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歌
"무용하니까"
이승문 <땐뽀걸즈>
좋아서 하는 밴드
<왜 그렇게 에뻐요>
유성현

처음에는 “독립영화歌”를 위한 노래 하나를 더하는 일이 괜히 거추장스러운 사족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땐뽀걸즈>에 가장 어울리는 노래를 꼽자면, 나 역시 김사월이 부른 동명의 노래 ‘땐뽀걸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지 않고 들어도 좋고, 영화를 보고 나면 더 좋을 곡이었다. 혹은 아담한 독립영화의 OST로는 지나치게 유명해서(?) 뜻밖이었던 들국화의 ‘세계로 가는 기차’나 장필순의 ‘너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매력적인 노래들도 있었다. 이 사랑스러운 영화와 어울리는 노래를 애써 멀리서 찾을 필요는 없었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좋아서 하는 밴드’의 “왜 그렇게 예뻐요”를 꺼내 듣게 된 이유는, 결국 순전히 이 절박한 하소연과 같은 제목이 전부라고 하겠다. 아닌 게 아니라 이 물음은 고스란히 <땐뽀걸즈> 속 땐뽀(댄스스포츠)반 학생들과 이규호 선생님에게 향해도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정말, 그들은 왜 그렇게 예쁜 건지. 나도 문득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단지 댄스스포츠라는 무용舞踊때문은 아닌 것 같은데.

 

바다 깊은 곳 무엇이 사는지 상상해본 적 있나요
백과사전은 나날이 두꺼워지는데
대답하기 힘든 질문은 여전히 넘쳐나죠

 

영화는 “돌아오지 않을 거야!”라는, 학교라는 지루한 공간에서 벗어나 대회장으로 향하는 승합차의 차창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민 소녀의 외침으로 시작한다. 해방감을 만끽하는 그 한 마디에 덩달아 내 가슴도 뻥 뚫리는 듯하다.
평소 편한 옷만 입던 선생님이 공연 리허설을 위해 멋진 무대용 의상을 입고 나타나자 "다 컸네, 장가가자!"고 하질 않나, 무대를 앞두고 "입상만 해도 대단한 거야" 아이들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선생님의 격려에 대뜸 "(다른 팀) 다리 하나씩 뽀사 올게요"라며 호탕한 농담으로 받아친다. 영화 속 거제여자상업고등학교 땐뽀반의 일상 하나하나에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진다. 선생님이 여자아이들 다이어트한다고 일부러 치킨을 조금 적게 시켜도 치킨 한 마리가 서비스로 그냥 오는, 거제 바닷마을의 모습도 정겹기만 하다.
예뻐 보이는 척이 아니다. 단지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움만으로도 바닷마을 거제의 풍경은 엽서에 그려진 한 폭의 그림이다. 땐뽀걸즈와 이규호 선생님의 아름다운 일상은 마치 명랑만화의 한 장면 같다. 그 모습을 보며 무심코 ‘좋을 때’라는 말이 새어 나온다.

그래요 블랙홀 너머엔 뭐가 있는지
사라진 대륙은 어디로 갔는지 
우리는 어디서 왔는지

 

그러나 당연하게도 그 때, 그 곳이 영화처럼 마냥 아름답기만한 것은 아니었다. 학업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진로문제가 말하지 않아도 공유하는 불안이라면, 저 거창한 블랙홀이나 사라진 대륙보다 중요하고 심각한 자기만의 고민이란 말할 수 없어 혼자 앓고 있어야 했다. 그런 시간이었다.
거제라는 공간도 마찬가지다. 푸른 바다로부터의 바람이 언제나 선선히 불어오지만은 않는다. 조선업의 불황과 도시를 감싸는 구조조정의 칼바람은 살을 에는 듯 매섭다. 바다 깊은 곳에 사는 무엇보다 더 궁금해 하지 않았던, 바다 가까운 마을의 실제 풍경이 꼭 그러했다. <땐뽀걸즈>를 연출한 이승문 감독도 본래는 이런 ‘거제시의 조선업 몰락’을 담기 위해 내려갔던 것이었다.
거대한 조선소의 화물선과, 연습실에서 춤을 추는 여학생의 이미지란 이토록 대조적이다. 그 압도적인 차이 앞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다시피한 미성년이 온몸으로 겪을 위압감을 상상해본다. 구조조정이 시작된 조선소에 취업을 준비하는 지역 학생들이 느낄 불안은 영화가 애써 드러내지 않더라도 충분히 짐작이 가능하다. 이런 거친 세상에서 학생, 청소년이라는 딱지를 달고 서 있는 그들의 입장은 연약해 보이기만 하다.

 

초능력 시간여행 환생은 가능한 걸까요
글쎄요 어렵죠 그런데 말이에요
아니 대체 왜 그렇게 예뻐요 제발 이유를 말해줘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좋아서 하는 '땐뽀'는 더욱 빛나 보인다. 불안한 내일과 불친절한 오늘을 마주하며 소녀들은 춤을 춘다. 취업이나 성적 때문이 아니라 그저 즐거워서. 누군가 걱정스럽게 볼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단지 ‘좋아서 하는’일을 하기란, 얼마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가. 그것이 초능력, 시간여행, 환생 못지않게 쉬운 일이 아님을 이제는 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더욱 절실하게. 그러니 예뻐 보일 수밖에 없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돌아오지 않을 거야!’라는 말을 떠올린다. 
혼잣말이라고 생각했던 소녀의 외침이 꼭 나에게 하는 말 같아서 퍽 슬픈 기분이 든다. 그 시간은, 정말로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에. 다만 나는 앞으로 나아가는 지금이라도 조금, 무용無用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레 바란다.

내가 궁금한 건 정말 못 참는 성격인 걸 잘 알잖아요
그러니까 어서 대답을 해줘요 대체 왜 이렇게 예뻐요
이 세상 넘쳐나는 수많은 비밀 중 하나라도 알아내고 싶어요

좋아서 하는 밴드 <왜 그렇게 에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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