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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없이는 못 살아>

감독 : 이명세

출연 : 유인영, 김설진

키워드 : 데이트폭력

글 : 윤혜인

큰 트렁크를 끌고 낯선 도시에 도착했다. 나의 도시에서는 감각하지도 못했던 열차의 굉음이 잡아먹을 듯이 울리고 규칙적으로 맞물리는 기계의 톱니는 그 안에서 몸이 으깨져 무연고 시체가 되는 상상을 하게 했다. 나는 내 몸만 한 트렁크를 더욱 꼭 붙잡고 경계하며, 그러나 겁먹은 티는 내지 않으며 나아가는 수밖에는 없었다. 지금 이 순간 내 모든 것이 들어있는 중요한, 그만큼 무거워서 버리고 싶은 트렁크를 애써 끌면서, 안다고 생각했던 곳에서부터 먼 곳으로 가는 것이다. 그렇게 걷다보면 오래지 못해 지쳐버려서 생각한다. 무엇을 위해서 나는 떠나고 있을까. 어깨가 빠질 것 같은데 이 짐은 무엇 하려 들고 가나. 얼마나 멀리 가든 전부는 여전히 떠나온 곳에 있는데.

 

트렌치코트를 입고 장우산을 든 여자가 제 몸만 한 트렁크를 끌고 간다. 사람들이 모두 돌아보는 이 여자는 ‘으깨버리고 싶을 만큼’ 아름다우며, ‘눈을 씹어 먹어버리고 싶을 만큼’ 귀여운 여자다. 그리고 이 여자는 영화의 나레이터인 ‘나’를 죽였다. 그런데 온 몸에 멍이 들고 찢어진 스타킹을 신고 있는 이 여자는 지하철 역 행인의 부딪힘에도 크게 아파하고 지나가던 사람의 부르는 목소리에도 달려서 도망친다. 떨리는 입술, 흔들리는 동공, 웃는 듯 우는 듯 알 수 없는 입. 겁먹은 도망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녀는 살인자가 되었을까. 혼자 서있는 여자의 귀에 열차가 들어오는 굉음이 울린다. 이제 역은 어디론가 떠나는 공간이 아닌, 어디도 가야할지 알 수 없으나 떠나야한다는 목적성만을 갖고 있는 공포의 공간으로 기능한다.

 

들기에 너무 버거운 무게인 트렁크를 잡고 계단 중간에서 울먹이는 여자. 이 때 이상한 쇼트들이 연속된다. 여자는 계단 중간에서 트렁크를 들고 있었고, 사람들은 계단 위로 올라가고 있었는데 트렁크가 밑으로 굴러 떨어지며 한 남자가 트렁크를 안다시피 하며 멈춰 세운다. 여자의 얼굴로 카메라가 무빙 인하고 곧이어 트렁크를 세운 남자가 와 여자가 같이 잡히는 쇼트가 나온다. 남자는 웃으며 여자를 보고 여자는 그런 남자를 보는데 이때 계단을 오르던 사람들은 이미 그 공간에서 ‘없어졌다’. 다시, 클로즈업 된 여자의 얼굴 쇼트, 그리고 여자의 나레이션과 함께 지하철이 들어오는 숏이 이어지는데 다음 순간 남자는 계단 중간에서 뒤를 돌아보고 여자는 계단의 맨 아래, 플랫폼에서 남자를 올려다보고 있다. 설명도 인과도 없이 여자와 남자의 위치가 바뀐 것이다.

 

‘그때 예고 없이 찾아온 교통사고처럼 우린 사랑에 빠졌습니다’

 

여자의 목소리가 흐르는 순간, 이제 이 장면 이후의 장면에서 시간 순의 인과를 찾는 것은 무용해진다. 사실 그럴 필요도 없다. 이것은 폭력으로 남은 지나간 사랑에 대한 기억이자 은유이다.

