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시네마

애프터 시네마 : 뒤늦게 깨달은 그 장면, 대사의 의미. 영화를 빌어 전하는 자아성찰문 또는 고백서.

<미쓰 마마>, 손경화

진은영

현진은 여느 20대와 다름이 없다. 꾸미는 데 관심 많고 열심히 구직 준비를 하며, 운명 같은 사랑을 꿈꾼다. 시력을 체크할 뿐인 안경점 직원에게 두근거리고 수시로 이성 친구의 마음을 떠보기도 하며 언제든 사랑할 준비가 된 ‘금사빠’ 이기는 하지만, 뭐 어떤가. 자유로운 연애는 청춘의 특권이 아니던가. 하지만 다음 장면에서 관객의 시선은 묘해 진다. 그는 두 살 배기 사랑스러운 태희를 둔 미혼모다. 미혼모의 연애. 전혀 문제될 것 없는 이 말이 어쩐지 낯설다. 그 때의 내가 그랬다.

올해 초 한국사회를 달구었던 ‘배드 파더스’ 사이트는 법의 사각지대에서 고통 받아 온 미혼모들이 이제는 정말 벼랑 끝까지 몰렸음을 가감없이 보여주었다. 최근 공중파의 한 드라마에서는 양육비를 흥청망청 사용하는 미혼모 캐릭터를 등장시켜 아동학대와 직결되는 양육비 문제를 어처구니없이 조롱하는 연출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미혼모에 대해 여전히 처참한 수준의 제도와 인식을 드러낸 일련의 사건들을 보며 백연아 감독의 다큐멘터리 ‘미쓰마마 (Bittersweet Joke), 2012’ 가 떠올랐다. 8년 전 개봉한 이 작품은 각기 다른 연령과 상황에 놓인 미혼모들을 통해 그 동안 사회적 편견에 가리워진 진짜 그들의 삶과 생각을 보여준다. 20대 초반이었던 내가 처음 미혼모라는 단어를 접한 것은 ‘베이비 박스’를 다룬 뉴스에서 였다. 어느 교회에서 부득이한 사정으로 버려지는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한 베이비 박스에는 한 줌도 안 되는 연분홍색 담요와 함께 문장 하나가 적혀 있었다. “미혼모 아기를 유기하거나 버리지 말고 여기에 넣어 주세요.” 이를 시작으로 미혼모는 아이를 버릴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자리잡기 시작했고 아빠 몫까지 수행 하는 헌신적인 엄마인 동시에 미혼 여성으로서의 자유나 권리는 박탈된 엄격한 이중 잣대가 드리워졌다. 부끄럽게도 선입견에서 자유롭지 못 했던 나 역시 현진에게 자격이란 이름의 멍에를 씌우고 있었다. 극 초반의 세 가지 뉴스 보도는 미혼모에 대한 사회의 잔인한 시선을 그대로 보여 준다.  100만원이 채 안 되는 미혼모의 월 평균 소득, 그럼에도 아이의 행복을 책임지기로 결심한 엄마 (그마저도 딸과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요청은 무시된다), 결국 궁지에 몰려 아이를 포기하는 무책임한 여자. 무능하다고 비난 받고 가십거리로 소비된 뒤 끝내 무책임한 사람으로 낙인 찍히는 미혼모 사이클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지영은 말한다. “미혼모가 자꾸 나와야 된다는 생각이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계속 엄마들은 숨어 있고. … (중략) … 시사 프로그램에 내보내야 한다면 모자이크 좀 하지 말고. 내가 죄 지은 게 아니니까.” 단순하지만 명확했다. 우리는 늘 그들에 대해 이야기 했지만 한 번도 그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궁금해 하지도 않았다.

