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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미르>

감독 : 오멸

출연 : 류성록, 정환

글 : 유수진

주인이 묶어두고 간 자전거는 계절이 변해도 같은 자리에 세워져있다. 자전거는 주인이 오지 않으면 스스로 움직일 수 없다. 주인은 끝내 자전거에게로 오지 못한다. 그럼에도 묵묵히 기다리던 자전거는 같은 아픔을 가진 주인공과 함께 낯선 나라, '파미르'라는 별로 향한다. 그 별에 다녀오면 완전한 이별을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우리는 준비되지 않은 이별 앞에서 늘 현명하지 못하다.

 

오멸 감독의 <파미르>는 갑작스레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고 서툰 이별을 준비하는 과정을 담았다. 친구를 잃은 주인공은 불온전한 삶을 살아간다. 농담처럼 스쳐가는 말로 '파미르'에 가고 싶다던 주인공은 엄마의 말 한마디에 용기를 얻는다. 그 용기는 이별할 용기일지 모른다. 주인공은 친구가 보고 싶어 했던 풍경을 대신 보기 위해, 혹은 이별하기 위해 남겨둔 자전거와 함께 '파미르'로 떠난다. 하지만 이별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올라탄 자전거는 계속해서 주인공을 무너뜨리며 오히려 이별할 수 없게끔 한다.

 

이별은 놀랍게도 예고 없이 무뎌지곤 한다. 힘든 와중에도 깜빡 잠들어버릴 만큼, 가끔은 잊혀지면 잊혀지는 대로 살아가게끔 한다. 하지만 얕게 잠든 꿈에서 마주하는 이별의 상처는 우리를 깨우고, 스스로에게 다시 완전한 이별을 재촉한다. 현명해질 수 없다면 시간이 해결해줄 거라는 막연한 말을 믿으며 현재를 받아들여본다.

 

<파미르>에서 볼 수 있듯, 이 별에 필요한 것은 느린 기다림일지 모른다. 이번 기다림은 같은 자리에서 하염없이 기다리지 않는다. 아주 멀리서 오느라 조금 늦는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느리게 너에게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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