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적(‘短編’的)
이옥섭, 구교환
<FLY TO THE SKY>
이채현
​이것은 아직 끝난 이야기가 아니다

 연말에는 연초의 마음을 떠올리며 낯 뜨거워지곤 한다. 언젠가는 새것이었을 다이어리에 적힌 목표는 이제야 터무니없고, 여전히 새해 첫 일출을 보는 사람들의 표정을 하고 있어 낯설다. 내가 몰라서 기대했던 시간을 지금의 나는 알고 있다. 처음을 돌아본다는 건 그래서 조금 쓸쓸하다.

 교환은 가죽공예를 하겠다고 이탈리아에 다녀온 형 성환을 마중 나간다. 이태리 말 좀 해보라고 들뜬 교환에게 성환은 낯선 나라의 언어로 중얼거린다. “나는 가죽공예가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니, 가죽공예를 하기엔 재능이 턱없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나는 공부한답시고 이태리까지 가서 포기하고 돌아온 병신입니다.” 떠날 때의 마음과 돌아온 마음의 거리가 한국과 이태리보다도 멀다. 언젠가 성환이 교환의 생일선물로 만들어주었던 가죽지갑에는 건설기계조종사 면허증이 들어있다. 성환의 가죽도 교환의 영화도 옛일이 되었다.

 가죽 대신 자격증을 따려는 성환의 운전연습을 교환이 돕기로 한다. 브레이크는 부드럽게 밟아야 한다고 조언하는 교환 옆에서 확확 브레이크를 밟는 성환은 되레 멈출 자신이 없어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원래도 막 흔들리고 불안했던’ 육교가 사라진 노량진에서 성환은 “원래 육교는 좀 흔들려야 한다.”고 답하고, 영화는 취미로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교환의 말에 “너는 진짜 좋아하는 걸 취미로 막 주말에 하냐?”고 되묻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적성에 맞지 않고 재능이 턱없이 부족해서 돌아온 병신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성환은 그렇게 말한다. 흔들리고 불안하면서도 자꾸 첫 마음을 잊어버릴 수가 없다. 이번에는 다를 것 같고,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처음의 마음에 속아 넘어가는 이유는 매번 같다. 어찌 됐든 원하기 때문이다. 처음의 마음이 원하는 걸, 언제나 원하고 있다.

 성환이 굴삭기 면허를 따는 동안 연락이 닿지 않던 교환은 연출부로 ‘잠깐’ 베를린에 있다는 소식을 전한다. 성환의 굴삭기가 순간 멈춘다. 어쩐지 얄미운 마음이 드는 건 사실 그를 미워할 이유가 없는 데에서 온다. 단지 ‘잠깐’ 떠올랐을 뿐이다. 잊어버리려 했던 처음의 마음이. 그렇다고 성환이 앞으로 계속 굴삭기를 몰지, 교환이 다시 영화를 할지는 성환과 교환조차 모른다. 다만 낯부끄럽고 쓸쓸하고, 가끔은 끔찍해도 종종 처음의 마음을 마주했으면 좋겠다. 영화든 가죽이든, 굴삭기나 거중기여도 상관없다. 처음의 마음을 돌아보는 건 다시 처음이 될 수 있는 일, 그러니까 미래에 대한 호의를 놓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해가 갈수록 기대와 희망을 접는 요령만 늘지만 미래에 대한 호의가 있는 한, 그건 끝이 아니라 다시 처음이다.

 “꿈이 바뀐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 부끄러운 건 꿈이 없어진 것이고, 더 부끄러운 건 꿈을 핑계로 삶을 망가뜨리는 것이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말을 성환은 가만히 듣고 있다. 성환의 꿈은 바뀌지도 사라지지도 않았다. 망가뜨리지 않기 위해, 어떤 마음을 부단히 먹고 있는 성환이 스스로를 별 볼 일 없고 시시하게 느끼는 건 하나도 부끄럽지 않다. 왜냐하면 끝은 그렇게 나는 법이 없고, 처음의 마음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의 내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누가 뭐래도 흔들리지 않을 자신은 아직도 없고, 마음 가는 대로 하라는 그 마음이 뭔지는 영영 모르겠지만 부러지지도 멈추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그건 끝이 아니다.

<플라이 투 더 스카이> https://youtu.be/7y-eps3O-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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