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歌
조재민 <눈발>
브로콜리너마저 <울지마>
유성현
"녹지 않기를"

2017년 3월 8일 저녁 여섯시, 서울에 날렸던 눈발을 떠올린다. 불과 며칠 전 지난 경칩이 무색하게 쌀쌀해진 공기가 심상치 않더라니 기어이 3월에 내린 눈이었다. '힘차게 내려 줄이 죽죽 져 보이는 상태'라는, 생각 외로 강한 묘사에 선뜻 납득하기 어려웠던 사전적 정의를 단번에 이해시키는 이미지가 눈앞에 펼쳐졌다. 비록 누군가는 미처 보지도 못했을 짧은 시간이었겠지만, 나에게는 포근하게 내려앉는 함박눈과 위태롭게 흩날리는 눈발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차분히 어디 쌓일 새도 없이 지면에 닿자마자 녹아버리는 작은 눈송이들을 보니 어딘지 측은해지는 기분 속.

 

그 연약한 눈발을 닮은 소년 소녀를 생각하며 다시 들었던, 브로콜리 너마저.


울지마

네가 울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

작은 위로의 말이라도 해주고 싶지만

세상이 원래 그런 거라는 말은 할 수가 없고

아니라고 하면 왜 거짓말 같지

 

그 가운데서도 2010년 11월 1일에 발표된 [2집 졸업]의 다섯 번째 트랙이 있다. 헤드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그대로인데 어느덧 듣고 있는 자신의 시간만이 흘러가버린 것에 새삼 놀라다가, 정작 울적해질 때 생각나는 노래의 제목이 하필 ‘울지마’라는 아이러니에 실소가 툭. 그러나 어디선가 들려온다면, 누군가 부르고 있다면 결코 모른 척 지나칠 수는 없을 노래. 함부로 타인의 슬픔을 이해했다 말하기보다는 작은 위로의 말조차 조심스럽게 망설이는 태도는 덕원의 덤덤한 목소리와 따뜻한 멜로디를 통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아마도 낯선 세상, 낯선 사람으로 만났던 ‘민식’과 ‘예주’가 서로를 대하는 마음도 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울지마

네가 울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어

뭐라도 힘이 될 수 있게 말해주고 싶은데

모두 다 잘 될 거라는 말을 한다고 해도

그건 말일 뿐이지 그렇지 않니

그래도 울지 마

 

가족과 함께 다른 지방으로부터 내려온 소년의 전사는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지만, 민식 스스로의 의지가 그다지 반영되지 않았으리라는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어느 사건을 기점으로 긴박하게 흘러갔을 상황, 어른들만의 결정에 떠밀려 홀로 낯선 세상에 던져진 소년의 무기력함은 그 결과이자 증거다. 반면 ‘어디론가’ 와버린 소년이 만난 소녀, 예주는 민식과 달리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처지다. 마구잡이로 찍혀 버린 살인자의 딸이라는 낙인에, 괴롭힘 당하는 매일이 되풀이될 뿐이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세상 변두리로 밀려난 이방인 소년과 왕따 소녀. 소외와 고독의 바깥에서 만났지만, 민식과 예주는 많은 말을 주고받지 않아도 괜찮다. 그 둘은 위로든 격려든 그것은 어차피 말일 뿐임을 알기 때문에, 그리고 서로가 내어준 작은 자리 한 칸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에.

 

여기에 영화의 영어 제목이기도 한 ‘길 잃은 염소’의 존재를 통해 둘은 조금 더 가까워진다. 우연히 산기슭에서 발견한 아기 염소 한 마리를 몰래 보살피던 소년은, 비밀을 기꺼이 소녀와 공유한다. 차갑게 얼어있던 소녀의 마음도 곁에 있는 소년의 미소와 작은 염소의 울음으로 서서히 녹아간다. 전해진 온기는 용기가 되고, 소녀는 달라진다. 동급생들은 그런 소녀가 마음에 들 리가 없다. 생각치도 못한 방향에서 갑작스럽게 들이닥치는 불행에 소녀는 결국 쓰러지고, 소년은 도망친다.

 

왜 잘못하지도 않은 일들에 가슴 아파하는지

그 눈물을 참아내는 건 너의 몫이 아닌데

왜 네가 하지도 않은 일들에 사과해야 하는지

약한 사람은 왜 더

 

그 순간 소년은 자신을 떠밀려오게 만든 사건을, 잊고 싶었던 기억을 떠올렸을까. 혹은 처음 자신에게 들렸던 어린 염소의 울음소리를 원망했을 지도, 어쩌면 이 모든 불행이 소녀에게 염소를 보여준 자신의 탓이라고 자책했을지 모른다. 그렇게 소년이 부재하는 동안, 의지할 곳을 찾지 못한 소녀는 어두운 길에서 길을 잃는다.

 

깊은 상처를 남기는 대부분의 마음은 가만히 있어도 쌓여만 가는데, 간신히 닿은 어떤 마음들은 쌓이지도 못하고 너무나도 쉽게 녹아 눈물이 된다. 그게 슬픈 것이다. 결국 흩날리는 눈발 속 소년도 길을 잃고 쓰러진다. 웃는 듯 우는 듯, 그 표정에 먹먹해지는 이유는 문득 ‘울지마’라는 제목의 반대말이 ‘슬프지만 웃어’인지 ‘슬프면 울어도 돼’인지 헷갈려져서다.

브로콜리너마저 <울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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