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독립영화外인이다
2막 <저도 '영화인'인가요?>
1장  "열정유감"
2018. 07. 06
​진은영

 “언니, 저 취업했어요. 지난 주부터 출근 시작했어요.”

 

 봄이라고 하기엔 한낮의 무더위가 낯설고 여름이라고 하기엔 선선한 저녁 바람이 부는 이 시기는 취업준비생의 운명이 갈리는 때이기도 하다. 상반기 결과에 따라 지긋지긋한 준비생의 꼬리표를 떼고 합격의 기쁨을 만끽하거나 좌절도 잠시 다가올 하반기 생각에 막막해하거나 또는 실낱 같은 희망을 부여잡고 고통스런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기’라는 것이 의미 없는 업계들이 있다. 영화 산업 역시 마찬가지로 대기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회사가 상시 채용을 한다. 언제 올라올지 모르는 공고를 기다리고 서류와 면접을 준비하며 고문에 가까운 기다림을 1년 내내 반복한다. 수시로 합격자와 불합격자가 생겨난다. 물론 주로 생기는 건 불합격자다. 아끼는 동생의 합격 소식에 가장 먼저 안도감이 들었다. 작은 영화사의 그 한 자리를 얻기 위해 어떤 시간을 보내왔는지 알기에 더 피폐해지기 전 그 시기를 벗어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영화의 길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던 날 ‘이 쪽 소식’은 일절 접하지 않으려 했지만 영화를 사랑한 시간만큼 영화를 꿈꾸는 이들이 주위에 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어떤 위로도, 도움도 줄 수 없었다. 하루 빨리 고통의 시간이 끝나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 때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영화사에 취업하겠다는 결심은 마치 전쟁 게임에 입장하는 것과 같았다. 24시간 긴장 상태로 주위를 주시하는 동시에 언제 어디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기에 항상 충분한 총알을 장전해두어야 했다. 공고가 없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생각보다 많았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영화사들이 있었나 싶었다. 선호하는 취향의 작품들을 맡은 회사 공고들도 제법 있었다. 다만 신입을 뽑는 곳이 거의 없었고 그마저도 단기 스태프, 계약직이 대부분이었다. 모두가 열정적으로 영화 일을 함께 할 비정규직을 찾고 있었다. 많은 걸 바라지 않았다기보다는 바랄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하는 게 더 맞을 것이다. 원하는 것은 단 하나, 정규직으로 업계에 발을 들이는 것이었다. 정규직 일자리가 나기를 주시하며 똑같은 경험을 각종 분야에 맞춰 가공할 준비를 했다. 열정이라기보다 절박함에 가까웠다. 지원서를 쓰는 과정은 또 다른 고통이었다.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영화 활동들을 해왔음에도 나를 어필하는 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앞날을 걱정하고 불안에 떨며 사는 사람이 아니었던 대학 초반의 나는 모든 활동들을 그저 '하고 싶어서', '재미있어 보여서' 했었다. 이러한 일들이 어딘가에서 나의 어떤 면을 보여주기 위해 사용될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경험을 통해 얻은 점에 대해 묻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좋아하는 외화 관련 자료들을 스크랩하면서 든 생각은 '외국어를 배우면 좋겠다'였고(생각에 그쳤을 뿐 배우지 않았다), 제천 영화제를 통해서는 제천이라는 도시가 얼마나 아름다운 지를 느꼈는데 솔직하게 써도 되는 걸까? 무언가 유익한 깨달음을 얻었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게 전부였다. 소중했지만 아무 짝에도 쓸모없었다. 

 

 졸업을 한 지도 어느덧 수개월이 지나며 점점 초조해졌다. 결국 아름다웠던 시간의 산물들을 열정으로 포장하여 이력서와 함께 제출하기 시작했다. 취업은 누가 누가 더 간절한지를 겨루는 시합 같았다. 비슷한 경험을 가진 신입에게서 회사가 원하는 모습이란 일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가 아니라 군말 없이 시키는 일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보는 것 같았다. 공고에서는 단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근무 시간과 연봉 정보를 면접에서 쉽게 알 수 있었다. 야근이 많고 주말 근무도 많은데 월급은 많지 않을 것이라며 괜찮겠냐고 물었다.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요구된 복종 앞에 그라운드 밖의 선수는 선택권이 없었다. 내게 열정은 어느 순간 타올랐다가 또 어느 순간 쉽게 휘발되는 것인데, 어떤 이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식지 않는, 오래도록 뜨거운, 도와주지 않아도 스스로 끓는 열정을 바라는 것 같았다. 내 열정을 쉽게 얻으려는 사람들이 원망스러웠다. 그마저도 난 다 써 버리고 없었다. 더 이상 열정이 넘치지 않는 현재를 감추기 위해 과거를 앞세웠고 그 때마다 번번이 부서졌다. 정말 가고 싶었던 회사에서 첫 면접을 보던 날, 내 경험들에 관심을 보이던 면접관 한 명이 10년 후 모습에 대해 물었다.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영화를 계속 좋아할 테니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있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 순간 면접관의 표정이 굳어졌다. "다 키워 주니 회사를 떠나겠다는 거군." 예상치 못한 반응에 그대로 얼어버렸다. 그 회사는 영화 투자배급사였다. 직원이 업계 전문가로 성장하는 동안 회사도 자연히 함께 성장할 것이라는 생각은 없었다. 매력적으로 성장한 직원에게 그에 맞는 처우를 제공한다면 직원은 떠나기보다 회사에 남아 함께 더 나아가보기를 선택하지 않을까? 그런 식의 생각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경험이나 능력 위에 충성이 있었다. 

 

 허허벌판에서 느닷없이 나오는 열정은 없다. 설령 일시적으로 불타올랐다 해도 계속해서 지펴주지 않으면 금세 사그라지고 만다. 사회는 공장이 아니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기계조차 약이 다 떨어지면 새 약으로 교체해주어야 한다. 기계는 약을 갈아주면 다시 돌아가기라도 하지 사람을 계속해서 굴리면 그 사람은 죽는다. 대부분의 이들에게 내 소중한 경험은 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수차례 불합격 통보를 받고 나서야 조금씩 알게 되었다. 회사와 잘 맞는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그것도 듣고 싶은 말로 포장까지 하며 보여주었던 가장 순수했던 시기의 내 모습이 그들에겐 조직의 수동적인 일원이 되기에 적합한지를 판단하는 지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이 나를 비참하게 했다. 영화사라고 다를 것이 없었다. 오히려 더 가혹했다. 영화 또는 예술이라는 말이 붙는 순간 어쩐지 많은 부분이 쉽게 넘어가곤 했다. 그럼에도 포기하기엔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던 나는 그렇게 1년여의 시간을 더 보낸 뒤, 마침내 작은 영화사로부터 합격 통보를 받게 되었다. 추운 겨울이 오기 전 따뜻한 소속감이 간절했던 이에게 한 줄기 빛과 같은 그 소식은 모든 불안과 의문을 한번에 잠식시켜 버리는 마법을 부렸고 그렇게 조금씩 스스로를 갉아먹는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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