. 그러나 화창한 봄날 공원에 나와있는 듯한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가벼운 웃음소리, 두근거리게 만드는 도입부의 베이스에 이내 이 기분 좋은 무질서를 즐기기로 한다.

2019년 봄에 만난 보희와 녹양과 민수, 세 사람에게는 그냥 마음이 갔었다고 할 수밖에.

그때 내가 그렇게 굴었던 건 진심이 아녔어

돌아서지 않을 줄 알았던 네게 나쁘게 한거야

보희(안지호)는 혼란스럽다. 혼란의 시작은 단짝친구 녹양(김주아)과 엄마(신동미)만으로도 충분했던 자신의 세계에 갑자기 등장한 이름 모를 아저씨로부터 비롯한다. 설상가상 이 낯선 인물이 오래전부터 공석이었던 아빠의 자리에 들어올 거라고 생각하니 그는 불편하고 불쾌하다. 생면부지의 아저씨보다는 확실한 내편이 필요했던 열네살의 소년은 문득 이복 누이인 남희(김소라)의 기억을 떠올린다. 몇 년만에 이뤄진 남희와의 재회, 그곳에서 보희는 그의 남자친구 성욱(서현우)으로부터 뜻밖의 단서를 전해 듣는다. 남희와는 사촌 관계일뿐이고 덧붙여 아빠는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충격적인 소식 다음으로 늘어나는 건 느낌표보다는 연이어 걸려 나오는 물음표다. 어떤 사람일까, 어디에 있을까라는 현재의 신원보다도 보희를 혼란스럽게 하는 질문은 과거의 사연에서 나온다. 사고로 돌아가신 줄로만 알았던 아빠는 왜 자신을 떠났으며, 엄마는 왜 그것을 자신에게 숨겼을까. 설렘보다는 불안, 기대보다는 걱정으로 가빠지는 소년의 호흡에 서서히 드리우는 그늘을 상상하면 꽤 짙고 어둡다. 사려 깊고 섬세한만큼 속으로 곧잘 묻어두길 잘하는 보희의 기질로는 어디까지 가라앉았을지 모를 일이다. 녹양마저 없었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결의 이야기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다행히 소년은 혼자가 아니었고, 두 사람이 한 사람을 찾는 모험으로 펼쳐질 수 있었다. 모든 모험이 으레 그러하듯 그 여정이 순조롭지만은 않았지만.

이 사이에 빚어지는 갈등과 마찰은 같은 날 같은 병원에서 태어난, 남다른 인연과 우정으로 이어진 그들이라고 해도 불가피한 과정이다. 출생을 포함한 14년을 함께 자라온 둘의 사연을 알지 못하는 타인의 눈에는 곧잘 다른 지점으로 넘겨짚기가 비일비재하지만 말이다. ‘연애 좀 작작하라’는 동급생의 유치한 비아냥이나 ‘남녀 사이에 친구는 없다’를 전제한 어른의 진부한 물음은 진작에 지겹기만하다. 때론 거침없이 중지를 세워보이기도 하고 서슴없이 ‘불알친구’로 툭 대꾸하고 만다. 시원시원한 반응에는 만약의 여지라도 남아있지 않으나 사실 홀로 노래하는 민수가 바로 이러한 연장선에 있는 듯 보이는 점 또한 부정하기 어렵다. 민수를 혼란스럽게 만든 상대도 꼭 보희와 녹양 같은 관계는 아니었을까 싶어서.

너에게 자꾸 원치 않던 말로

상처 주는 날 미워해도 좋아

사실 나의 맘은 그게 아냐

너를 아주 원하고 있어

물론 당장 다른 감정에 대해서는 서로를 가리킬 생각이 없는 그들의 조금 먼 미래까지 굳이 다른 사람이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니다. 요는 외부의 시선과 평가는 둘의 사이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며, 달리 말하자면 서로는 서로에게 유일하게 상처를 입(히)는 존재가 되는 지금이 중요한 것.

내게서 돌아서지 않을 걸 확신하는 상대에게는 간혹 내뱉는 말로 유독 더 가혹해지기도 한다. 때로는 내뱉지 않은 말로 인해 작은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아무리 상처입어도 내곁에 있을 걸 믿기 때문일까.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확인하고 싶은 욕구일까. 버림받은 상처가 있는 사람이 그렇지 않을 거라 확신하는 한 사람에게 거는 신뢰와 기대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을텐데, 옆에서 씩씩하게 지켜주는 녹양은 대견하고 부럽기까지 하다. 서툰 투정을 부리고 이내 돌이켜보는 보희는 또 얼마나 여리면서도 따뜻한지. 미안하다는 사과가 없어도 한 숟가락의 밥으로도 충분히 주고 받는 무엇이 있다. 소년이 아끼지 않은 분노와 눈물을 소녀는 보지 못했겠지만 눈에 보이는 고백이나 증거가 필요하지 않은 각자의 진심은 오래전부터 둘에게 있었고 그들도 이미 느끼고 있었을테다. 

나도 모르겠는 날 너에게 물어

이런 저런 말들로 널 떠보려는 거 알아

너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지금은

못하지만 기다려줬으면 해

어떤 위협과 상실에도 함께 있는 동안에는 혼란스럽지 않은 소년과 소녀의 흔들림 없이 반짝이는 눈빛. 영화가 둘을 바라보는 시선도 이와 닮아있었다. 무책임한 낙관보다는 마치 내가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느꼈던 확신 가득한 기대의 시선이다. 나아가 세계를 바라보는 이 따뜻하고 긍정적인 눈은 보희와 녹양 너머를 향한다. 아이들과 더불어 어른들만의 풍경에도 미소를 잃지 않았던 영화의 태도는 동시에 영화 속 소년의 것이기도 하다. 아빠를 찾는 여정에 보희와 녹양이 만났던 어른들의 모질지 않았던 표정을 따라가본다.

아주 오랜만에 찾아온 사촌동생을 살갑게 맞이하는 남희, 어설프고 어수룩해도 그이상으로 따뜻하고 듬직했던 성욱, 방황 끝에 돌아온 지점에 여전히 있던 엄마는 앞으로도 보희와 함께할 인연들이다. 반면에 무뚝뚝한 표정으로 라면을 먹여 보냈던 중년의 배우, 푸근하게 웃어주며 격려했던 노교수와 진지하게 응답해주었던 아빠의 친구는 잠시 스쳐지나간 순간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를 사람들이다. 어쩌면 멀찍이 바라보기만 하고 돌아서야했던 아빠의 옆모습도 이제 닿지 않을 마지막은 아니었을까. 몇 번이고 반복하고 연습했던 인사말을 건내지도 못 한 채 돌아서는 자신의 등을 우여곡절의 시작에서 기대하진 않았을 텐데. 나도 모르게 물속으로 가라앉는 감정에 가슴을 졸인다.

하지만 어쩐지 떠오른 보희의 얼굴은 전에 없이 후련해보인다. 흠뻑 젖은 모습으로 돌아가느 길의 소년은 눈은 똑바로 차창 밖을 향하고 있다. 진단을 받은 통증은 더 이상 두렵지 않다. 모험의 끝에 있던 아빠가 아니라, 그 길에 만났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미소 짓는 보희. 아닌 게 아니라 녹양의 말이 정말 맞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을 껴안고, 서로의 문제처럼 함께 지나온 시간 속에서는 꼭 뭘 해내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렇게 어느 사이에 훌쩍 자란 마음이 있었다.

I don’t know how I feel all day long

우리의 문제인지 아님 내 문제인지

I don't know how to word my feeling

우리의 문제인지 아님 내 문제인지

민수 <민수는 혼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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