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수족관

이현주 ​<연애담>

천혜윤
“일상이 무너지는, 연애”

 어떤 기대를 안고 이 영화를 찾은 걸까. 영화가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예고편 한 번 들여다보지 않고서 극장을 찾은 대책 없음을 한탄하면서 입술을 꽉 깨물었다. 편의점 담배 한 갑을 두고 실랑이를 벌이는 여자에게 단번에 반해 담뱃값을 내주는 여자라니, 너무 보잘것없는 시작이었다.

 

 애초에 여성 퀴어 영화가 흔하지 않은 탓에, <가장 따뜻한 색, 블루> 혹은 <캐롤> 같은 작품에서 묘사되는 두 여성 주인공의 처음의 만남과 긴장감 같은 걸, 내심 기대했는지 모른다. 그러니까 적어도 <가장 따뜻한 색, 블루>에서의 횡단보도 장면 같은 운명적인 만남 정도는 되어야 그럴듯해 보이는 거 아닌가 생각했고, 사회적 금기에 대한 해방의 제스처처럼 보이는 <캐롤>의 섹스신처럼 ‘윤주’와 ‘지수’의 그것에도 괜한 의미들을 새기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침 창밖으로 밀려들어오는 햇볕과 화장기 없는 얼굴로 체온을 나누는 두 여자의 입과 손은 그저 투명할 뿐이다.

 

 만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몸을 나눌까. 얼마나 깊이 사랑한다고, 불현듯 서로의 일상 속으로 달려드는 걸까. 그런데 영화 바깥의 연애들은 이 무모함과 왜 이토록 닮아있는 걸까. 사랑인지 욕망인지 모를 작은 계기가, 일상을 속절없이 망가뜨리도록 왜 가만 내버려 두는 걸까 왜 가장 보잘 것 없는 일들은 나를 가장 아프게 만드는 걸까. 나는 모른다.

 

 연애에 관한 한 나는 이렇게 무방비해진다. 끝내 모르겠다는 말을 고집하게 된다. 이 수식 없는 제목, ‘연애담’이 반가워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 자체만으로 일상을 무너지게 만드는 연애를 설명하기에 하나의 수식은 부족하다. 무수한 모호함을 건너며 영화는 두 여성의 사랑을 가장 온전한 방식으로 담아낼 방식을 찾는다. 그것은 관찰의 시선이다. 그녀들의 삶과 사랑에 쉽게 정의내리지 않음으로서 관계의 핵 안으로 내밀히 파고드는 일이다. 관음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서도 에로틱함으로 충만한 동침 장면은 <연애담>이 거둔 성취다. 그러한 성취란 오로지 연애만으로 온전해지던 지난 순간들에 대한 애틋한 응시로부터 시작된다.

 

 서른이 넘은 윤주는 아직 사랑을 경험해본 적이 없다. 룸메이트와 그녀의 남자친구가 기웃거리는 좁은 집 안에서 윤주는 가끔 불편할지 몰라도 그다지 외로워 보이지는 않는다. 교수님의 총애를 받는 탓에 곧 있을 미술 전시에서도 가장 좋은 전시 공간을 배정받는다. 가끔 편의점 컵라면으로 저녁을 때우지만 작업실 동료들과 이따금 함께하는 술자리는 그런대로 일상을 뜨끈하게 해준다. 그러니까 모든 것들이 정말로, 그런대로 괜찮은 상황이었다. 흔한 로맨스 영화의 주인공들과 달리 윤주의 일상은 구태여 다른 누군가에게 의지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 사랑에 빠져버렸다. 심지어 여자다. 그런데도 윤주는 레즈비언으로서의 삶이 떠안아야 할 무게를 그다지 고민하지 않는 것 같다. 윤주는 그저 오랜 시간 품어온 마음들을 하나씩 꺼내어 주는 일만으로 가슴이 벅차다. 그래서 코트 안에 고구마인지 군밤인지 모를 간식을 코트 안에 따뜻이 데워놓은 채 지수에게 자꾸만 선물해준다. 너무 오랜 시간 품어온 그 온도가, 결국 자신을 데이게 만들 거라는 사실도 모른 채.

 

 그 군밤 같은 작고 따뜻한 균열이 윤주의 일상을 무너지게 만드는 일에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전시 작업과 교수와의 관계, 주변 사람들의 시선 같은 일들에 위로받기 위해 윤주는 지수를 찾는다. 일상을 무너지게 만든 연애는, 모순적이게도, 일상에 지친 윤주의 방문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는 차가운 모텔방 한 가운데 홀로 남겨진다. 연인들을 위한 공간, 그러니까 룸메이트와 그녀의 애인이라면 괜찮았을 공간으로 내쫓긴다. 하지만 오래된 친구에게 했던 말처럼 이젠 사랑이 ‘뭔지 알 것 같은’ 윤주는 목이 메인다.

 

 영화는 그녀들이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에 에둘러 방점을 찍으려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캐롤>,<아가씨>와 같은 작품들처럼 남성 캐릭터 일반을 손쉽게 악인으로 만들지도 않는다. 그러나 지수가 살아왔을 거짓말의 삶들은, 성소수자로서 그녀가 겪어온 어쩌면 폭력적이었을 경험들 없이는 설명되지 못한다. 폭력이란 존재를 부정당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지수의 아버지는 남자친구 한 번 만나 본 적 없는 딸이 동성애자일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과연 조금도 생각해 본 적 없었을까. 지수는 이제 그만 사회가 안전하다고 말하는 세계 속으로 도망치고 싶다. 지수는 그래서 윤주에게 ‘어떻게 살고 싶고 그런’ 미래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두 사람 만남의 계기가 되었던, 그 ‘담배’ 냄새가 몸에 베이는 게 이젠 두렵다.

 

 윤주에서 시작된 <연애담>의 시선은 필연적으로 지수에게 향한다. 레즈비언으로서 숱한 연애를 경험해 온 지수가, 아버지의 행복을 책임져야하는 그녀가 윤주와 같은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할 수 있을 리 없다. 지수의 내면은 내내 간접적인 방식으로 표현되기에 관객들은 그녀의 행동이 흔한 변덕이 아닐까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이 고민의 끝에서 유추하게 되는 것은 결국 성소수자로서 현실과 어떻게 타협해야 하는가, 아니 타협해야만 하는 것인가를 되묻는 한 여성의 실존적 물음이다.

 

 지수의 고민은 물론 끝나지 않는다. 그녀는 다시 윤주를 떠나 또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 윤주는 ‘보고 싶었다’ 는 말을 꺼내는 애인을 두고, 하릴없이 괴로운 얼굴로 담배를 문다. 담배, 신분증을 두고 온 지수가 그토록 원했던 한 개비. 그토록 원했던 사람. 윤주의 괴로운 얼굴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두 사람이 그렇게 다시 투명한 얼굴로 체온을 나누고 사랑을 속삭일 것이라 믿게 된다. 담배 한 개비, 그것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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