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포럼2020

유성현

게임에 대한 애정이나 관심 혹은 MMORPG에 대한 추억이나 경험, 나아가 ‘일랜시아’의 계정 유무가 <내언니전지현과 나>의 감상에 얼마큼의 영향을 미칠지 ‘일랜시아 계정 없음’에만 해당할 본인으로서는 알 수 없다. 오랜 시간을 쏟은 특정 게임을 향한 사적인 고백이나 객관적 분석에 그쳤다면 일정 부분은 반감됐을 테지만, <내언니전지현과 나>의 71분은 향수를 자극하는 아기자기한 도트 그래픽만으로 채워져있지 않다. 이를 설명하기에 ‘국내 최초로 기업/방송사가 아닌 유저가 제작한 게임 다큐멘터리’라는 딱딱한 수식어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차라리 “경험치는 쌓여가는데 레벨은 안 오르는 재미없는 세상에서 재미있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자 합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감독이, 16년간 즐겨온 게임을 가지고 “잘하는 것으로 가장 좋아하는 걸 찍고 싶었다”라며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면 모를까. 그런 진심이라면 누구에게나 오롯이 전해지리라 기대할만하지 않을까.

영화는 ‘왜 일랜시아를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왜 일랜시아를 끊지 못하는가?’와는 결이 다르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질문이 추구하는 게 제3자의 시선으로 보는 중독에 대한 해방이나 치유가 아니라 당사자 자신과 주변을 향한 애정과 이해에 닿아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뭉클함과는 별개로 감독 주변의 유저 인터뷰로부터 돌아오는 대답은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특징? 재미없는 게 특징이에요.”, “이건 족쇄야.” 일부 유저들의 소감에 그치는 게 아니다. 1999년 정식 서비스를 시작하고 2008년이 마지막인 콘텐츠 업데이트, 단순 패치조차 2014년 이후 멈춘 일랜시아의 현재는 ‘넥슨의 클래식 RPG’라는 영광보다는 ‘버린 게임’, ‘폐가’ 같은 애증 어린 멸칭이 더 어울릴 지경이다. 그렇다면 결국 추억과 사람 때문이 아니겠냐며 성급한 결론을 내릴 수도 있었겠지만 영화는 쉽게 감상주의에 빠지지 않는다. 특유의 경쾌함과 발랄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집요하게 최초의 질문을 갖고 일랜시아를 쫓는 가운데, 뜻밖에도 영화는 그 추적의 자취에서 일랜시아라는 게임 이상의 무엇을 흘려놓곤 한다.

 

그것은 영화의 첫 장면 IMF 보도에서부터 감지된다. 97년의 외환위기 2년 뒤에 시작된 일랜시아를 꺼내 놓는 방식은 언뜻 진부하게 과거를 소환하는 방식으로 보이나 사실 이 연결은 그 둘은 넘어서 20년이 지나 아직까지 서비스하고 있는 게임을 통해 현재까지 맞닿아 있다. 과거와 현재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도 뻔하다면 뻔한 이야기지만, 이를 20년이 된 온라인 게임으로 풀어내는 방식은 독특하다고 할 만하다. 왜냐하면 변하지 않은 것들과 동시에 명백하게 달라진 어떤 차이 역시 일랜시아라는 척도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여느 (MMO)RPG들이 사냥과 전투만이 전부였던 시절 레벨이 없는 파격적인 컨셉으로 세계관과 다양한 콘텐츠를 내세운 일랜시아가 변함없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동안, PC 온라인이라는 플랫폼 자체는 축소되고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아예 주된 게임의 환경이 달라졌다.

단순히 기기의 변화만이 있었던 게 아니다. 본질적으로는 일랜시아의 유저들이 노심초사해하며 사용하는 시스템 내 불법적인 ‘매크로’의 존재가 현시대의 게임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시스템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에서도 일랜시아가 그대로일 수 있는 까닭은 방치에 가까운 운영 때문이라는 아이러니가 있다. ‘모두 매크로가 되어갔다.’ 마치 디스토피아를 묘사하는 듯한 한 문장의 내레이션은 먼 미래가 아니라 오래된 현재를 설명한다. 흥미로운 점은 매크로를 대하는 유저들의 반응이다. 그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요소지만 방치된 시스템 아래에서 여전히 불법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개발자나 운영진의 개입이나 조정에 대한 일랜시아 사람들의 입장은 복잡하다. “이미 모든 게 잘못된 상태에서 바꾸려면 더 엉망이 되잖아요.” 그런데 자조 섞인 한 유저의 푸념이 단지 20년 된 게임에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레벨이 없는 높은 자유도의 게임에서도 기어이 최적화된 육성법을 만들어내고 이를 따르는 풍경,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어도 시간이 없어서 자신의 캐릭터를 타인에게 맡기는 심경들은 또 어떠한가.

이렇듯 일랜시아라는 가상 공간과 한국 사회의 현실의 은근한 조응은 미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태풍이 상륙한 시기에 이뤄진 MT의 묘사에서 영상으로는 게임 화면을, 음향으로는 실제의 빗소리를 덧씌우고 중첩하는 가운데 띄워진 ‘자기소개를 하고 자살하는 전통이 있다’라는 문장이 괜스레 오싹하게 읽히는 것처럼 말이다. 이 유비는 게임을 향한 비관과 자조가 곧바로 현실을 가리키듯이 대체로 부정적일 때 더 통렬하게 실감되지만 결정적으로 작은 성취감을 공유하는데 다다른다. 게임 내 부조리와 은근한 무기력에 적응하고 만족하던 ‘나’가 마침내 행동하고 바로잡는 결과는 단순히 낯선 게임의 업데이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잘못된 상태를 바꿨는데 엉망이 되지 않은 것을 희망으로 포장하기는 민망하지만, 어쨌든 영화가 보여준 것은 일랜시아의 끝이 아니라 다음이었다. 이 경험은 어떤 교훈보다도 값진 ‘가능성’이라는 여운을 남긴다.

아직

<내언니전지현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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