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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켜진 후 하고 싶었던 말들

손경화​ <의자가 되는 법>

김팝콘
2020. 04. 28
의자의 세계

의자는 하나의 언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어는 의미를 잃고 또 다른 의미를 찾는다. 의미를 잃은 단어는 속해있던 문장을 벗어나 또 다른 문장에서 새로운 의미의 역할을 다한다. 단어의 의미는 돌고 돌아, 잃고 얻어, 하나의 작은 세상이 된다.

의자는, 하나의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경화 감독의 <의자가 되는 법>은 2013년 DMZ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상영된 의자에 관한 다큐다. 영화의 줄거리는 ‘의자가 만들어진다. 버려진다. 던져진다. 부서진다. 다시 만들어진 다. 의자는 내내 가만히 있다.’라고 적혀있는데, 이 말처럼 감독은 의자가 만들어지고, 던져지고, 부서지고, 버려지고, 고쳐지는 곳들을 찾아간다. 카메라가 도착한 곳엔 늘 사람들이 있다. 의자는 그것이 어떤 형태이건, 어떤 곳에 있건 간에 누군가 한 몸을 쉴 장소가 된다.

카메라가 처음으로 도착한 곳은 한 카페이다. 의자를 올려 바닥을 쓸고, 걸레를 들고 의자를 닦는 모습을 카메라는 꼼꼼하게 바라본다. 가게의 주인이 의자를 대하듯, 섬세하고 조심스럽게, 지켜본다. 가게의 주인들은 의자는 사람과 동화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공간에서 붕 떠서 사람보다 더 중요하게 보이지 않는 것이 의자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자면, 의자의 본질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의자의 구조는 매우 단순하다. 엉덩이를 받칠 판자와 판자를 지탱할 다리만 있으면 된다. 등을 받칠 판자를 덧대도 되고 쿠션을 올려도 되지만, 의자는 하나의 판자와 최소 세 개의 다리만 있다면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다. 가장 단순하고 기본적인 구조, 원초적이고 손쉬워 보이지만 보잘 것 없는 의자의 곡선과 직선 하나 하나는 전부 사람이 깎고, 바르고, 문지르고, 두드려 만들어낸 정성의 결과물이다.

공장의 사람들, 워크샵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원칙과 철학을 가지고 의자를 만들어낸다. 우리는 사소해 보이는 구석까지 조화롭게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사람들을 본다. 사람들의 눈과 손을 담은 인서트는 앞서 보았던 의자의 부분을 떠올리게 만든다. 화면이 넓어지면서 서서히 형체를 드러내는 의자와 의자의 주위의 사람들이 보인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소음, 움직임, 공간과 의자, 사람들의 부피감은 어떤 것도 빼 놓을 수 없이 조화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렇게 의자들이 만들어지는 순간을 지켜보던 카메라는 별안간 버려진 의자들을 찾아간다. 주택가에 버려진 의자들은 마치 그 좁은 골목에 처음부터 있었던 것처럼, 당연하다는 듯 자리해 있다. 만들어지는-버려지는 이라는 관계에 아름다움-아름다움 이라는 관계가 이어진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연결되는 이미지들의 관계는, 이상하게도, 하나의 사이클이 된다.

버려지는 이미지는 부분부분으로 나뉘어서 프레임으로 옮겨진다. 그렇게 모인 부분은 서로 만나 하나의 의자를 만든다. 영화의 첫 컷에 등장한 던져지는 의자는 영화의 마지막 여기저기서 버려진 조각들이 모여 유일무이한 의자로 재탄생한다. 파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네 개의 다리와 두 개의 받침이 있던 의자는 나무와 플라스틱이 붙은 네 개의 서로 다른 다리와 다섯 개의 받침이 있는 의자로 바뀌었지만, 의자는 제 원칙을 잃지 않는다. 의자는 여전히 의자인 채로, 누군가 앉아 쉬어갈 수 있는 곳으로 영원해진다. 누군가의 한 몸을 지탱하기 위해 의자는 새로이 태어난다.

다시는 쓸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 버려진 의자를 새롭게 태어날 수 있게 한 것은 사람이다.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버리며, 사람이 그걸 주워다 다시 만든다. 의자의 끊임없는 생의 사이클은 사람에 의해서 이어진다.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의자를 만드는 사람들’의 인터뷰는 생뚱맞게 미래에 대한 걱정이나 열등감 따위를 이야기한다. 서로 각각 다른 고민을 갖고, 다른 생을 살아간다. 언뜻 앞뒤의 장면들과 어긋나 보이는 이 인터뷰 장면은 지금껏 보여진 의자의 곁에 자연스럽게 있었던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의자들은, 사람이 있기에 그곳에 있으며, 그곳에 있기에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는 고민과 애정, 희망과 열정이 피어난다. 생과 죽음, 물체와 육체를 잇는 의자는 비로소 단순한 구조의 물건이 아닌 누군가의 삶과 언어의 현신으로 자리한다.

삶이 있는 자리는 어떤 곳이든 아름답다. 삶이란 결코 아름답지 않은 것이기에, 아름다울 수 없는 것이기에, 그것이 있는 자리는 아름답다. 내가 지겨워 떠난 집은 누군가에게 새로운 집이 될 것이며 내가 불편해 내다 놓은 의자는 누군가에게 일, 공부를 함께하는 우직한 친구가 될 것이다. 그렇게 버려지고, 또 새로이 만나게 되는 공간과 물건들은, 마치 삶의 순간순간을 메우는 사람들처럼, 나의 생을 이루는 세포들이 될 것이다. 어느 날 삶의 궤적을 회고해보았을 때 언뜻 미소가 지어지는 순간들로 남아있을 것이다. 끝이 있는 것은, 끝이라는 이름의 시작으로, 하나의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가기에 영원히 아름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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