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포럼2020

흔들리는 세계에서

<불면증 소년>

성미래

  개근상이 우수상보다 간절했던 학교생활이 끝났을 때, 최대의 화두는 ‘앞으로 나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였다. 제시간에 눈을 감고 뜨는 것만 10년을 넘게 연습 중이다. 언젠가 돈벌이에 뜻이 생길 거라는 기대는 놓은 지 오래다. 아무리 봐도 생존에 재능이 없다. 아침마다 맞닥뜨리는 패배는 불안이 된다. 오늘도 1인분을 해내기는 글렀다. 마음과 몸의 방향이 이렇게나 달라서는 먹고 살 기회가 내일도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테오가 살고 있는 세계를 구성하는 법칙은 반복이다. 인간도, 톱니바퀴도 모두 제 자리에 배치되어 바쁘게 기능한다. 그 안에 오류인 테오가 있다. 아이의 기능은 꿈의 생산이고, 테오는 잠에 게으르다. 자신은 아무것도 망가트리지 않았다고 항변하지만, 오직 승인된 방식만을 반복하는 무채색의 세계에서 이질성은 쉽게 발견되지 않을뿐더러 용납되지도 않는다.

  생산성은 위대한 가치다. 테오는 종종 평가받고 자주 비난받는다. 흡착의 시간이 돌아올 때마다 말 그대로 타인의 눈이 날아와 꽂힌다. 서로의 생산성을 비교하며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는 구조 안에서 시선을 견뎌내는 건 어렵다. 미미는 무용한 테오를 조롱한다. 몽롱할 만큼 쌓인 억울함은 꿈과 분별하기 어렵다. 그렇게 꿈의 포장공정에는 생각이 섞여 들어간다. 짜여있던 공정에는 균열이 발생한다. 질서의 교란은 테오가 아닌, 시스템에 걸맞게 적응한 미미로부터 촉발된다. 그럼에도 체제는 이질적인 존재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지탱된다. 규율의 위반은 필히 처벌을 동반한다. 본의 아니게 존재가 오류인 테오는 생각의 박탈을 결과로 맞는다.

  결산에서 테오는 드디어 비생산적인 생산에서 벗어났다는 성적표를 받아든다. 오른 등수만큼 감정이 사그라진다. 테오는 더 이상 생각하지도, 느끼지도 않고 우수한 평가를 말없이 지켜본다. 앞으로의 삶은 테오에게 해방인가, 속박인가. 무채색 세계에서 성인은 아이의 꿈에 의존해야만 정신을 놓지 않을 수 있다. 이미 사고능력을 잃었을 거라는 예상은 억측이 아니다. 체제는 아이의 회의를 제거하여 성인으로 길러낸다. 테오도 그렇게 어른이 된다.

  영화가 끝나면 자연스레 주어지는 과제가 있다. 테오가 사는 곳은 어디이며, 그곳은 몇 년도인가. 돌아가는 톱니바퀴와 태엽만을 단서로 시공간을 파악하기는 불가능하다. 알 수 없는 공간을 불러내어 이야기를 전해야만 했던 이유를 짚어본다. 이질성은 숭배되던 기존 질서에 제동을 건다. 영화가 비친 세계는 기능의 평가를 신앙처럼 믿는다. 무결점의 시스템이란 없고, 세상 어디의 능력주의든 그 공정함은 신화나 다름없다. 어떤 능력을 평가하는지는 누가 결정하는지, 그 능력을 기를 기회는 공평히 주어졌는지를 물어야 한다. 수백만 마리의 양을 세도 불면증이 나아지지 않듯이 노력을 투입할 수 있는 몸과 정신도 모두에게 주어지지는 않는다. 불평등의 극복은 그 영역의 인정에서 출발한다.

  시계의 시간은 항상 내 속도보다 빠르게 흐른다. 영화 내내 흔들거리던 이미지 탓인지 피로하다. 자는 양으로 평가받는 세상에서는 내가 일등일 거라는 상상에서 나오기 지친다. 몸에 대한 혁명에 실패한 어른의 변명이라고 하려다 그마저도 무용에서 벗어나려는 안간힘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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