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수족관

장건재 ​<잠 못 드는 밤>

천혜윤
“불안은 여름을 잠식하고”

 여름이고, 밤. 아직 매미 우는 소리가 한창일 때. 일을 마치고 지하철 계단 밖을 오르는데 남편 현수의 모습이 보인다. 그의 손에 우리의 날을 기념하는 파리바게트의 케이크가 들려있다. 그 밤 주희는 자전거를 잃어버렸지만, 현수와 나눈 와인 그리고 섹스로 하루가 뜨뜻이 마감될 수 있었다.

 

 그런 밤이 잦다. 요가강사인 주희와 공장직원인 현수에겐 풍요롭진 못해도 나름의 소박함과 여유가 깃든 날들이 있다. 오이국수나 된장국에서 서로를 칭찬해 줄 대목들을 찾아낼 수 있는 날들. 서로의 몸에 비누거품을 묻혀줄 때와 나란히 자전거에 오르는 밤길의 즐거움이 여전하다. 신혼 2년차의 부부라면 당연한 즐거움이다. 즐겁지 않다면 이제 문제가 되어버린다. 아직 뜨거운 여름이고, 밤이니까.

 

 신혼의 부부가 영화의 소재가 되는 일은 극히 드물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환상의 빛(1995)>에서 신혼의 즐거움을 다룬 장면은 초반 20분 정도에 불과하다. 부부의 서사는 지극한 권태 속에서, 혹은 상대방의 외도나 죽음과 같은 위기에서야 동력을 얻는다. 신혼 2년차, 즐거움이 가로등 빛처럼 인물을 비추는 날들에 스펙터클이 들어설 자리라곤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음’. 현수는 집에서 꽤 먼 거리의 직장을 다니고, 언젠가부터 주말의 잔업을 치르고 있으나 추가로 월급을 받을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주희의 어머니는 아기를 갖는 일에 대해 은근히 물어온다. 갈등의 단초가 될 만한 사건들이 서사의 공백을 메우고 있으나 그저 단초에 머무를 뿐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음’이란 옷깃에 매달린 아이처럼 끝없는 불안 속으로 우리를 안내하기 마련이다. 시간의 틈에 섞인 불안은 서서히 부부의 공간을 채운다. 그것은 비나 천둥이 내리기 전의 하늘처럼 평화로우면서 위태롭다. ‘더는 서로 사랑하지 않아서’ 이혼했다던 친구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있는 현수의 모습에서, 현수와 나란히 타던 자전거를 잃어버려 분통해하는 주희의 모습에서 우리는 너무 쉽게 불안의 징조를 발견해버리고 만다. 더 이상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날이 온다면. 그러나 사랑하지 않게 될까 두렵다는 말은 꺼내어질 수 없고, 상대방의 잠든 얼굴을 홀로 바라보는 장면만이 반복된다.


 결혼이라는 완고한 계약이 갖는 불안정함은 <잠 못 드는 밤>이 속한 배경이다. 언젠가 신혼의 사랑은 막을 내릴 것이고, 더 이상 서로의 존재만으로 일상은 풍요로운 곳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한 초조함은 무더운 여름밤과는 어울리지 않으므로 각자의 꿈속에서만 은밀히 피어난다. 꿈은 이 짧고 고요한 영화에서 인물들의 불안을 대리해주는 유일한 매개체다. 그러나 홍상수 감독의 어떤 영화들(<다른 나라에서>,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등)에서처럼 <잠 못 드는 밤>에서의 꿈이란 그 내용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혹은 어느 정도의 진실성을 안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내내 모호한 자세를 취한다. 그 때문에 꿈에서의 격렬한 대립과 상반되는 평화로운 현실의 일상은 마치 위장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간극의 격차를 극복할 수 있는 결론으로서, 주희는 아기를 갖는 일에 대해 언급한다. 자신의 꿈에서 남편의 무정한 모습을 목격한 그녀는 언젠가 현수가 변해갈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아기를 위해서라면 두 사람만의 시간이 사라지는 일은 각오할만한 것이라는 태도를 견지한다. 사랑이 떠나간 자리의 공백을 메워줄 존재. 현수는 아이가 생김으로서 생계가 크게 위협받을 것을 걱정하지만, 언젠가 이 최후의 과제를 받아들이고 말 것을 직감한다.

 

 여름이고, 밤. 영화는 함께 소파에 기대어있는 부부의 모습으로 이야기의 포문을 열었으나, 이제 주희는 남편의 곁에 있기 위해 황망히 아파트 밖을 나서야만 한다. 그곳엔 별똥별을 발견하길 고대하며 하늘을 올려다보는 현수가 있다. 그것이 다가올 축복인지 혹은 불길함의 예언인지 우리는 끝내 알 수 없다. 주희는 현수를, 현수는 하늘을 바라본다. 시선은 엇갈리고, 불안은 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이제 시작하려나 보다’, 멀찍이 별똥별의 반짝임을 목격한 듯 현수는 말한다. 이제, 정말 무엇이 시작되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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