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적(‘短編’的)
이경미 <잘돼가?무엇이든>
이채현
부조리의 순리

 지영은 글을 쓰고 싶지만 ‘주성쉬핑’에서 숫자나 조작해야 한다. 하루의 시작부터 끝까지 그녀에겐 웃을 일이라곤 없다. 더 이를 악물고 더 눈을 흘겨야 할 일 뿐이다. 거스름돈 100원을 떼먹으려고 되려 성질을 부리는 택시기사부터, 욕심부려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바보 같은 박희진, 직원들 월급엔 불을 켜면서 탈세를 일삼는 박 사장까지 지영에게 세상은 부조리한 것 투성이다.

 다 불 질러 버렸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진짜 불이 났다. 그런 말을 해서 불이 난 게 아니냐고 눈치 없이 조잘거리는 희진에게 지영은 모든 감정을 쏟아낸다. 사투리도 육두문자도 눈물도 시원하게 쏟아져 나온다. 네가 뭘 아느냐고. 믿으면 뒤통수를 치는, 도와주면 만만하게 보고 막 대하는 이 더러운 세상에 대해서 뭘 아느냐고.

 싫어해 본 사람은 안다. 싫어하는 일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지. 그것도 힘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어떻게 저렇게 부조리할 수 있냐고 분노해도 그 세계는 쉽사리 변하지 않고 나는 나의 세계만 이해할 수 있다. 이 쪽 세계에서 본 저 쪽 세계는 무조건 부조리하다. 이토록 외로운 세상이다. 너의 세계와 나의 세계가 충돌하는 고통이 가득한.

 그럼에도 지영은 잘 곳 없는 희진이 걱정되어 불러세운다. 지영이 희진 쪽으로 건너간다. 둘은 같은 곳을 향하는 버스에서 꾸벅꾸벅 잠이 든다. 긴 밤이었다. 아마 앞으로의 하루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직장에서도 지영은 글을 쓰고 싶을 것이고, 희진처럼 답답한 직장 동료와 박 사장처럼 간사한 직장 상사에게 속으로 수백 번은 욕을 할 것이며, 어느 날은 기우는 술잔에 부조리한 세상을 한탄하다 눈물을 터뜨릴지 모른다.

 ‘부조리하게도’ 미움이 지영을 달리게 하는 힘이다. 자신을 멍청하게 여기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또 자신이 없으면 안 될 때 사표를 내 버릴 거라는 분노가 지영을 이 악물고 일하게 한다. 꿈속에서 지영은 칼을 품고 걷다가 행인과 부딪혀 목을 베인다. 다치면 어쩌려고 그랬냐며 소리치는 지영도 사실 알고 있다. 자신의 목을 벤 건 자신의 칼이라는 것을. 지영과 희진을 태운 버스의 라디오에선 날씨가 화창하니 ‘모든 게 잘 될 거’라는 멘트가 흘러나온다. 문득 내가 열심히 미워했던 세계가 떠오른다. 나를 미워했을 세계도 떠오른다. “잘돼가? 무엇이든.”

 너를 미워하게 만든 세상에서, 결국 나는 너와 같은 버스를 탔다. 흔들리는 버스에 같이 고개를 흔들다 서로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잘 됐으면 좋겠다, 무엇이든.

 

단편영화yoUeFO <잘돼가? 무엇이든> (http://youefo.com/film/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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