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歌
"취중진담"
장건재 <한여름의 판타지아>
이영훈 <일종의 고백>
유성현

다소 사적인 오독에 대한, 일종의 고백인 이 글은 “오늘처럼 한국 분이 오셔서 안내해드린 적이 있어요.”와 “남자친구로 어때요?”라는 한 사람의 두 고백에서 비롯한다.

사랑은 언제나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고
또 마음은 말처럼 늘
쉽지 않았던 시절

 

그리고 이를 결심하게 만든 노래는 2015년 2월에 발매한 이영훈의 2집 [내가 부른 그림]의 타이틀곡이다. 선곡이 내게 뜻밖이었던 이유는 6월에 개봉한 <한여름의 판타지아>와 같은 해라는 접점보다도 도리어 2월과 6월 사이의 간극 때문이었다. 노래가 부르는 포근한 겨울 그림과 영화가 담아낸 고즈넉한 여름 풍경에서 전해지는 온도차. 같지는 않은데 아주 다르지만은 않아서 미묘했다. 반면 노래와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직접 겪은 2018년 7월은 미묘함과는 거리가 멀고, 그 어떤 강조와 수식을 앞뒤로 더해도 어색하지 않을 더위로 뚜렷하게 기억될 계절이었다. 생각해보면 연이은 기록적인 폭염 속 우연이라도 따뜻하게 겨울을 달래는 노래를 들은 것부터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상반된 두 계절의 심상을 비슷하게 떠올린 까닭은 펄펄 끓는 현실에서 더위라도 먹은 탓, 아니 그보다는 살짝 나른한 표현이라면 좋겠다.

나는 가끔씩
이를테면 계절 같은 것에 취해
나를 속이며 순간의 진심 같은 말로
사랑한다고 널 사랑한다고
나는 너를

이를테면 ‘계절 같은 것에 취해‘라든지. 당연히 이 특정한 계절에 오르는 취기는 나만의 것이 아니다. 함께한 시간이 길지 않았고 주고받은 말은 더 짧았음에도 ’벚꽃우물‘의 유스케와 혜정의 거리가 더없이 친밀하게 느껴졌던 건 분명 그들이 함께 취해가는 듯 보여서다. 선량하게 취한 사람들이란 ’나‘에게는 속을지언정 ’너‘에게만큼은 진실하고자 하는 법. 그렇게 “남자친구로 어때요?”는 술을 너무 많이 마신 몸이 아니라 여름에 무방비로 노출된 마음에서 나온 말이다. 순진하게 입 밖을 나선 순간의 진심이란 딱 그만큼 성급하고 서툴러서 으레 실패하기 마련이나.

이렇듯 하나의 고백으로 수렴하는 게 2부라면, 1부 ‘첫사랑, 요시코’는 새 영화를 찍기 위해 고조시를 찾은 태훈이 만난 사람들의 여러 고백을 수집하는 이야기다. 여름 안에서 그가 접한 다양한 사연 가운데 무엇보다 내게 각별했던 것은 “오늘처럼 한국 분이 오셔서 안내해드린 적이 있어요.”라는 유스케의 고백이었다. 불분명한 경계로 교차되는 꿈과 현실, 흑백 화면에서도 여전히 도수가 높은 계절에서 어쩌면 홀렸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또 어떤 날에는
누구라도 상관없으니
나를 좀 안아 줬으면
다 사라져 버릴 말이라도
사랑한다고 널 사랑한다고
서로 다른 마음은 어디로든 다시 흘러갈테니

결국 나의 사적인 오독이란, 진작 ‘한 사람’의 ‘두 고백’이라는 첫 문장에서 드러냈듯 1부와 2부의 유스케를 동일한 인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2부가 유스케의 과거라는 가설은 태훈의 영화라는 정설에 비하면 여러모로 억지스러운 부분이 많다. 결정적인 근거라고 해봤자 겨우 표정 하나, 미정을 닮은 사람과의 로맨스를 묻는 질문에 “그런 일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요.”라는 유스케의 대답 직전 스친 찰나의 표정 하나 뿐이므로. 다만 이런 해석이라면 색채를 잃은 현실에서도 바래지 않은 색으로 기억되고 있는 애틋한 추억과 함께, 또한 그것을 남몰래 간직하고 있는 퍽 부러운 인물을 그릴 수 있었다. 해석보다는 차라리 바람에 가까운 상상, 이토록 정확히 잘못 읽게 만드는 원동력이란, 취한 사람만이 가능한 고집과 객기 덕분은 아닐지. 문득 한여름 밤의 포옹을 떠올린다. 누구라도 상관없다는 말의 이면을 오해하지 않았을 그들은 함께 있지는 않아도, 또 아주 멀리 있는 것은 아니다. 마치 2015년의 2월과 6월처럼.

마음은 말처럼 늘
쉽지 않았던 시절

같은 하늘을 올려다보게 만드는 밤하늘의 불꽃들은 금세 피고 지겠지만, 왠지 혼자 이 오독에 취해 있어도 외롭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이 역시 일종의 고백이다.

이영훈 <일종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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