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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소
2019. 10.

<뎀젤>
감독:  데이빗 젤너, 나단 젤너

 

<Damsel> (2018)
Director: David Zellner, Nathan Zell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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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구해달라고 한 적 없는데요"
추천 코드

1. 서부 영화의 배경은 좋아하지만 내용은 싫다.

2. 여성이 수동적으로만 그려지는 영화는 딱 질색이다.

3. 고구마 같은 답답함을 박살낼 반전 영화를 좋아한다.

 

나는 자타가 공인하는 엄청난 ‘스타워즈’ 팬이지만 그런 나도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정말 좋아하지 않는 설정이 있어. 바로 <제다이의 귀환> 편에서의 레아 공주에 대한 설정이야. 여기서 레아 공주는 악당 자바 더 헛에게 잡혀 비키니 차림을 하고 무력하게 사슬에 묶여있기만 해. 이 설정으로 인해 레아 공주는 ‘비탄에 빠진 소녀(Damsel in Distress)’ 모티프의 전형적인 캐릭터로 자리 잡게 되었어. 뛰어난 리더쉽으로 이후 저항군의 총사령관이 되는데도 말이야.

 

‘비탄에 빠진 소녀’ 모티프는 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위험에 처해 있는 젊은 여성’을 말해. 어린 시절 보던 만화 속에서, 괴물에게 잡혀 무력하게 구출만을 기다리는 공주들도 바로 이 모티프에 해당하지. 결국은 갑자기 등장한 기사 또는 왕자에 의해 구해지고 사랑에 빠져 둘은 결혼을 하게 된다…. 이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그들의 결말이었어.

 

어렸을 땐 아무렇지 않게 즐겨보던 이런 만화나 영화들이 어느 시점부터는 전혀 즐겁게 느껴지지 않았어. “왜 맨날 여자는 구출을 기다리기만 해야 해?”

 

이런 모티프에 의문을 가진 건 나뿐만은 아니었어. 오늘 너희들에게 들려줄 영화, <뎀젤>의 감독인 데이빗 젤너는 ‘만약 구출을 기다리는 줄 알았던 여성이, 사실 전혀 구출을 원하지 않는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에서 착안하여 스토리를 만들게 되었대.

 

주인공인 새뮤얼(로버트 패틴슨)은 악당에게 납치된 연인 페넬로피(미아 와시코브스카)를 구해내고 그녀에게 청혼하겠다는 큰 꿈을 안고 여정을 시작해. 청혼 후 그 자리에서 결혼식도 치를 생각으로 식을 집행할 목사 헨리를 고용하기도 해. 두 사람은 마침내 페넬로피와 그녀를 납치한 범인 안톤이 살고 있는 집을 찾게 돼. 무방비 상태로 집 밖으로 나온 안톤. 새뮤얼의 총구가 안톤의 뒤통수를 겨냥하고, 이어지는 숨 막히는 정적. 그리고 한 발의 총성. 마침내 찾아온 정의 구현의 순간. 그러나 총성 이후로 모든 상황은 새뮤얼의 예상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말아.

흔히 서부 영화에서의 여성은 정복 혹은 구출의 대상으로 묘사되었어. 그게 아니더라도 기껏해야 개척의 야망을 가진 남성의 걸림돌 정도였지. 영화 <뎀젤>은 제목에서 시사하듯 이런 관습적인 모티프를 전복시키고 과거 서부 영화들이 고수해왔던 고루한 설정들을 완전히 뒤바꿈으로써 그동안 반감을 품던 관객들의 가려움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영화야.

 

특히 미아 와시코브스카가 열연한 주인공 페넬로피의 캐릭터는 이제까지 영화 속에서 수동적이고 제한적으로 그려지던 여성 캐릭터의 존재들에 대한 강력한 일격이라고 볼 수 있어. 주체적이고 능동적이며 행동하는 여성 캐릭터가 얼마나 귀한지 잘 알고 있는 너라면 아마 틀림없이 이 캐릭터에 빠져들 거라 확신해.

 

아주 간단한 생각의 전환. 당연히 나의 구원을 기다리는 줄 알았던, 연약한 소녀인줄 알았던 누군가가 사실은 구원의 대상이 아니었다면? 이런 단순한 생각의 전환에서 출발한 장면들이 이렇게 큰 웃음을 준다는 건 어쩌면 아직도 우리 사회가 잘못된 관념에 깊이 물들어 있다는 것 아닐까? 영화 곳곳에 숨어있는 풍자는 잘못된 생각들을 그저 전통이라 여기고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모습이 얼마나 어리석게 보일 수 있는지 잘 묘사하고 있어.

자, 그러니까 그들처럼 우스운 꼴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해. 나 좋을 대로 베푸는 지금의 호의가 누군가에게 폭력이 되지는 않을지. 묻고 또 물어야만 해. 비단 영화 속의 페넬로피 뿐 아니라 현실의 수많은 사람은 사실 누구의 도움도 구원도 필요로 하지 않는, 대상이 아닌 주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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