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독립영화外인이다
2막 <저도 '영화인'인가요?>
3장  "누구도  포기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2019. 05. 21
​진은영

 “팀장님! 드디어 넣어 주시기로 했어요! 이번 주로요!”

 하루 종일 수화기를 붙잡고 있던 직원이 처음으로 활짝 웃었다. 원래도 쾌활한 성격의 팀장님은 한껏 우렁찬 목소리로 연신 ‘대박’을 외쳤다. 팀원들과 빨리 친해지려면 기쁜 일이 있을 때 함께 기뻐하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어디선가 봤던 기억이 났다. ‘같이 즐거워 할 준비가 되었어요’ 라는 간절한 눈빛을 느낀 팀장님은 벅참이 채 가시지 않는 목소리로 설명해주셨다. 어느 영화 소개 프로그램의 엔딩에 우리가 홍보하는 영화가 들어가게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내가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신입이었다면 진심으로 기뻐했을 것이다. 하지만 평소 그 프로그램을 즐겨 보던 나는 알고 있었다. 이번 주말, 1%가 채 되지 않는 시청률을 기록하는 방송 말미에 우리 영화는 이미지 하나 없이 타이틀만 오롯이, 잔상조차 남지 않을 만큼 짧은 시간 동안 노출될 것이다. 두 번째 영화사는 아주 작은 지분의 홍보를 위해 온갖 발품(이라고 쓰고 잡일 이라고 읽는다)을 팔아야 하는 홍보 대행사였다. 첫 회사와 달리 좋아하는 영화들이 다수 있던 이 회사의 공고를 발견하자마자 지원했고 하루 만에 면접을 보게 되었다. 며칠 전에도 이 회사의 공고를 봤던 것 같지만 어쨌든 그 자리에서 합격해 다음 주부터 출근 했다. 며칠 동안 중소 매체사에 전화와 이메일로 간곡히 매달려 귀중한 3초를 얻어낸 데 모두가 기뻐하던 그 순간, 그러니까 출근한 지 3일 째 되던 그 날 나는 처음으로 영화 업계의 구조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철저한 피라미드 구조였다. 아무리 작은 규모라고 할 지라도 몇 백 만원의 제작비는 우습게 시작하는 영화 산 특성상, 꼭대기에는 그만한 제작비를 감당할 수 있는 대형 투자사가 있다. 그리고 국내 영화를 제작하는 제작사, 외화를 들여 오는 수입사가 그 다음이다.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제작사라고 하면 역시 CJ 엔터테인먼트와 롯데 엔터테인먼트일 텐데 이 둘의 특징은 탄탄한 투자사를 업고 있는 대기업인데다 전국에 자사 계열의 상영관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다. 이것이 핵심이다. 제작사가 재정적인 뒷받침 뿐 아니라 제작한 영화를 유통할 수 있는 채널까지 확보하고 있다는 건 다시 말해 이 두 회사가 사실상 대한민국 영화 시장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의미이다. 이 외에도 직접적인 유통 채널은 없지만 확고한 영화 스타일을 보유한 제작사인 쇼박스, 넥스트 엔터테인먼트 등과 외화를 수입하는 크고 작은 수입사들이 중간 지점에 자리한다. 그리고 제일 하단에 홍보 대행사가 있다. 대기업의 경우 자체 홍보, 마케팅 팀이 있어 주력으로 하는 영화를 제외한 작품들의 외주를 홍보대행사에 준다. 크고 작은 컨텐츠사/수입사 역시 메인은 직접 하고 나머지를 그보다 더 작은 대행사에 외주를 준다. 영화 산업 특성상 열악한 근무 환경이 필수적이라면 피라미드의 위치에 따라 열악함의 레벨이 매겨진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가 다니던 대행사는 그 중에서도 최악의 근무 여건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그렇다면 이 곳에서의 시간이 내 커리어가 되어 줄 것인가. 당시 대행사 월급 100만원으로 야근과 주말 근무를 밥 먹듯 3년 정도 하던 어떤 선배가 클라이언트였던 대기업 영화사의 눈에 띄어 스카웃 받아 갔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돌고 있었다. 전설이라는 건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회사의 채용 공고를 자주 봤던 건 기분 탓이 아니었다. 실제로 수시로 사람이 들어오고 나갔다. 당장의 월급과 근무 환경이 여의치 않다면 좋아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라도 보여야 했다. 정말 영화를 사랑한다면 조건보다 기회 자체가 더 중요하지 않냐는 누군가의 말에 영화에 대한 내 사랑은 거기까지인 것 같다고 답했던 기억이 난다.