우리의, 혹은 당신의 폭력은 그림자 연극처럼 빛 저 편의 몸짓으로 기억되고(놀이공원 시퀀스 중 그림자 씬), 악몽 같은 폭력의 시간은 꿈같았던 사랑의 시간과 회전목마처럼 오버랩 된다(놀이공원 시퀀스 중 회전목마 씬). 당신에게 치어서 든 멍이 욱신거리는데도 떠오르는 것은 사랑이다. 환상적인 불빛과 공포스러운 소리를 반복하며 기억의 회전목마는 계속 도는데 저 편의 트렁크는 무심하게 거기에서 밀리고 흔들리며 같이 돌고 있다. 영화의 초반부부터 트렁크 안에는 남자의 시체가 들어있을 것으로 암시된다. 시체의 존재가 ‘끝’이라는 증명이라면 이 모든 복합적인 감정에도 이것은 결국 끝난 이야기이다. 그리고 온 몸에 든 멍에도 불구하고 여자가 마지막으로 회상하는 것은 남자와의 키스이다.

 

굉음에 가까운 기계음으로 시작한 영화에 바람 스치는 자연의 소리가 들린다. 긴 회전목마가 멎고 바람 부는 갈대숲에는 트렁크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멀리 떠나는 길의 트렁크는 내 전부인 것 같이 소중하지만 그 트렁크를 끌고는 계단을 올라가는 것도, 비포장도로를 오르는 것도 힘겨워서 아주 멀리는 갈 수가 없다. ‘없이’는 못 살 것 같지만 없어야 비로소 자유로워지는 것, 그대.

 

사랑은 너에게 어떻게 왔던가,

빛나는 햇살처럼, 아니면

우수수 지는 꽃잎처럼 아니면

기도처럼 왔던가,

말해다오

 

R.M 릴케

 

‘사랑은 너에게 어떻게 왔던가’ (영화의 엔딩에 삽입되는 릴케의 시의 일부), 이 질문은 진행형인 사랑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진행형인 사랑에게 사랑이 어떻게 왔는지 말하는 것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이미 사랑이 있는데.

 

‘사랑은 너에게 어떻게 왔던가’ 이것을 묻기에 이미 늦었다면 ‘사랑은 너에게서 어떻게 갔던가’ 묻는다. 사랑이 가지 않는다면, 사랑을 거기에 두고 내가 떠나면 된다. 여자는 이제 멀리 갈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단편 영화 <그대 없이는 못 살아>를 영화 자체로만 두고 쓴 리뷰이지만 영화의 키워드인 ‘데이트 폭력’을 영화화 한 것에 대해서는 지지하지 않는 입장임을 밝힌다. 데이트 폭력의 맹점은 그것이 ‘폭력’임에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되어 피해자들이 폭력을 폭력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과 처벌을 어렵게 만든다는 것, ‘사적인 일’로 치부된다는 것에 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서로를 사랑하는 남녀가 아마도 사랑이라는 감정에서 기인한 폭력을 서로에게 휘두르고, 그럼에도 사랑을 마지막으로 보여줌으로써 ‘데이트 폭력’ 인식의 위험한 지점을 그대로 보여준다. 데이트 폭력은 ‘사랑하기 때문에’ 시작된 폭력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이름을 오용해서 인간의 자존감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폭력이다. 그에 대한 남녀의 시선, 온도차를 보여주었다면 오히려 이 영화는 데이트 폭력이라는 주제에 더 걸맞았을 것이다. 지금의 <그대 없이는 못 살아>는 데이트 폭력을 소재로 보기에는 위험하며, 사랑의 시작과 끝에 대한 은유로 보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판단하여 리뷰에서는 데이트 폭력에 대한 견해는 다루지 않았다.

그대 없이는 못 살아(1) : http://tv.naver.com/v/2337372/list/171195
그대 없이는 못 살아(2) : http://tv.naver.com/v/2337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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