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歌
"거인국"
김태용 <거인>
장희원 <어른이 된다는 건>
유성현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국어사전의 첫 번째 정의에 밑줄을 그으며 ‘과연 그렇군’ 새삼 수긍하기 전부터도 어른이 되었다는 실감은 좀처럼 없었다. 손발은 더 이상 자라지 않았고, (간혹) 삼촌 아닌 아저씨라 불려도 이제는 속상하지 않았다. 어느새 나이만 제법 먹어 더부룩한 포만감만 들었을 뿐이다. 여전히 누군가에게 무의식적으로 어리광을 부리고 있는 건 아닐까 반성했고, 앞으로 언제까지 어른이라는 확신도 없이 살게 될까 불안했다. 그러다 접한 故 황현산 선생의 한 마디는 짧은 문장의 길이에 비할 바 없이 긴 위안으로 남겨졌다. “내가 살면서 제일 황당한 것은 어른이 되었다는 느낌을 가진 적이 없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어른이 된다는 건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손발이 자라나는 것과는 다른

생각이 커지는 건

머리카락이 자라나는 것과는 다른

 

사실 ‘아픈만큼 성숙한다’는 말이나 ‘성장통’이라는 단어와 자연스레 결부될 수밖에 없는, ‘거인’이란 타이틀이 암시하는 이야기는 시놉시스조차 읽지 않고 그저 상상만으로도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 막연한 심증에 더해 ‘사는 게 숨이 차요’라는 카피와 가라앉고(혹은 떨어지고) 있는 듯한 포스터 속 소년은 확실한 물증. 한 인물을 궁지에 몰아넣는, 무겁고 가혹하기만한 서사에 누적되던 사적인 피로감은 충분한 증거들의 마침표가 되었다. 그런 이유로 단호히 눈을 피하고 있던 영화가 <거인>이었는데, 한 노래에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바로 장희원의 ‘어른이 된다는 건’. 차분한 멜로디, 담담하게 읊조리는 목소리에 신기하게도 소년의 슬픔을 외면하지 않을 작은 용기가 생겼다.

그렇게 만난 ‘영재’(최우식)는 뜻밖에도 오랜 시간 대면하기를 피하면서 막연히 상상해오던 이미지와 자못 달랐다. 마냥 무력하기만할 거라 생각했던 소년은 의지할 데 없는 위태로운 삶 속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고 씩씩하게 버티고 있었다. 그게 가끔 대견했고, 자주 안쓰러웠다. 그럼에도 전적으로 응원하고 싶은 기분은 들지 않았다. 영재가 저지르는 일련의 비행이 바르고 선하기만 해서는 다다르기 막막한 절박함에 대한 반증이라고 머리로는 이해해도, 감추지 못하는 이기적인 비겁함이 못내 불편하고 실망스러웠기 때문이다. 자기밖에 모르는 무책임한 어른들에게 상처입고 분노하는 소년이 비슷한 모양으로 비뚤어지고 있는 걸 지켜보기는 힘들었다.

온통 하지 말아야 할 것들

울음을 참아내는 순간들

표현하지 못하는 것들

울음을 참아내는 순간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보기 힘든 건 타인의 고통을 ‘성장통’이라 쉽게 진단하고 돌아서려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너만 아픈 게 아니라며, 아프지 않은 사람은 없다며. 영재의 입장에서는 나 또한 “학창시절에 너 같은 그런 상처 없는 사람들이 어딨냐?”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교사나 “어딜 가던 네가 제일 불쌍하다는 생각은 하지마”라고 훈계하는 시설의 보호자와 별반 다르지 않은 셈이다. 소년을 따라가며 더 가까이서 지켜봤음에도 같은 편이 되어주지 않으려는 내가 영화 속 그들보다 훨씬 나쁜 사람이었다. 그러니 더 못난 어른이 되기 전에, 영재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지 않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보호시설에서 나와 스스로 뛰쳐나온 집으로 돌아가야 할 나이가 된 소년은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을까, 아직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걸까. 알 수 없었다. 돌아가고 싶지 않은 그곳이 사라질까봐 염려하는 마음은 또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진짜 바라는 일이 무엇인지는-나도, 영재도-알지 못한 채 다만 소년은 종종 울음을 참아내는 데 실패했다.

그런 그 앞에 아이처럼 울먹이는 동생이 서있다. “얼른 커서 돈 많이 벌어서 형이랑 나랑 둘이 살자”는 더 어린 소년의 말이 아득하게만 들린다. 기약 없는 이별을 간신히 삼킨 영재는 끝내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웃으며 다독이는 형의 모습은 짐짓 어른스럽다. 아니, 어른스러워 보여야하는데 돌아선 얼굴은 도리어 앳되기만 했다. 아파서 울던 소년은 이제 아파도 울지 않게 되었다. 다시 작아질 리 없는 거인의 옆 얼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프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명제를 부정하기 어려운 세상.

 

쌓이고 쌓여 자라는 거라면

나는 다시 작아지고 싶다

그렇게 어른이 되는 거라면

나는 다시 커다란 품에 안겨

울고 싶다

주위를 둘러본다. 얼마나 아픈 순간들이 쌓이고 쌓여 그만큼 자랐는지 모를 사람들. 살짝 안도하게 되는 이유라면 역시, 울고 싶은 거인에게 품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은 또다른 거인일 수밖에 없기 때문일까. 다행히도 어른이 된다는 건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기에.

장희원 <어른이 된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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