 퇴사 후 바로 수입사에 입사할 수 있었던 건 운이었다. 국내에서 마니아 층이 두터운 일본 감독의 대표작을 단독 수입/배급한 이력 하나로 회사의 기틀을 다진 이 회사는 소규모 영화사 답지 않게 모든 면에서 무척 ‘있어’ 보이는 곳이었다. 잘 나가는 디자인 회사 같은 외관에서 한 번 놀랐고 면접 때부터 내 블로그에서 어떤 영화에 대한 글을 보고 자신과 영화 보는 눈이 비슷하다며 대놓고 예뻐해 주셨던 이사님을 비롯해 거의 모든 직원 분들이 참 쿨 했다. 나만 잘 따라 오면 자존심 안 굽히면서도 멋지게 커리어를 쌓을 수 있을 거란 이사님의 말씀에 하루 종일 얼마나 심장이 뛰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기쁨은 내 첫 업무와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당시 회사는 어린이용 국내 애니메이션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있었다. 이사님이 개인적인 사연을 품고 제작 단계부터 세심하게 참여했을 정도로 기대도 애정도 큰 프로젝트였다. 입사 후 마케팅 팀장님이 곧 퇴사하실 예정이었기에 새 프로젝트는 곧바로 이사님과 둘이 진행하게 되었다. 덕분에 바로 옆에서 통화나 미팅 상황을 실시간으로 들을 기회가 많았고 이는 내 퇴사를 앞당기는 계기가 되었다. 늘 감정적으로 평온하던 이사님이 어느 날 화가 잔뜩 난 목소리로 통화하며 출근을 했다. 사무실에서도 한참을 통화하던 이사님은 마침내 방에서 나오더니 다짜고짜 메인 애니메이션 영화의 모든 마케팅 업무를 중단하라고 하는 것이었다. 벙 찐 표정으로 앉아 있던 내게 다른 팀 팀장님은 안타깝지만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라는 듯 설명해주셨다. “배급 밀린 것 같아요. 영화 언제 걸릴지 모르니까 일단 다른 거 먼저 하고 있어요.” 컨텐츠 사에 들어오면 괜찮은 줄 알았다. 극장을 보유하지 않은 소규모 컨텐츠 사는 영화업계 구조 전체에서 수많은 을 중에 하나였다. 그러던 중 얼마 안 가 잡힌 회식 자리는 이 회사에, 아니 업계에 남아 있던 일말의 애정마저 완전히 식는 계기가 되었다. 눈을 반짝이는 신입이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메인이 엎어질 위기에 처하자 세상 쿨 하던 이사님의 자존심에 단단히 금이 갔는지 패악을 부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엄연히 금연인 식당에서 난처해 하는 직원에게 웃돈을 얹어 방 하나를 빌리더니 그 안을 완전 너구리 소굴로 만들었다. 2차로 간 술집은 단언컨대 일반적인 주점은 아니었다. 처음엔 자존심이 상한 대표와 이사가 뒤틀린 방식으로 감정을 푸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익숙한 듯 즐거워 하는 직원들의 얼굴을 보며 말할 수 없는 자괴감과 이 세계와 영원히 가까워질 수 없을 거라는 괴리감이 온 몸을 덮쳤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갈 곳은 영화사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영화사에서 일할 수만 있다면 힘들지만 재미 있고 보람 있을 거라 믿었다. 그 곳이 어떤 곳이든 걸쳐 있기만 한다면 분명 행복할 거라 믿었던, 내 인생에 영화를 놓는 일은 영원히 없을 거라 생각했던 과거의 내가 너무 한심하고 부끄러워 자꾸만 화가 났다. 내게 남은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똑같이 살인적인 업무를 한다면 그나 처우를 보장 받는 대기업 영화사로 몇 년을 준비해서 가거나, 여기서 멈추거나. 약 3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영화사 취업 준비와 입사, 근무, 퇴사를 반복하며 깨달은 건 슬프게도 내가 영화 일을 하며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될 지 안 될지도 모르는 대기업 준비에 다시 뛰어들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만큼 간절하지 않았다. 죽어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사실을 이제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영화를 향한 내 사랑은 관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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