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수족관

장혜영​ <어른이 되면>

천혜윤
“나의 시간, 당신의 시간”

장혜영 감독은 성큼성큼 앞서가는 사람이다. 영화 바깥의 그는 명문 대학과의 공개적인 이별을 선언한 대학생이었고, 유튜버이자 뮤지션,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여러 다른 이름을 가진 스토리텔러다. 용감하며 재능 있는 사람.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도 그의 주변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그에게는 언제나 마음 속 동그라미가 남아있었다. 동생 ‘혜정’이 장애인 보호 시설에 있던 십여 년 동안 의문은 남아 사라지지 않았다. ‘누군가의 삶이 다른 사람들의 삶을 이유로 이렇게 갑자기 사라져버릴 수 있다면, 나의 삶 역시 내 것이 아님을 나는 아주 멀리 가서야 알게 되었다’ 일상의 가치도 아름다움도, 다른 누군가의 일상을 바깥으로 내몬 다음에야 가능한 것이라면 신뢰할 수 없는 것이었다. 혜정이 있던 시설의 인권 침해적인 행태에 대한 내부 고발이 있던 이후, 혜영은 조심스럽게 혜정과 시설 밖에서의 시간을 함께했다. 일 년 후, 혜정에게는 또 다른 집이 생겼고, 혜영은 다시 일상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어른이 되면>은 자매의 그 이후의 시간에 대한 산책 같은 기록이다.

당연하게도 <어른이 되면>이 가장 경계하는 태도는 ‘장애를 가진 동생과 그런 동생을 책임지는 착한 언니’로 읽어내려는 시선이다. 한번도 ‘덕질’을 해 본적 없다는 혜영의 말에 친구들이 ‘혜정일 덕질 하잖아?’ 라고 우스개로 즉각 반박했듯이 혜영은 자신의 눈을 닮은 카메라로 혜정을 담기를 원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시선이 담긴 인물 사진이 언제나 가장 아름답듯이 혜영의 시선 속의 혜정은 언제나 조마조마하게 사랑스럽다. 완전한 자신의 세계 속에서 헤엄치기를 즐기는 혜정. 인어공주로 묘사되는 혜정은 그 세계 속의 가장 인상적인 순간들, 이를테면 ‘모아나’, ‘디즈니’, ‘유쾌, 상쾌, 통쾌!’ 같은 표현들을 말하기를 즐긴다. 곱씹고 되뇔수록 행복해지는 순간들을 그는 오래 기억하고 다시 외친다. 음악을 만드는 혜영처럼 혜정도 스스로 발견한 몸짓들로 음악 속에 춤추기를 즐긴다. 이따금 카메라도 물끄러미 그런 혜정을 바라본다. ‘인서’와의 과외 수업 중에 문득 트로트 가요를 틀고 춤을 추는 뒷모습에, 밴드의 공연 무대 위로 성큼 올라 몸을 흔드는 순간들에 시선은 오래 머무른다. 그 시선의 주인공은 때때로 그 장소에 없는 혜영의 눈길이다.

카메라가 그 자리에 없는 혜영의 시선을 대신한다는 것은 완전히 무리인 이야기는 아니다. 부재한 채로도, 어떻게 같은 시간 속에 머물 수 있을까 하고 <어른이 되면>은 묻고 있다. 혜영은 지금의 일상이 시간과의 다툼이라고 말한다. 국가의 복지사업은 혜정에게 월 94시간의 서비스 시간이 주어졌음을 안내하지만 활동 보조인을 구할 수 없어 이는 수치로만 남겨진 기록이 된다. 동생 혜정과 함께하기 위해서 혜영은 자신으로서의 시간보다 누군가의 ‘생각 많은 둘째언니’의 시간으로 살아가기를 선택했다. 그러나 더 오래, 그리고 수평한 관계로 함께하기 위해 혜정에게는 가족 바깥의 시간이 넓어져야만 한다. 혜영이 부재했던 삼 일간, 카메라는 완전히 혜영의 영향 아래서 벗어난 혜정과 함께 캠핑을 떠난다. 그 캠핑에 뒤따른 친구들인 인서, 은경 등의 얼굴은 오래 볼수록 안도감을 준다. 국가의 복지사업 심사에서 혜정에게 주어졌던 ‘혼자서 할 수 있는가?’의 여부를 묻던 질문들을 부정하듯이 혜정은 절대로 혼자일리 없이 친구들과의 캠핑에 함께한다.


어쩌면 <어른이 되면>이 에둘러 하고 싶었던 말은 인서와 은경 등 친구들의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혜영이 부재한 곳에서 혜영의 시선을 대신하는 사람들의 얼굴. 현재 사회의 부모 중심적 돌봄 방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음을 견지했던 어느 인터뷰에서처럼 혜영은 혜정과의 삶 역시 혈연으로 엮인 두 사람만의 관계가 아니라 그 이상의 관계망이 존재하며 그것은 당연하게도 필요한 것이라고 말한다. 연약하다는 것이 약함을 뜻하는 게 아니듯, 혜정이 언제나 타인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테다. 떠올려보면 <어른이 되면>의 첫 이사 장면부터 영화는 자매의 곁에 있는 사람들과 언제나 대화하고 있었다. ‘죽임당하지도 않고, 죽이지도 않고서’ 살아가는 삶을 위해서 기꺼이 동행하는 사람들. 사회적 재단의 시상식에서 장애인 복지 관련 인물로 수상했을 때 혜영은 목소리를 내는 자신이 아니라 다시 사회로 복귀하기 위해 발돋움하는 혜정에게로 상을 돌린다. 마찬가지로 그는 혜정의 친구들이면서 가장 가까운 보호자였던 이들을 <어른이 되면>의 가장 따뜻한 장면의 주연들로 삼은 게 아니었을까? 영화의 클라이막스에서 두 자매가 번갈아 부르는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는 혜영의 소개말처럼 ‘한 해 동안 너무 고마웠다고 하고 싶은 사람들, 그리고 다음 해에도 부탁한다고 말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헌사다. 동행하는 친구들과 함께, 두 자매의 시간은 그렇게 가까워지고 멀어지기를 반복하며 함께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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