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 비디오 가게
최미소

<프란시스 하>
감독:  노아 바움벡

 

<Frances Ha> (2012)
Director: Noah Baumbach

"거울을 똑바로 쳐다보는 여자"
추천 코드

1. 나는 현실을 좀 직시할 필요가 있다.

2. 허황되지 않으면서도 따뜻한 감성의 영화를 좋아한다.

3. 지금 이 순간 고민이 많아 잠 못 이루는 너에게.

 

 지난 몇 주 동안 내가 만난 많은 얼굴들은 나에게 복잡한 감정을 불러 일으켰어.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굴지의 기업에 취직했고 첫 월급이 너무 많아서 놀랐다고 했어. 해가 바뀌고 내 일터가 바뀔 때마다 꼭 얼굴을 뵙게 되는 은사님께서는 여전히 나를 반겨주시며 요즘은 무얼 하는지 또 앞으로 어떤 일을 할 것인지 다정하게 물으셨어. 함께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사람은 톰 포드 영화를 보러 극장에 왔다며 웃었어. 어떤 선배는 맥주를 기울이며 영화 일을 하다가 그만둔 이유를 말해주었어. 한 친구는 원하던 회사에서 드디어 인턴을 하기 시작했고, 어떤 친구는 나에게 상반기 공채를 썼냐고 물어보고. 어떤 이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대. 이제 뭐 할거냐 물으니 자아를 찾아 동남아시아 어딘가로 떠난다더라.

 

 그래서 나는 지금 뭘 하고 있지? 몇 년 전에 만난 사람을 오늘 다시 만나도 전혀 더 나아지거나 발전되지 않은 똑같은 상태인 나를 보여줘야 한다는 게 마음 아팠어. 돈을 대단히 잘 벌고 있는 것도, 그렇다고 완전히 신념에 따른 일을 선택한 것도 아닌 내 모습이 초라했고 창피함에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려 물을 끼얹은 거울 속엔 이도 저도 아닌 망가진 표정뿐이었어.

 

 나 자신이 무척이나 침체된 시기에 내가 과연 너희에게 어떤 영화를 소개하고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는지 오래도록 고민했어.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을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 급으로 많이 하고 스스로를 응원하라는 말을 매 글에서 소구처럼 되새기는 나이지만 그런 나 조차 요즈음에는 작은 실패에도 너무 쉽게 포기를 입에 올리고 있었거든. 많이 망설였지만 나는 지금의 내 상황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는 걸 느꼈어. 그리고 나와 같은 시기를 지나고 있는 친구들에게 작은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하며, 또 그들로부터 도움을 받기 위해 이 글을 준비했어. 내가 오늘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영화는 내가 참 좋아하는 노아 바움백 감독의 <프란시스 하>야.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난 내가 너무 사랑하는 한 친구를 떠올렸어. 때론 우스꽝스럽지만 사랑스러운 몸짓을 가졌고 꾸밈 없이 웃는 얼굴의 자연스러운 표정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따듯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나의 좋은 친구. 그런데 문득 누군가에게 이 영화를 설명하기 위해 주인공 ‘프란시스’에 대해서 묘사하던 내 말들은 돌이켜 보니 정확히 지금의 나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한 거야. 그 생각이 드는 순간 나는 빠른 속도로 이 영화의 마력에 사로잡히고 말았어. 너무나 독특해서 이런 사람은 세상에 둘도 없을 거라 생각했던 한 여자의 이야기가 한 순간 내 친구이기도 하고 또 같은 순간 나이기도 한 이 놀라운 마법. 같은 인물을 볼 때마다 다른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건 좋은 영화만이 부릴 수 있는 너무 멋진 요술 같잖아.

 

 주인공 ‘프란시스’ 역할은 이제는 한국에서도 <재키>나 <매기스 플랜>으로 꽤나 얼굴이 알려진 배우 그레타 거윅이 열연했고, 각본에도 참여했어. 영화 속의 프란시스는 대체로 뭘 잘 ‘못하는’ 사람으로 묘사 돼. 그녀는 무용수이지만 견습 단원으로만 많은 시간을 보냈고 정식 단원이 되는 길은 멀어만 보여. 연애도 그래. 남자친구와 고양이를 함께 기르며 동거를 하게 될 순간이 왔지만 몇 마디의 서투른 대화가 결국 둘의 관계를 곧장 이별로 연결시켜버리고 말아. 유일하게 의지하고 지내던 룸메이트이자 친구인 소피가 갑작스레 이사를 선언하면서 프란시스는 하루 아침에 집도 직업도 돈도 애인도 없이 삶의 전환점 앞에 서게 돼.

 

 프란시스는 레브와 벤지라는 멋진 두 친구를 알게 되었어. 그들의 삶은 그녀가 꿈꾸던 예술로 가득했고 삶을 대하는 태도도 너무나 쿨했어. 프란시스는 단박에 두 사람이 마음에 들었지만 소피의 말마따나 뉴욕에서 예술을 한다는 건 부잣집 아이들이란 뜻이고 당장 생활비가 급한 프란시스는 그들과 어울릴만한 여유가 없었어. 그렇지만 프란시스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궁지에 몰렸을 때 선택할 법한 행동의 정 반대로 행동해. 궂은 일도 마다 않고 차곡차곡 돈을 모으거나 닥치는 대로 이력서를 여기저기 찌르지도 않고 부모님께 돈이 없으니 도와달라는 부탁도 하지 않아. 예측불가인 그녀의 행동은 스스로를 부담으로 밀어 넣지만 그걸 극복하기 위해 또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가.

 

 소피는 프란시스에게 말해. “넌 거울을 너무 많이 봐.” 그 말처럼 프란시스는 거울을 많이 보는 여자야. 거울을 많이 보는 여자는 어떨까?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 그건 비단 외모에 관한 이야기는 아닐 것 같아. 며칠 전 두 번째로 보게 된 <프란시스 하>는 왜인지 내게 자꾸만 거울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했어. 가진 것 없고, 제대로 된 직장에 다니는 것도 아니고, 좋아하는 일이 있지만 그 일을 지속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으로 불안하고. 멋진 친구들을 많이 알고 있지만 그들과 어울리기엔 못난 나의 모습이 너무나 초라해져서 가끔은 서글퍼지기도 하고. 그건 딱 지금 나의 모습 같았거든. 그리고 또 그건 나만의 모습은 아닐 거야. 그게 어디 무용수만의 이야기겠어? 글을 쓰는 이, 영화를 만드는 이, 사진을 찍는 이, 과학을 연구하는 이, 음식을 만드는 이, 꽃을 키우는 이, 그림을 그리는 이, 음악을 하는 이… 그리고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이 글을 읽고 있을 많은 사람들도 이 영화가 거울처럼 느껴질 만큼 고민에 빠져있을지도 모르지.

 

 문제는 언제나 자신의 모습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 왔을 때 그 속의 두 눈과 똑바로 마주 볼 수 있느냐, 아니면 고개를 돌리고 딴청을 부리며 외면하고 마느냐인 것 같아. 내가 이 영화가 더 좋아진 부분은 사실 얼마 되지도 않는 짧은 결말 부분이었어. 프란시스가 자신의 삶을 대하는 너무나 아름다운 태도가 드러나거든. 프란시스는 거울을 많이 보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거울을 똑바로 직시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해. 나도 그런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었어. 그리고 나는 너희들도 그렇기를 바래. 그리고 그런 단단한 여러분이 나에게 다시 말해주기를 바래. 눈 피하지 말고 똑바로 보라고, 그렇게 말해주기를 말이야. 

© 2023 by Andy Decker. Proudly created with WIX.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