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먹고 마신 것들

김보라​ <벌새>

차한비
엄마 소식이 궁금할 때는 감자전을

엄마를 떠나 혼자 살게 된 후로 먹고사는 일에 열심을 낸다. 월세 밀리지 않기, 깨끗한 옷 입기, 내 입에 들어갈 음식은 내 손으로 만들어 먹기. 의식주라는 최소 요건은 최대치의 목표가 되고, 5년 후나 10년 후를 계획할 겨를 없이 한 달은 금세 지나간다. 생활은 이어달리기 같다. 어제와 오늘을 연결하고 오늘을 내일로 견인하는 일은 안간힘을 필요로 한다. 뛰어가는 도중에는 뒤를 돌아볼 수 없으니 눈앞에만 집중할 뿐이다. 목표가 단순해지고 생활이 간결해질수록 입맛도 비슷하게 바뀐다는 걸 요즘 들어 깨닫는다. 복잡하고 화려한 산해진미보다는, 부담 없이 순하고 정확한 맛을 찾게 된다. 누군가는 이런 걸 ‘집밥’ 또는 ‘엄마의 손맛’이라고 하겠지만, 내게는 어색한 표현이다. 엄마는 부엌에 서는 사람이 아니었다.

감자전은 의외로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준비할 재료는 감자뿐이지만, 흙 묻은 감자를 씻고 껍질을 벗기고 강판에 간 다음 적당히 불에 달군 팬에 부쳐야 완성된다. 강판 대신 믹서에 넣고 돌리면 한결 편할 텐데, 그리 해보니 어쩐지 서글서글한 감칠맛이 사라지는 것 같아서 영 내키지 않는다. 겉보기에 별거 없는 음식일수록 숨은 과정이 중요하다. 감자로만 부친 감자전, 배추를 넣고 푹 끓인 배춧국, 무를 뭉근해질 때까지 조려서 만드는 무조림이 그렇다. 재료가 지닌 고유의 풍미를 즐기려면 시간을 들이는 수밖에 없다. 조금 거창하지만 정성이라고 불러도 맞는 말일 것이다. 감자전을 부칠 때면, ‘내가 이거 한 장 먹겠다고…’ 하는 생각이 스친다. 물론 한 점 떼어서 입에 넣은 다음에는 만들길 잘했다 싶지만 말이다.

<벌새>(김보라, 2019)를 본 날, 집에 돌아와 감자 세 알을 골랐다. 은희 엄마가 은희에게 부쳐준 감자전을 떠올리며 나를 위해 감자전을 부쳤다. 영화에 나온 첫 번째 감자전은 못내 섭섭한 마음을 갖게 한다. 오빠가 학원을 마치고 돌아오면 저녁 밥상을 차려줄 테니, 일단 요기나 해두라며 엄마가 만들어준 간식이다. 식구 많은 집답게 감자전은 높이 쌓여 있지만, 이미 식은 지 오래되어 보인다. 은희는 그릇에 덮인 은박지를 벗기고, 손으로 감자전을 찢어 덥석 베어 먹는다. 그건 허기를 채우는 과장된 동작에 가깝다. 아무도 없는 빈집에 일부러 켜둔 텔레비전 소리처럼, 은희는 집안에 무겁게 가라앉은 고요를 깨트리겠다는 듯 허겁지겁 감자전을 먹는다. 양복을 차려입고 춤추러 나간 아빠, 다정을 쏟을 여력이 없는 엄마, 일찌감치 집에서 도망칠 작정을 한 언니, 자주 동생을 화풀이 대상으로 삼는 오빠. 식구들은 모두 어딘가로 떠났고, 은희의 식사는 짧게 끝난다.

