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 각자의 영화관
"단기연"
<최악의 하루>
유수진

마음과 다르게 일이 잘 안 풀리는 날이 있다. 기연 언니와 촬영을 하기로 한 날 아침에 비가 내렸다. 비로 인해 능소화가 다 떨어지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다음 촬영 날을 기약했다. 두 번째 촬영 날은 가만히 있어도 녹아버릴 것 같은 여름날이었다. 우린 남산으로 향했다. 몇 컷을 촬영하자 멀쩡했던 카메라가 고장이 났다.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아이폰으로 몇 컷을 더 촬영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세 번째 촬영 날을 잡았다. 정말 잘 찍어 주고 싶었기에 미안한 마음이 컸다. 기연 언니는 웃으며 괜찮다고 했고 시원한 카페에 가자고 했다. 세 번째 촬영 전, 마지막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철저히 준비했다. 마침내 익선동에서부터 남산까지 촬영을 마쳤다. 최악일 뻔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기연 언니는 아르바이트를 하다 만났다. 두 달 남짓 일했지만 같은 학교였기에 이후에도 종종 만났다. 기차여행에도 함께했다. 생각해보니 그 여행에서, 정확히 여수에서 카메라가 고장 났었다. 기연 언니는 현실적이고 소박한 말들로 나를 위로했었다. 이상하게 괜찮았다. 

익선동의 한 카페에서 촬영을 마무리할 때쯤, 언니는 내가 빌려달라고 했던 책을 새 책으로 내게 선물했다. 책 앞에 꽂힌 엽서에서 언니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언니는 항상 부담을 주지 않고 상대에게 진심을 전한다. 고맙고 부러운 능력이다. 

 

비가 내린 날도, 카메라가 고장 난 날도, 케이블카의 가격이 비싸게 느껴져 남산 정상까지 걸은 날도 최악이라 하기에는 아직 일렀다. 최악일 뻔한 하루 속에서 최선을 다해준 기연 언니로 인해 우리는 해피엔딩이었다. 최악이라고 여겼던 그날이 있었기에 최고의 오늘이 가능했던 그런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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