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독립영화外인이다
3막 <나는 독립영화外인이다>
2019. 11. 03
​진은영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나를 소개할 때면 언제나 영화를 함께 말하곤 했다. 영화에 빠져들었던 고등학생 때부터 대학, 꿈, 사랑 등 인생의 모든 순간이 한 편의 영화였다. 반은 사실이고 반은 상상이었다. 영화만큼이나 영화를 사랑하는 내 모습을 사랑했다. 사람들에게 영화인으로 기억되길 바랐다. 진로 고민을 하던 또래 사이에서 어떤 하나에 - 그것도 영화에 - 푹 빠진 이의 모습은 쉽게 매력이 될 수 있었다. 이렇다 할 특징이 없던 내게 영화는 정체성이 되었고 영화를 좋아하는 이미지에 대한 집착은 점점 강해졌다. 그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업계에 들어가야만 했다. 애니메이션 회사를 마지막으로 영화 일을 포기하기로 결심하던 날, 지난 10년의 시간이 통째로 사라진 것 같았다. 오랫동안 영화관에 가지 않았다. 각종 소셜 미디어에 올라오는 관련 소식들과 더 이상 관계없다는 생각이 들자 보기 힘들어졌다. 영화를 좋아해서 영화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던 바람이 그저 바람으로만 끝났다는 사실이 너무나 아팠다. 무엇보다 두려웠다. 영화가 빠진 진은영에게 더 이상 어떤 매력이 있을까. 이는 현실적인 문제와도 연결되었다. 곤두박질치는 자신감에 더해 영화 외의 길을 생각해본 적 없던 과거의 내 경험들은 모두 영화 분야에 치우쳐 있었다. 어떤 분야로 지원해도 어색해 보였다. 좋아하는 과목과 그렇지 않은 과목의 성적 차이가 심해 수시를 지원할 자격조차 되지 않던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했던 난 문과 전공이었음에도 그 흔한 토익 점수마저 없었다(외화를 다루는 회사에서 왠지 필요할 것 같아 영어 말하기 시험은 점수를 만들어 두었지만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토익 점수를 기본으로 요구한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새로운 진로를 찾아야 하는 이 순간, 나는 제로베이스가 아닌 마이너스베이스였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 걸까. 뭘 잘했더라. 뭘 좋아했더라. 내가 어떤 사람인지 소개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은영아, 시간 되면 여기 한 번 와 줄래?”

 자기 연민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어느 날 한 친구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함께 영화 대외활동을 하며 진로에 대한 고민을 종종 나눴던 친구였다. 활동이 끝난 후 자주 안부를 주고받지는 않았지만 건너 건너 ‘어느 영화사에 지원했다더라’, ‘결과가 어떻게 되었다더라’, ‘지금은 무얼 하고 있다더라’ 하는 소식을 듣곤 했었다. 영화 관련 활동을 하면서도 영화를 업으로 삼고자 하는 친구를 만나는 경우는 드물었기에 그 친구의 소식은 내게도 자극이 되었다. 재미있는 일을 하게 되었는데 그 시작을 알리는 행사에 함께하면 좋겠다는 친구의 말에 축하의 마음보다 두려움이 앞섰다. 멋진 영화인이 되어 모두의 부러움을 사는 친구의 모습이 그려졌다. 나는 아직 진심으로 축하해 줄 준비가 안 되었는데. 하지만 내게 이런 변화가 있는 동안 친구는 어떤 길을 가고 있었는지 호기심이 더 컸다. 복잡한 마음을 안고 참석한 그 자리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독립영화매거진 모션의 창간 행사였다.  생각보다 훨씬 더 뭉클한 시간이었다. 영화제가 인연이 되어 아쉽게 흩어지던 영화 이야기를 담아 보고자 모션을 시작했다는 개회사부터, 조심스러우면서도 설레는 표정으로 설명하는 네 사람의 모습까지. 가슴 한 켠이 먹먹해졌다. 그날 친구와 직접적으로 깊은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그동안의 시간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부러움인지, 부끄러움인지 모를 여운을 안은 채 며칠이 지났을까. 전화 한 통이 왔다. 모션의 편집장이었다. 