식탁에 다시 감자전이 오르기까지, 은희에게는 많은 일이 일어난다. 친구와 다투고 거대한 붕괴를 목격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 마음을 주고받는 과정은 아름다운데, 끝에는 언제나 오롯이 스스로 감당할 몫이 남는다. 먼 곳에 다녀온 날, 은희는 엄마를 찾는다. 식탁에 엎드린 채 멀찍이 불 앞에 선 엄마를 조용히 바라보다가 묻는다. “엄마, 외삼촌 보고 싶어?” 엄마는 뒤돌아보지 않지만, 반죽을 부치는 동작이 느려진다. 세상을 떠난 존재가 두 사람의 대화 속에 잠시 머문다. 엄마는 왜 갑자기 죽은 사람 이야기를 꺼내느냐고도, 대체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도 되묻지 않는다. “그냥 이상해. 외삼촌이 이제 없다는 게.” 은희의 질문에 솔직하게 응하며 마저 감자전을 부칠 뿐이다. 이제 식탁에는 은희만을 위한 적당한 양의 감자전과 젓가락, 그리고 엄마가 있다. 은희의 이마에 땀이 맺힐 정도로 감자전은 따끈하고, 엄마는 오래도록 은희를 지켜본다. 두 사람은 대화를 멈추지만, 묵묵히 서로를 들여다보는 식탁은 전처럼 적막하지 않다.

이따금 싱크대와 가스레인지 앞에서 엄마를 생각한다. 칼질하고 숟가락을 닦다가, 나 모르게 엄마가 넘겼을 고비를 짐작해본다. 엄마만 만들어낼 수 있던 어떤 맛이 그립기보다는, 오직 엄마 홀로 메워야 했을 시간이 궁금하다. 은희 엄마가 은희를 알아차린 것처럼, 말할 수 없는 것이 생겨버린 아이에게 생략된 이야기를 채근하는 대신 정직한 음식을 먹이며 곁을 채운 것처럼, 엄마에게도 나를 살피고 생활을 이어간 그만의 방식이 있었으리라 가늠해본다. 먹고사는 일은 종종 숨 가쁘고 난처하기에, 나는 최소한이라도 지켜내겠다는 억지와 오기를 앞세워 한밤중에 부엌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온전히 나를 위해 쓰는 유일한 시간이라도 된다는 듯 성실하게 야채를 다듬고 밥을 짓는다. 아마도 엄마 역시 어딘가에서 그렇게 세상을 버텨왔고,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돌아오지 못할 사람과 이루어지지 않는 소망을 겨우 인정하면서, 오늘의 손을 내일에 건네려고 애를 쓴다.

다시 감자 세 알을 꺼내 전을 부친다. 날 선 마음을 달래보려고 평소보다 좀 더 시간을 들인다. 문 하나 닫았을 뿐인데, 바깥에 가득한 위험과 괴로움으로부터 얼마간 멀어지는 것도 같다. 눈앞에 놓인 감자전을 잘 뒤집으면 그럭저럭 밤이 끝나고 아침이 올 거라는 듯, 막연한 기대를 걸며 손목에 힘을 준다. 약한 불로 익힌 감자전은 포실하고 고소하다. 언젠가 이 음식을 만들어주고 싶다. 엄마는 왜 그랬느냐고 묻지 않고, 엄마도 그랬느냐고 물어보고 싶다. 그간의 안부를 질문하면 엄마는 뭐라고 답할까. 내게 익숙한 맛이 엄마에게도 어울릴까.

[레시피] 엄마 소식이 궁금할 때는 감자전을

1. 되도록 흠집 없고 묵직한 감자를 고른다. 서늘한 그늘에 보관하는데, 종이로 감싼 후 박스에 넣어두면 오래 먹을 수 있다.

2. 감자를 씻고, 다듬고, 갈아준다.

3. 부침가루를 두 스푼 정도 넣으면 전 부치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4. 양념장은 간장으로 충분한데, 이마저도 귀찮을 때는 반죽에 간장을 살짝 넣어준다.

5. 방아잎이나 청양고추를 잘게 다져 넣는다.

6. 팬에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앞뒤로 노릇하게 부친다.

7. 입가심으로는 역시 우롱차가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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