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歌
"의식주"
전고운 <소공녀>
오지은 <서울살이는>
유성현

오지은의 담담한 목소리가 어쩐지 더 슬프게 들리는, 방점을 ‘서울’ 아닌 ‘-살이’에 찍어도 무방한 노래. 어느 때라고 쉬웠을까 싶어도, 어느 곳이든 살기가 어려운 건 노래가 나온 지 5년이나 지났어도 여전하다. 단지 사는 것뿐인데 이다지도. 그게 뭐라고.

서울살이는 조금은 외로워서

친구가 많이 생기면 좋겠다 하지만

서울사람들은 조금은 어려워서

어디까지 다가가야 할지 몰라

 

이 넋두리 같은 혼잣말에 심심하고 재미없는 대꾸로 ‘의식주’衣食住라는 단어를 꺼내어 든다. 인간 생활의 세 가지 기본 요소라고, 가히 없으면 안 되는 것이라고 배우는 그 세 가지 말이다. 그런데 <소공녀>의 주인공 ‘미소’가 위스키 한 잔, 담배 한 갑과 저울질한 끝에 포기하는 게 다름 아닌 의식주에서도 가장 무거운 ‘집’이다.

그렇게 생활의 기본 요소 중 하나를 호기롭게 버린 그녀의 선택이란 대학교 시절의 밴드 동아리 친구들의 집을 전전하는 것. 돌아올 곳이 사라져 언제 끝날지 모를 이 시간을 그녀의 표현을 빌려 여행이라고 하는 건 다소 낭만적인 포장이다. 차라리 울컥한 그녀 친구의 말마따나 염치없는 자기만족에 가까울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영화는 많지 않은 그 네댓 명 남짓한 친구들의 집을, 계란 한 판을 들고 딱히 어려워하는 기색도 없이 산뜻한 미소로 다가가는 미소에 대해 구구절절 변명하지 않는다. 대신 불편할 수도 있는 그녀의 방문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굳이 설명하지 않음으로 친구들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자연스레 미소 자신의 됨됨이까지 설득하려 한다. 어디까지 다가가야 할지 아는 이 인물은 적어도 그만큼은 다가가도 될 만한 삶을 살아왔을 거라고.

 

서울살이는 조금은 힘들어서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앞에

앉은 사람 쳐다보다가도

저 사람의 오늘의 땀

내 것보다도 짠맛일지 몰라

이렇듯 영화 내 어떤 인물보다도 단연 돋보이는 그녀의 존재감은 <소공녀>의 가장 사랑스러운 미덕이자 불가피한 한계이기도 하다. 오랜 남자친구 ‘한솔’을 비롯한 동아리 친구들은 빛나는 그녀에게 가려져 상대적으로 흐릿한 인상으로 남기 때문이다. 미소와 보낸 짧은 시간이 저마다의 삐거덕거리는 일상에 유의미한 반전과 성장을 이루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분명 없지 않다. 그럼에도 오래된 빌라, 아파트, 고급 주택과 오피스텔 등 미소의 여정을 담담히 따라가는 영화는 끝내 극적인 감동을 전시하지 않는다. 마치 살 곳이 ‘있는’ 친구들과 살 곳이 ‘없는’ 미소 사이 누구의 땀이 더 짜다고, 함부로 인물의 행불행에 등급을 매기지는 않겠다는 듯. 이 시선으로 따라가기에 <소공녀>는 오롯이 미소 한 사람에 집중하면서도 잠시 곁눈질한 일상의 단면들에도 고개 끄덕일 수 있게 한다.

 

광화문 계단 위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 바라보면

사람들 수만큼의 우주가

떠다니고 있네 이 작은 도시에

 

이는 ‘미소 서식 환경’이라는 뜻의 영어제목 ‘Microhabitat’를 통해 더욱 명확해지는 사실이다. 소리 없는 웃음微笑이 매력적인 주인공 개인을 넘어서 작고 연약한微小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뜻이다. 치열하지 않은 삶이 없는 이 도시에서, 영화의 끝자락 어느 작은 텐트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은 그야말로 밤하늘 멀리 있는 별빛과도 같다. 그리고 그 별에서 생활하기 위한 필수요소란 자신에게 무엇이 소중한지를 잊지 않는 단 하나의 의식意識과 한 잔의 술酒인 셈이다. 당장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위태롭게 보이는 어떤 서울살이는 따뜻하게 반짝이는 중이다. 

결국엔 어려워서 다시 울게 될지언정 그래도 ‘웃겠지’로 끝나는 작은 노랫말 하나로도 위로받는다는 건, 어쩌면 우리가 작은 존재라서 일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는 종종 즐거울 날에 지어 보일 미소만 잃지 않으면 된다.

 

서울살이는 조금은 즐거워서

가끔은 작은 행복에 시름을 잊지만

서울살이는 결국엔 어려워서

계속 이렇게 울다가 웃겠지

계속 이렇게 울다가 웃겠지

오지은 <서울살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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