개회사를 하던 그날처럼 담담한 말투로 글을 써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하던 그날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개인적으로 올렸던 글들을 본 친구가 행사에 나를 초대한 이유였다.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얼떨떨한 마음으로 하겠다고 했지만 개인 블로그 외에 공식적으로 발행되는 공간에 글을 써 본 적은 없었기에 모션이라는, 그것도 다른 이들이 다 차려놓은 상에 숟가락을 얹는 상황은 상당한 부담이었다. 게다가 난 이제 영화와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인데. 그런 내가 영화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자격은 되는 걸까. 오랜 고민 끝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보았던 2006년의 여름, 순수하게 사랑했던 영화들을 소개한다면 누군가에게 진심이 전해질 수 있지 않을까. 떨리는 마음으로 작품을 고르고 밤잠을 줄여가며 영혼을 쏟아부은 첫 번째 글이 모션 페이지에 게시되던 날, 나는 깨달았다. 왜 번번이 기대에 못 미치는 답변으로 영화사 면접에 탈락할 수밖에 없었는지, 어렵게 통과해 그토록 원했던 영화사에서 왜 그토록 답답해했는지. 내가 영화를 사랑하는 방식은 어떻게든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야 하는 홍보나 마케팅이 아니었다. 그 영화가 아무의 관심을 받지 않아도 전혀 상관이 없었다. 홀로 감상을 끄적이거나 하나의 작품을 수십 수백 번 곱씹은 끝에 얻게 된 기운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가장 행복한 사람. 나는 영화 일을 하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나는 지금 영화와 전혀 관계없는 일을 하고 있다. 영화계가 아니면 세상이 끝날 것 같았던 시간이 무색할 만큼 적성에 맞는 업을 찾아 심지어 만족스러운 회사 생활 중이다. 비교적 규칙적인 근무 시간 덕분에 평일 퇴근 후나 쉬는 날에는 모션 마감을 하거나 개인 블로그에 영화 글을 올리고 영화 팟캐스트를 만든다. 작년부터는 작은 꿈이었던 단편영화를 제작하기 시작해 어느덧 두 번째 영화의 막바지 편집을 앞두고 있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영화제에 놀러 가 방금 본 영화에 대해 신나게 찬양 또는 비판을 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영화사에 다니며 전혀 할 수 없었던 생활, 그렇게 두려워했던 ‘영화를 좋아하는 일반 관객’ 의 일상을 보내며 성취감과 때로는 해방감마저 만끽하고 있다. 언젠가 행사의 홍보 문구에서 영화와 밀접하게 관계된 이들을 애칭 삼아 ‘영화애(愛)인’이라 표현하는 것을 보고 그럼 난 이제 영화와 관련이 없으니 ‘영화외(外)인’ 이겠다며 자조한 적이 있었다. 영화인을 꿈꾸는 사람들은 매년 쏟아져 나오고 그만큼 포기하는 또는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생긴다. 어쩌면 영화인의 수보다 훨씬 많을, 그럼에도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그들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뜨겁게 갈망했지만 각자의 이유로 결국 영화인의 범주에 들어가지 못한, 그리고 경계의 어딘가에서 부유하고 있을 외(外)인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여전히 일했던 영화관을 지날 때면 가끔은 가슴이 욱신거려지는 영화외(外)인으로서 이 글을 쓰는 동안 더 이상 이 단어가 서글퍼지지 않길 바랐다. 내겐 작은 기적에 가까운 이 바람이 정말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지금, 조금 더 욕심을 내어 다른 기적을 바라고 싶어진다. 그저 평범한 취업 실패담에 불과할지도 모를 이 이야기가 어딘가에서 외로운 싸움 중일 영화외인들에게 가 닿을 수 있기를. 그래서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을 그 시기가 조금은 덜 외로울 수 있기를. 나는 독립영화외인입니다. 당신도 그런가요?

© 2023 by Andy Decker. Proudly created with WIX.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