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네마

고봉수 ​<델타 보이즈>

최금진 ​'밥을 먹으면 조금 멀쩡해진다'

김민범

2018. 10 . 21

"꿈의 쓸모"

밥 먹고 나면 꼭 글을 써야지. 쓰다가 배고프면 안 되니까. 흐름이 끊기면 안 돼. 벌써 3시가 넘었네. 정각에 시작해야지. 집에서는 뭐가 안 돼. 오늘 카페에 사람이 많네. 저녁은 뭐 먹지. 날 좋다. 잠깐 걸을까. 피곤한 거 같은데. 씻고 바로 시작할 거야. 출출하다. 불 끄고 진짜 잠깐만 쉰다. 알람도 맞췄어.

밥 먹고 나면 오늘은 꼭 글을 쓸 거야.

<델타 보이즈>는 청년에서 멀어지고 있는 네 남자가 모여 밥 먹는 영화다. 콘로우를 하고 매형 공장 일을 돕는 일록에게 시카고에서 20년 만에 돌아온 예건이 찾아온다. 예견이 들고 온 ‘남성들이여 위대한 꿈을 향해 노래하라.’는 지역구 남성 중창단 콘테스트 포스터가 시장 생선 가게에서 일하는 대용과 부인과 같이 행상에서 도넛을 파는 준세를 불러모은다. 넷은 만나면 밥을 먹는다. 자주 술을 마신다. 어쩌다 연습을 한다.

밥을 먹는다, 오늘 안 먹으면 다신 못 먹을 것처럼

하나님이 지옥문을 닫고 기분좋게 한잔 취해 있길 바라며

꾸지람이나 덜 들었으면 하는 어린 아들의 초조한 마음으로

믿음 소망 사랑, 어느 것 하나도 믿지 않는 얼굴로

하나님은 천한 우리 식구들이 밥이나 잘 퍼먹고 살길 바라니까

다부지게 양서류처럼 웅크리고 앉아서 먹는다

 

최금진, <밥을 먹으면 조금 멀쩡해진다> 中

중창단 준비하다가 일록의 매형 공장에서 쫓겨난 넷은 ‘로고스 교회’가 보이는 옥탑에 자리를 잡는다. 일록이 아는 형에게 사정해서 간신히 잡은 공간이다. 그들의 꿈은 착취를 통해 지속된다. 매형과 누나에게 신세를 지는 일록과 그런 일록에게 얹혀사는 예건, 동업하기로 한 형을 저버린 대용, 대용을 돕는다는 명목 아래 부인 지혜를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준세까지 이들의 꿈은 다른 사람들에게 빚지고 있다. 옥탑방에서 일록과 예견은 대용과 준세가 가져다주는 음식을 먹으며 지낸다. ‘델타 보이즈’의 꿈은 생산 없이 소비만 한다.

 

먹을 것을 앞에 두고 그들은 싸우고 화해한다. 대용은 전화하다가 고등어와 갈치를 잘못 주문한 손님에게 안 팔겠다며 화를 낸다. 장사하는 자신을 무시하냐며 과하게 화낸다. 손님은 중요한 전화였다고 항변하지만, 대용은 막무가내다. 결국 생선가게를 그만둔다. 준세는 중창단 연습을 위해 도넛을 파는 지혜를 두고 자주 사라진다. 지혜는 책임감 없는 준세에게 화를 낸다. 안 가겠다며 다짐도 여러 번 하지만, 이기는 쪽은 준세다. 예건은 라면을 먹을 때마다 속이 안 좋다, 더부룩하다며 은근히 일록에게 눈치를 준다. 일록은 먹지 말라며 예건을 타박한다. 먹고 사는 일에서 자꾸 이탈하려고 한다. 음식보다 ‘위대한 꿈을 향해’가는 그들은 먹고 마시는 자리에서 화해하고, 반성한다. 그들이 세상에 없는 대회를 위한 마지막 드라이 리허설을 하는 장소 역시 그들의 식탁이자 술상이었던 평상 앞에서다.

먹는 일은 존엄하며 속되다. 굶주린 자에게 한 봉지의 라면은 복되지만, 매끼 이어지는 면발은 비루함을 떠올리게 한다. ‘델타 보이즈’는 꾸준히 먹는다. 영화 내내 라면을 주식으로 치킨, 햄버거, 냉동식품, 삼겹살을 묵묵히 먹는다. 그들은 음식을 음미하지 않는다. 허겁지겁 먹어 치운다 . 착취를 바탕으로 얻은 식량 앞에서 품평은 죄악이다. 식사 때마다 곁들이는 중창단과 꿈에 대한 이야기는 씹는 일 사이를 채우는 고해이자 기도가 된다. 일용할 양식을 모두 먹어치우면 연습을 해야만 한다. 꿈이 밥을 먹여주는지는 않지만, 먹으면 꿈을 꿀 수 있다.

마지막 리허설을 앞두고, 대용이 일록에게 못생겨서 자신의 꿈이 가수라고 말해본 적 없던 자신이 중창단에서는 꼭 필요한 사람이 된 것 같다고 말한다. 일록은 콘테스트가 사라졌다는 말을 삼킨다. 다음 장면에서 그들은 삼겹살을 맛있게 구워 먹고, 흑인 영가 ‘제리코의 싸움’을 부른다. 먹어야 싸울 수 있고, 부를 수 있다. 같이 먹고 마셔서 동료가 됐고, 혼자 꾸는 꿈이 함께 꾸는 꿈이 됐다. 알파, 베타, 감마 그리고 델타의 차례다. 꿈이 오늘도 밥을 먹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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