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독립영화外인이다
2막 <저도 '영화인'인가요?>
2018. 08. 15
​진은영

 “언니, 저 취업했어요. 지난 주부터 출근 시작했어요.”

 

 설렘과 걱정이 섞인 숨을 내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피어났다. 회사가 있던 대학로는 평소 생활 반경에서 제법 거리가 있었고 행여 지각이라도 할까 일찍 집을 나선 덕분에 구석구석 탐색할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매일 같이 드나들 이곳에 하루 빨리 정을 붙이고 싶었다. 앞서 나가지 말자고 되뇌었지만 그럴수록 바삐 움직이며 중요해 보이는 듯한 일을 하는 커리어우먼으로서의 상상이 비집고 나와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았다. 드디어 도착한 회사 앞, 긴장을 감추고 밝은 이미지를 어필하고자 한껏 미소를 띤 채 문을 열자 하얀 연기가 나를 반겨 주었다. 담배였다.

영화감독이 오프닝 시퀀스에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글에서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영화가 줄 수 있는 놀라움과 재미는 ‘오프닝 시퀀스’에서 결정된다.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에 대한 비전을 갖고 있지 않은 영화를 보아줄 인내심이 있는 관객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것은 생애 가장 강렬한 오프닝이었고 최악의 첫인상이었다. 막연했던 불안감이 하나 둘씩 정체를 드러내는 순간, 회사 생활이라는 영화에 대한 기대감은 빠른 속도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몹시 당황한 나머지 그대로 굳어 있던 나를 보며 직속 사수이자 4년차 기획팀장님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회사의 주 업무는 국내외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고 국내에 배급하는 일이었다. 영화 제작 전반을 맡는 제작팀, 해외 커뮤니케이션을 전담하는 해외팀 그리고 온갖 홍보와 마케팅 및 기타(?)를 담당하는 기획팀이 있었다. 전 직원이 7명 남짓 되는 작은 규모의 회사였고 평범한 규모의 영화사였다. 기획팀에서도 팀장님은 홍보 업무를, 나는 마케팅 업무 및 기타를 담당하였다. 영화 분야에서 대외 활동을 한 번이라도 해봤던 사람들은 왜 영화사 신입 채용의 90% 이상이 마케팅 팀인지 금세 알 수 있다. 사실상 같은 일을 하기 때문이다. 공식 웹사이트 또는 SNS 채널에 게시할 컨텐츠를 제작하고 어떻게 하면 돈은 안 들이면서 효과적인 신작 홍보를 할지 고민하고 실행하는 것이 영화 마케팅 업무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차이라면 눈치를 볼 사람이 생겼다는 것 정도. 참고로 ‘뭘 해야 할 지 모른 채 헤매는 신입사원의 무력감’은 늘 부족한 인력에 비해 업무는 늘 과중한 소규모 영화사에서는 하루 반나절이면 사라지니 우려할 필요는 없다. 대부분의 사항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들어왔던 내게 매일 같은 야근과 처참한 좋아요 수 따위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정작 나를 미치게 했던 요인은 전혀 예상치 못한 데에서 터졌다.

 

 생각해보면 ‘영화를 좋아한다’는 말에는 다양한 방식이 포함된다. 어떤 이는 모든 영화를 가리지 않고 즐겨 보지만 어떤 이는 특정 영화만을 집중해서 파고든다. 나는 후자였다. 영화사 채용 공고의 첫 줄에는 그들을 거쳐 간 (때로는 스쳐간) 영화들이 있다. 작품이 곧 영화사의 정체성인 것이다. 좋아하는 영화가 하나라도 더 있는 회사에 더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했다. 이 회사에 지원하기로 결심한 이유 역시 몹시 좋아했던 작품을 두 편이나 배급했기 때문이었다. 바로 옆 수두룩하게 나열되어 있던 들어본 적도 작품들이 왜 그 땐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까. 입사 후 처음으로 맡았던 영화를 기억한다. 현 정권에 대해 비판하는 다큐멘터리였는데 스크리닝 직후 큰 충격을 받았다. 내용을 떠나 영화 자체가 너무 재미가 없었다. 의미 있는 주제였지만 영화적 매력을 좀처럼 찾기 힘들었다. 홍보 방향을 정하는 기획 회의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팀장님, 이 영화 아무도 안 볼 것 같아요.’ 이 정도 규모의 회사가 1년에 약 10편을 마케팅 한다고 했을 때 그 중 보통 1편, 많으면 2~3편 정도가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을 할 확률이다. 절대 돈 주고 극장에서 보지 않을 것 같은 영화들을 매력적으로 포장해 관객을 끌어들이는 일은 선호사항이 뚜렷한 사람에게 고역이었다. 취업에 급급한 나머지 등한시 했던 명백한 내 착오였다. 어느 회사든 자신이 원하는 일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안다. 다만 내게 영화는, 그게 용납이 안 되는 분야였던 것이다. 여기에 더해 충격적이었던 오프닝을 잇는 본편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채 30평이 되지 않는 공간에서 나를 제외한 모든 직원이 동시에 담배를 피우는 장면은 20여 년간 철저한 비흡연 환경에서 지낸 내게 지옥이었다. 미팅을 가면 업계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연히 담배를 피우곤 했다. 을의 입장인 우리는 감독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실내 흡연이 법적으로 금지가 된 해였음에도 귀신 같이 흡연 가능한 식당을 찾아냈다. 온몸에 찌든 담배 냄새를 없애기 위해 매일 서너 번씩 샤워를 할 때도, 깨질 듯 한 두통을 잠재우기 위해 진통제를 몇 알씩 삼킬 때까지만 해도 아직은 더 버틸 수 있다고 믿었다. 경력 쌓아서 이직할 거니까 그 때까지만 버티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심한 통증을 견디지 못해 찾은 병원에서 편도 전체가 염증으로 가득 차 매주 내원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무서웠다. 매일 10시간 이 곳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공포로 다가왔다. 복사기 사용법을 묻는 일조차 조심스러운 신입사원이었지만 마지막 희망을 안고 팀장님에게 고민을 털어 놓았고, 그 날 나는 퇴사했다. “은영씨도 이참에 배워. 나도 여기서 배웠어.”

 내게 처음은 언제나 가혹하다. 첫 사랑, 첫 면접, 첫 회사. 한동안 모든 영화사가 이렇게 자신과 맞지도 않는 작품을 건강을 담보로 하며 근무하는 곳인가 하는 회의감에 빠져 지냈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야 첫 회사가 그 곳이어서 어쩌면 다행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내게 어떤 것이 중요한지, 견딜 수 있는 것과 없는 것들은 무엇인지에 대해 조금이라도 일찍 고민할 수 있었던 건 그 회사에서 받은 충격 때문이었다. 아직은 영화 업계에 더 머무르고 싶다고 결심한 이상 생존법을 찾아야 했고 결국 영화에 집중하기로 했다. 어딜 가도 암울한 근무 여건이라면 나와 좀 더 영화 취향이 맞는 회사를 반드시 찾아내리라. 이후 지난한 취업 준비 기간을 거쳐 운 좋게 두 번 더 영화사에서 일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경험은 결코 모두가 행복할 수 없도록 짜인 기이한 영화 업계의 구조를 알게 해준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2장  "아무 것도 아닌,
​모든 처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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