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포럼2020

(뜨거운) 물의 도시

<물의 도시>

이형관

노량진은 현재 서울의 도시계획에서 가장 ‘뜨거운’ 곳이다. 동북아 금융 거점을 목표로 하는 여의도와 글로벌 비즈니스 허브로 나아가려는 용산의 역할이 커짐에 따라, 그 연계부에 위치한 노량진의 전략적 역할이 중요하게 대두되고 있다. 근대 서울의 관문 역할1)을 수행한 노량진은 도시의 팽창으로 어느새 도시 중심에 위치하게 됐고, 입지적 특성에 따라 여의도·용산과 차별화된 기능을 요구받고 있다. 서울의 도시기본계획인 「2030 서울플랜」2)과 그 후속계획인 「2030 서울생활권계획」3)에서는 노량진 수산물 도매시장 일대 부지의 육성 방향을 문화·관광 중심지로 설정했다. 현재 여건·정책 변화 수용을 위해 노량진 수산물 도매시장, 노량진민자역사, 수도자재관리센터, 케이마트 부지 등의 대규모 개발계획이 추진 중이며, ‘노량진 수산물 도매시장 현대화 및 복합개발 사업’이 가장 먼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노량진 수산물 도매시장 현대화 및 복합개발 사업’을 다룬 <물의 도시>는 물리적 환경의 변화를 맞이한 노량진 수산물 도매시장과 그 속에서 생활했던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장소 변화 과정을 고찰한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이루어진 시장의 현대화 사업의 이면을 함축적으로 드러내고 장소 형성 과정에서의 소통의 부재와 장소 형성의 진정한 의도를 되묻는다.

영화는 노량진 수산물 도매시장이라는 ‘장소’에 대한 심층적인 고찰이나 사회적 가치에 대한 논의가 충분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 의심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물리적 환경이 변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물리적 환경이 변한다고 해서 그곳에서 활동했던 사람들도 변해야 하는 의무를 갖는 것은 아니다. 오랜 시간 시장에서 생계를 이어온 사람들, 그들의 활동과 그들이 장소에 갖는 의미는 장소 정체성 형성에 필수적 요소이다. 장소는 그곳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이 가장 잘 이해하고 있고, 그들을 배제할 경우 장소 정체성의 상실을 피할 수 없다.

영화는 이익 창출을 원하는 진영과 삶의 터전으로 유지하려는 진영의 대립을 다루지만 치열하고 심각하진 않다. 연출자는 장소의 일부로 스며들어 상인들의 삶에 섞이고 그 안에서 발생하는 의미를 찾는다. 연출자와 상인들이 동일한 장소의 기억을 공유한다는 점은 상인들의 카메라에 대한 거부감을 없앴고, 그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장소의 세밀한 부분까지 포착한다. 사건의 직접적인 노출을 최대한 배제하면서 시장의 다양한 경관을 포착하고 동적인 인물들의 일상을 혼합함으로써 장소에 집중하게 한다.

감성적인 내레이션은 이러한 의도를 더욱 확장시킨다. 사건의 원인, 과정, 결과를 설명하지 않는다. 말하고자 하는 바를 무겁지 않은 이야기들로 비유하여 간접적 개입을 시도하고, 특정 대상지에서 나아가 현재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장소의 소멸과 생성 과정을 고민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영화 말미에 잠깐 언급되듯이, 현재 기존 시장이 있던 부지 중 절반 정도는 사전협상형 지구단위계획을 통해 복합개발을 추진 중이다. 영화에서 언급된 카지노 계획은 없어졌지만, 상업·업무·문화 복합개발의 골격은 유지하는 듯하다. 도시계획적 위상과 관련 정책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 안의 사람들과 문화가 실종된 계획이 목적대로 실현될지는 의문이다. <물의 도시>는 궁극적으로 장소의 문화를 형성한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담고, 이를 계획이 지향하는 가치와 연결해 장소 계획에서 ‘소통’의 중요성을 은유적으로 표출한다.

몇 달 전 넷플릭스 시리즈 <필이 좋은 여행, 한입만!> 시즌 3이 공개되었다. 시즌 3 4화 대상지는 ‘서울’이며 (新)노량진 수산물 도매시장이 짧게 등장한다. 10분 남짓 등장한 시장은 깨끗하고 신선한 이미지로 다가왔다. 진행자 필 로즌솔은 시장에서 구입한 킹크랩을 시식하며 한국에 올 가치가 있다, 평생 먹었던 해산물 중 최고라는 찬사를 표한다. 이제 노량진 수산물 도매시장은 국내·외에서 서울의 대표적인 핫 플레이스 중 한곳으로 거듭났다. 그리고 앞으로 추진될 노량진 수산물 도매시장 일대 부지 개발과 노량진-여의도 보행육교 조성, 경전철 서부선 개통 등에 따라 한동안 더 뜨거워질 예정이다. 뜨거워진 물의 도시는 언젠가 자신의 온도로 돌아올 것이다. 다만, 자칫 일방적인 가열 요소들로 인해 물의 도시가 타서 없어져 버리지 않을까가 걱정될 뿐이다.

1) 노량진역은 1899년 9월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의 시종착 역이다.

2) 20년 후 서울의 미래상과 발전방향을 제시할 뿐 아니라 주택, 공원, 교통, 산업, 환경, 문화, 복지 등 다양한 부문별계획을 통합하고 조정하는 서울시의 최상위 계획이다.

3) 2030 서울플랜 후속계획으로 생활권의 특성과 주민의견을 반영하여 생활권 발전방향 및 도시관리구상을 제시한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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