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포럼2020

지지않을 꽃으로

<떠나가는 J에개>

김팝콘

  도시의 빌딩들은 점점 높아진다. 높은 빌딩 위에서는 건물과 사람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누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떤 일을 하기 위해 지어진 건물들인지. 단순하게 a 혹은 b, 모 아니면 도로 나누어지는 풍경들은 안정감을 준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명징하게 마주할 수 있다.

  구나현 감독의 <떠나가는 J에게> 는 우석(김우겸)의 죽음과 정연(이현진)의 유학 전 이별 과정을 다루고 있지만 이상하게 직관적이고 강렬한 감정을 배제한다. 정연은 자신의 유학과 우석의 죽음에 대해 마치 전망대에서 관망하듯이, 의연하고 구태의연한 태도를 보인다. 정연 뿐만 아니라 친한 친구를 떠나보내는 보아(이보아)와 약혼자의 장례를 치르는 재윤(김양희) 또한 쉽게 감정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상하리만큼, 이들은 상황을 의연하게 보낸다. 마치 전망대 위에서 바라본 사람들처럼 말이다.

  보여주지 않는 방식으로 보여주기, 혹은 보여줌으로써 보여주지 않기.  <떠나가는 J에게>의 태도를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투명하게 보이는 사실과 가려진 감정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영화는 보았지만 보지 못해왔던 것에 대해 떠올리게 한다.

  몇 년 전, 휴학을 하기 위해 책을 반납하러 학교를 찾은 정연은 우연히 우석을 만난다. 정연의 손에는 [오뒷세이아]가 들려있다. 현재, 유학을 떠나기 전 보아, 미술관 관계자, 재윤과 만나는 정연은 몇 년 전 스튜디오에서 가져온 화분을 들고 다닌다. 여태껏 조화인 줄 알았던 화분은 깨지고 나서야 생화인 것을 알게 된다.

트로이 전쟁 이후, 고향으로 돌아오는 영웅의 이야기를 담은 [오뒷세이아]처럼, 정연은 두 차례 ‘고향’으로 돌아오는 여정의 문 앞에 선다. 휴학과 유학이라는 새로운 장이 열리는 그곳에는 보란 듯이 우석이 서 있다. 흔들리는 카메라로 담은 과거와 안정적인 카메라로 담은 현재의 시간성은 언뜻 상이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두 가지의 과정은 놀랍도록 닮아있다. 휴학을 한 후, 고민한 시간들이 데려다준 곳이 미술관인지 우리는 알 수 없고 영국으로 떠난 후 보낼 시간들이 정연을 어디로 데려갈지도 우리는 여전히 알 수 없다.

  개인의 정체성이라는 진부하지만 영원히 질문될 바로 그 질문. 우리는 정체성에 관해 너무 많은 글을 읽고, 너무 많은 영화를 보아왔지만, 아무도 자신이 누구인가? 내가 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에 쉬이 답을 내리지 못한다. 세상은 오로지 나에 의해 지각되고, 나에 의해 외부의 ‘세상’과 관계를 맺지만, ‘나’라는 정체성이 확립될 수 없는 삶 속의 나의 자리는 변동되고, 나는 나와 아닌 것에 섞여 현탁해진다.

  정연의 화분은 정연에게 말을 걸어온다. <떠나가는 J에게>가 보여주는 화법 중 가장 실험적인 장면들. 이 장면들은 화분이 깨지는 장면을 위해 존재한다. 조화라고 믿어왔던 꽃이 생화임을 알게 되면서, 일전 확신 내지는 상상으로 여겨진 화분과의 대화는 실제 있었을지도 모르는 것, 어쩌면 화분이 정연에게 정말로 말을 걸어왔을지도 모르는 것으로 변이된다. 사실이라고 여겨왔던 것이 산산이 부서지고 난 자리에는 애써 외면했을지도 모르는, 진실이 담겨있다.

  사진을 찍는 이유를 더러 우석은 ‘자신이 말을 잘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말하지 못하는 스스로 대한 이야기를 사진을 통해 털어놓는다는 지점에서, 사진은 나 자신에게 그리고 나와 관계된 세상에게 나의 정체성을 되묻는, 메타적인 질문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건 내가 말하고 싶었던 나의 이야기야, 당신이 보는 나는 어때? 내가 보는 나는 실은, 어떤 사람이야? 두 가지의 질문의 사이에 놓인 프레임은 질문이 튀어나온 시간을 묶어 앉힌다. 지금, 이곳의 나와 지금, 이곳의 당신이 기억하고 회고할 수 있도록 혹은, 관망하고 상의할 수 있도록. 나의 지각 속에서 사유되는 나와 세상 속의 당신 즉 타자가 사유하는 나의 교집합에 놓인 불투명한 정체성은 정의되기를 끊임없이 유보한다. 마치, 우석의 ‘떠나고 싶어졌어’와 정연의 ‘떠날 거예요’라는 말의 종착지가 몇 년이나 유보되어 그들의 러닝타임에 도착하게 된 것처럼.

  정연과 영화의 태도는 유보된 답, ‘알 수 없음’이라는 수식어 위의 정체성에서 기인하고 있다. 어떤 시기, 어떤 시간에 어떤 사건이 닥쳐와도 사람들은 앞을 향해 걸어갈 것이다. 답을 내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답을 찾아 미로를 빙빙 도는 대신에 언젠간 답이 나를 찾으러 올 것이라는 모종의 가능성을 안고 걸어가야 한다. 꾸준히, 어느 순간, 목적지로 보이는 그곳에 당도할 때까지. J는 떠나갈 것이고, 우석은 떠났다. 그들이 떠난 곳에는 보아와 재윤이 남아있을 것이다. 모호하고 예측할 수 없는 삶과 나의 손을 잡은 채로 그렇게, 돌아가고, 떠나고를 반복하면서.

© 2023 by Andy Decker. Proudly created with WIX.COM