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수족관

조현훈 ​<꿈의 제인>

천혜윤
“환각과 속삭임의 편지”

 그의 편지는 어디로 수신되고 있을까. 누가 그의 말들을 기다리고 있을까. 상대의 안부를 물은 후 그는 조심스레 자신의 안부를 덧댄다. 나 잘 지내고 있어요. 그리 궁금한 일은 아니겠지만.
 

 그러나 머지않아 소현의 편지가 누구에게도 닿지 않을 것을 알았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영롱히 화면 속을 헤매는 미러볼의 불빛은 <꿈의 제인>을 환각과 속삭임의 영화라 일러둔다. 속삭이는 소현은 눈을 감은 채로 물체를 더듬는 사람처럼 무지하고 외롭다. 누구도 그의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아서 그는 입을 열지 않고, 최초로 관계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순간은 하필 시기적절하지 않아 바로 차단당한다. ‘네 얘기 하지 말고, 지수 어디 있는데?’

 

 수신인은 없으나 청자는 필요한 연약함. 더는 의지할 선의가 남아있지 않은 소현은, 스스로의 기억을 거스르는 것으로 마지막의 성냥불을 지핀다. 뉴월드의 ‘제인’은 지금의 소현이 그러하듯 한때 거짓말에 능했고, 청중 앞에 자신의 언어를 노래하는 디바다. 
 

 느닷없이 많은 말을 하고, 침묵을 견디지 못해 소현에 휘파람을 부탁하는 제인, 어둠 속에 홀로 작아서 처연히 반짝이는 물체들을 사랑하는 제인. 그는 가출팸의 ‘엄마’이고 소현의 디바이지만, (소현의 편지 수신인으로서의 가능성이 가장 유력한)인물 ‘정호’와의 애착을 나눌 수 있는 하나 뿐인 연적이기도 하다. 정호라는 공통의 상흔을 앓는 두 여성의 우주에는 수평적인 연대의 가능성이 깃들어있다. 여기서 상대를 위무하는 주체는 아이러니하게도 소현이다. 정호 이후로 타인과 소통 불가능의 상태로 전락하게 된 소현의 내부는, 제인의 죽음을 빌어 구현된다. 그녀의 사인(死因)은 상사병이다. 

 

 꿈이란 조건 상태는 인과성을 제거하고 소망의 충족을 욕구하도록 설계된다. 영화의 제목 <꿈의 제인>은 소현의 분열로서의 제인이 실재하는 대상(으로서의 제인)과 얼마나 일치하는가의 문제를 부러 매듭짓지 않으려는 창작자의 변명이자 의지이다. 이미지와 정서는 남기되 인과의 고리는 지우는 꿈의 작용처럼, 제인의 온기어린 아우라는 이야기의 필연성보다 압도적이다. 
 

 영화 1부에 해당한다고 해도 무방할, ‘제인팸’의 서사는 그러한 아우라의 향연이다. 케이크를 나누어먹는 장면에서 제인팸을 비추는 햇살은 이들이 조각낸 케이크의 빛깔보다 눈부시고, 햇볕이 거두어진 밤에는 미러볼의 불빛이 이를 대신한다. 의아한 것은 제인팸에 소속된 아이들의 모습이다. 이들은 ‘가출 청소년’의 수식이 미치는 이미지가 무색하게 서로에 우호적인 대안가족이다. 기이할 정도의 평화로움이 지배하는 이곳에서, 네 명의 아이들은 상호 간 대화를 전달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는 듯 보인다. 
 

 말하자면 제인의 세계에는 ‘침범’의 흔적이 도려내어져 있다. 소현은 소통 불가의 상태가 타자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안간힘임을 안다. 이는 ‘병욱팸’으로 은유되는 현실 세계의 질서로부터 거스르려는 그만의 반작용이다. 가장 일반적인 한국 독립영화의 색감으로 드리워진 병욱팸 시퀀스는, 타자에 대한 침범으로 스스로의 권위를 유지하는 ‘아빠(들)’의 세계에의 오마주다. 또래 집단으로서는 이질적인 ‘아빠’의 호칭을 한 병욱은, 무관심이나 무질서보다 해로운 것은 집단의 규율에 설복되지 않는 개인이라고 믿는다. 
 

 이는 개인의 논리로 그치지 않고, 병욱의 규율에 반기를 드는 인물로 대표되는 ‘대포’ 그리고 ‘쫑구’가 소현과 대면하는 대목에서 재현된다. 영화의 서스펜스가 극대화되는 지점인 터널 시퀀스에서, 겨누어지는 대상은 악인이 아니라 집단적으로 자행된 폭력에 양껏 저항치 않은 개인이다. 소년들은 지수에 대한 ‘그들의 윤리’를 바로세우기 위해, 소현을 처벌이나 반성의 대상으로 여기지만, 한없이 소현의 내부 안으로 침잠하기로 선택한 <꿈의 제인>의 형식은 그 자체로 그를 위한 알리바이가 되어준다.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그의 부덕함이나 방관이 아니라 무력함에 가깝다. 회피하거나 저항하거나, 현실의 질서를 극복하려는 개개의 몸짓들을 무용하게 만드는 세계에서, 영화는 종종 무력하고 나약할 누군가에게서 빛을 쫓을 수 있다고 믿는다. <꿈의 제인>의 윤리는 가장 작고 협소한, 나약한 곳에서 핀다.

 

 뉴월드는 불행을 웃음으로 흘리고 춤으로 나누는 사람들의 공간이다. 서로가 불행하다는 사실이 더 이상 비밀스럽지 않은 곳. 존재하는 것보다 존재하지 않는 것이 진실하다고 믿는 ‘거짓말’하는 사람들의 집합이다. 이곳에서 지수는 제인의 곁에서 달을 바라볼 수 있고, 아이들은 여전히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 나는 제인과 정호가 존재하지 않는 소현의 엔딩에서 빛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할지 모른다. 누군가 그곳에 부재하다는 것은, 기억의 형태로 그의 곁에 영원히 존재하기에 보다 완전히 관계하는 일이라고. 아니, 이건 거짓말인 것 같다. 나는 계속해서 제인이 다시 등장하기를 고대했었다. 마침내 버스에서 내리는 제인의 얼굴을 발견했을 때, 너무나 안도한 나머지 조금 울었다. 제인이 가상의 존재에 그치지 않아서, 사라지지 않아서, 불행하되 끝끝내 살아있어서 다행이라고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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