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적(‘短編’的)
이광국 <말로는 힘들어>
이채현
말로는 힘들다면

 소녀는 소년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말로는 힘든데, 그렇다고 이 마음을 전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시종일관 툭툭 진심이 튀어 오른다. 자꾸 너에게 설명하고 싶다. 내가 너를 생각할 때 어떤 기분인지, 내가 얼마나 너를 좋아하는지. 안달이 난다. 내 마음은 이렇게나 속절없이 불타오르는데, 왜 너는 모를까.

 

 나는 내가 나뭇잎이 된 것 같은 기분이야. 바람이 막 간지럽히는데 신기하게 긁지 않아도 시원한 느낌이 들고, 네가 내렸는데도 흔들리는 그네처럼 나는 무작정 흔들려. 아무거나 껴안고 싶고, 마구 달리고 싶은데,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다. 내가 너에게 느끼는 이 엄청난 감정을 말로 설명하기가 너무 힘들다. 설마 너 사랑하냐? 고 네가 웃는데, 세상 사람들이 이런 기분을 사랑이라고 부른다면 나는 너를 사랑하는 것이 맞다. 그렇지만 이 마음은 분명 두 글자로 설명되는 그리 간단한 게 아닌 것 같다. 너는 나보다 밥을 해야 하는 게 중요하고 나를 막연한 새끼, 라고 부른다. 도무지 여자다운 데가 없다고 마음을 밟는다. 나는 널 위해서 라면도 끓여줄 거고, 너를 어디든 데려가 줄 수도 있는데, 해 줄 수 있는 게 이렇게나 많은데. 아직 내 설명이 부족한가?

 

 소녀는 눈을 감는다.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소녀의 마음은 상상의 힘이 될 수 있다. 소녀는 희망하는 것을 상상한다. 소녀의 '만약에'는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이 아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일과 되돌릴 수 없는 일을 곱씹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소녀는 작은 낙원에서 미래의 기억을 만든다. 나뭇잎이 된, 그네가 된 기분을 느끼는 사람들이 종종하는 일이다. 상상의 낙원 속으로 소년을 초대한다. 소년은 소녀가 되고 소녀는 소년이 된다. 막연하신 분이군요? 소녀는 소년에게 상상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그러니까,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상상이 상상을 부르는 낙원에서 소녀가 소년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하나다. 내 마음 좀 들여다 봐줘. 상상해보세요, 마음의 소리가 들릴 거예요. 사랑해주세요. 진심으로, 세상 누구보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안아보세요. 소녀의 세상에서 소년이 소녀를 껴안자, 소녀는 눈을 뜬다. 소년이 소녀에게 손을 내민다. 우리는 그러한 종류의 낙원이 있어야 네가 아직 오지 않았어도 기쁠 수 있다. 내가 초대한 낙원에서 네가 한 조각의 마음을 주어가기만 해도, 나는 서둘거나 조급해하지 않을 수 있다. 미래의 기억이 있으니까. 내가 자꾸자꾸 만든 작은 낙원의 미래가 진짜 기억이 될지도 모르니까. 나는 오늘도 상상할 것이다. 그러니까 당신도 작은 낙원에 누군가를 초대하자. 그곳에서 그냥 한 번만 안아보자. 세상에서 너를 가장 사랑한다는 마음으로.

 

"왜 마음이 바뀐 거야?"

"아 몰라, 말로는 힘들어."

 

 소녀는 믿기지 않는 얼굴로 소년의 뒤를 쫓는다. 자신이 왜 손을 내밀었는지 소년도 소녀에게 설명할 수가 없다. 소년이 왜 그랬냐면, 음, 이게 참, '말로는 힘들다.'

 

네이버 인디극장 <말로는 힘들어> (http://tvcast.naver.com/v/1301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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