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읽기모임 : 필독

김동원, <내 친구 정일우>

글 : 장유진

<내 친구 정일우>로 바치는 30년 간의 헌정

1988년 올림픽 개최로 상계동 주민들은 미관상 흉한 달동네에 산다는 이유로 거주지를 잃었다. 김동원 감독의 <상계동 올림픽>(1988)은 상계동 주민들이 철거에 의해 상계동에서 명동성당으로, 명동성당에서 부천으로 이동하며 공간을 지켜내기 위한 투쟁의 처절한 과정을 담았다. 당시 감독 지망생이었던 김동원 감독은 강제 철거의 증거자료를 남기기 위해 현장을 영상으로 담아 달라는 정일우 신부의 요청으로 붕괴한 건물의 조각으로 가득한 상계동 땅을 밟게 되었다. 당시 정일우 신부와 처음으로 대면한 김동원 감독은 이후 30년이 넘도록 정일우 신부의 삶에 감화받아 그의 한평생 삶을 헌정하는 <내 친구 정일우>(2017)를 제작했다.

<상계동 올림픽>은 한국에서 최초로 야마카타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초청되었다. 이후 사회 고발적인 액티비즘 다큐멘터리의 표본이 되었고, 비전향 장기수의 일생을 담은 <송환>(2003)으로 대중으로부터 인정받은 후, 후대에 제작된 많은 다큐멘터리 영화에 영향을 주었다. 반면, <내 친구 정일우>는 한 인물의 연대기를 그린 영화로 현장을 기록하기보다는 감독 개인의 감정이 투영된 에세이적인 성격이 짙다. <내 친구 정일우>에는 정일우 신부로부터 위로와 희망을 받았던 수많은 인터뷰이가 등장한다. 관객은 그들의 이름도, 직업도, 나이도 알 수 없다. 다만 당시 그들이 기억하는 정일우 신부의 모습과 그의 행적만 보여줄 뿐이다. 그가 안아주었던 수많은 사람의 눈물과 고통은 현재까지 그들의 마음에 따스한 온기로 남아, 그들의 발화로부터 한 조각씩 채워져 정일우라는 사람의 형태가 완성된다.

정일우 신부는 청계천 시절 이후 ‘가난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었던 친절한 청자였다. 그리고 김동원 감독은 본인을 포함한 많은 이들의 입을 빌려 정일우 신부를 말하는 화자가 되기를 자원했다. 관객에게 정일우 신부를 이어 그의 삶의 이야기를 듣는 적극적 청자가 되기를 호소하는 듯하다. 또한, 감독은 고인이 된 정일우 신부에게 자신과 더불어 그와 함께했던 여러 사람이 보내는 편지를 들려주며 그에게 또 한 번 친절한 청자가 되기를 요청하고 있다. 그리고 감독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스스로 풀 수 없는 질문을 신부에게 던진다.

“신부님, 신부님은 여전히 가난뱅이들이 세상을 구할 거라고 믿고 계신가요?

상처받은 이들이 앞장서 싸워야만 하는 이 현실이 끝날 수 있을까요?”

이 지점에서 카메라는 부감으로 세월호를 비추고, 1988년 <상계동 올림픽> 시절부터 가난뱅이들이 살기 위해 할 수밖에 없었던 투쟁이 2014년 세월호 사건, 그리고 지금까지도 끝나지 않은 현실을 드러낸다. <내 친구 정일우>는 감독이 상계동 철거 현장을 카메라에 담았던 때부터 현재까지도 여전히 존재하는 사회적 모순에 대한 회의를 정일우 신부의 삶을 나열하는 방식을 차용하여 에세이 형식의 다큐멘터리에 숨겨놓았다. 다시 말해, 신부가 살았던 삶의 흔적들을 담는 것이 하나의 액티비즘적인 다큐멘터리가 되었고, 여기서 시대와 형식을 포괄하는 김동원 감독만의 결과적 소산이 세상에 나오게 된다.

영화는 정일우 신부가 예수회, 청계천, 상계동, 괴산에서 활동했던 기간을 나누어 차례로 소개한다. 감독은 각 부분이 끝날 무렵 누군가 세상을 떠나거나, 연대에서 물러나게 되는 상황을 배치한다. 청계천에서는 신부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제정구가 죽었고, 상계동에서는 당시 철거민들이 과거의 사건을 되새기고 싶지 않다며 정일우 신부에 대한 기억을 거절하고, 영화의 마지막 부분인 괴산에서의 결말은 정일우 신부의 병원 생활을 비추며 그의 죽음을 애도한다. 예수회 시절을 담은 영화의 초반부에서 이미 임종을 맞은 정일우 신부는 그 뒷이야기인 청계천, 상계동, 괴산에서 재등장한다. 영화는 그의 생과 죽음을 여러 번 반복한다. 그리고 더 이상 살아 돌아올 수 없는 정일우 신부의 빈자리에는 춤을 추며 그를 추모하는 변치 않는 사람들이 있다. 김동원 감독은 <상계동 올림픽> 때의 공동체와 연대 의식, 치열했던 현장을 변치 않는 마음으로 잊지 말자고, <내 친구 정일우>를 통해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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