졸업 후 활동 반경이 확대될수록 기혼 여성, 출산한 여성들을 만날 기회가 늘어 났다. 결혼까지는 어찌어찌 버티던 여성들도 출산 이후엔 90퍼센트의 확률로 퇴사를 결심하곤 했다. 한창 커리어의 정점을 찍을 시기의 경력 단절만으로도 가슴이 턱 막히는데 그보다 당장의 부담은 줄어든 수입이다. 같은 상황에서 미혼모가 감당해야 할 경제적, 심리적 고통은 어떨까. 지원 수당은 턱없이 부족하고 그마저도 일시적이다. 취업 준비와 육아로 좋아하는 음악 한 곡 들을 시간 조차 없는 현진은 양육비가 절실하다. 유학 준비로 양육비를 주기 어렵다는 태희 아빠의 전화를 받던 날 언제나 낙천적이고 웃음 많던 현진이 처음으로 눈물 범벅이 되어 소리를 질렀다. 하고 싶은 공부 할 수 있어서 좋겠다고, 그러지 못 하는 태희가 불쌍하다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우는 아이를 안은 채 다시 책을 펴는 그에게 어떤 이가 책임감을 물을 수 있을까. 무능력하다는 비난의 화살이 향해야 할 곳은 매일 육아일기를 쓰며 몸보다 더 큰 장난감을 안고 거리를 질주하는 현진이 아닌 책임을 회피한 것도 모자라 최소한의 의무조차 지키지 않은 남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미혼모의 권리 신장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며 누구보다 당당히 6살 준서를 키우는 형숙은 대부분의 경우 계층과 지위를 막론하고 남자가 책임을 지지 않으려 했다고 말한다.  “정말 사랑했다면 함께 하지 않았을까요?” 젊은 남자의 우문에 8년 전 관객과의 대화에서 나온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무책임한 행동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교육도 중요하지 않나요?” 극중 형숙과 질문을 받은 감독의 대답은 간결했다. “왜 미혼모가 되었는지, 서로 얼마나 사랑했는 지보다 더 중요한 건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책임 지기로 한 엄마와 아이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가 아닐까요.”  어린 나이임에도 이해심이 깊은 준서이지만 사회적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언젠가 상처받는 날이 올 것이다. 형숙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혼자 모든 사람들의 생각을 바꿀 수는 없다. 그러니까 이것은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우리부터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받아 들이고 내 주위의 아이와 미혼모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국가는 존재하지도 않는 미래의 아이를 위한 출산 장려 운동 대신 현재 고통 받고 있는 아이를 위한 실질적인 제도 및 의식 개선 운동에 지금이라도 힘 써야 한다. 엄마가 혹여 라도 아이에게 비난이 향하지 않을까 가슴 졸이는 대신 자신과 일에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이는 자연히 안정된 육아로 이어질 수 있고 엄마의 건강한 마음이야말로 아이의 행복을 보장할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첫 걸음이 될 것이다.

 

엔딩 크레딧 위로 영화 초반의 한껏 들떠 까르르 웃던 현진과 지영, 형숙을 비롯한 여성들이 자꾸만 떠올랐다. 대상화된 존재로서의 미혼모가 아닌 자신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며 찾아온 제작진이 신기한 듯 눈을 반짝였다. ‘결혼에 이르지 못한’ 이라는 뜻의 ‘미혼’ 대신 결혼을 하지 않기로  선택했다는 뜻의 ‘비혼’모로 바꿔야 한다는 지영의 말처럼 목소리와 얼굴을 되찾은 그들은 밝고 당당하고 누구보다 솔직했다. 현실적인 문제를 고민하고 새로운 만남에 설레기도 하는 평범한 친구이자 동생, 언니였다. 영화는 사회적 편견과 미디어를 비판 없이 받아들이던 내가 보려 하지 않았던 현실을 마주하게 해주었다. 밀려오는 부끄러움 만큼이나 지금까지 세상을 견디어 온 이 땅의 모든 ‘미쓰 마마들’에 대한 고마움과 존경심을 영화를 빌어 뒤늦게나마 전하고 싶었다. 잘못된 생각을 지녔던 과거도 나의 일부였음을 받아들이며 고해성사 하는 심정으로 시작한 글이 아직까지 사회에 만연한 편견을 깨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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